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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귤 Apr 15. 2017

사랑을 깨닫다. <나의 사랑, 그리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질까

 사랑의 신(神) 에로스 이야기, 그리고 지극히 순수한 사랑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세 쌍의 커플.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 아름다운 장면들을 통해, 이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두운 곳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처럼, 무거운 마음에도 희망의 미소가 번지게 만드는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의 관람 포인트를 소개한다.


서로 다른 세상, 그러나 모두 현실

<나의 사랑, 그리스>의 원제목은 'Enas Allos Kosmos (Worlds Apart)'로, 대략 번역하자면 '서로 다른 세상'이나 '다른 세계에서' 정도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원제가 가리키는 바와 같이 국적뿐 아니라 살아온 배경과 삶의 모습까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속한 이들의 사랑은 아름다우면서도 불안하다.

영화는 경제 불황과 인종 갈등으로 암울한 그리스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도 사랑에 빠지는 연인들을 담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그러나 분명 일어나고 있는) 난민과 인종갈등 문제로부터, 정리해고와 불륜, 가족 간의 불통과 같은 비교적 보편적인 상황까지 현실감 있게 비추는 탓에 그저 픽션으로만 영화를 대하기엔 마음이 가볍지 않다.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 가족애와 인류애까지 다루면서 진정한 사랑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라니, 실로 대단한 연출이다.

시리아 난민 파리스와 그리스 정치학도 다프네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장애물은 없다.

국경 그 이상의 것을 기꺼이 넘으려는 세 연인의 모습은 사랑의 위대한 힘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아니, 그보다도 사랑에 푹 빠진 그들의 눈빛부터가 마음을 따뜻하게 간지럽힌다. <위플래시>에서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으며 학생들을 잡아먹을 듯 몰아붙이던 지휘자를 연기해 관객까지 쫄게 만드는 J.K. 시몬스의 꿀 떨어지는 눈빛은 가히 충격적이다.

사랑에 빠진 세바스찬

파시스트에 가담한 아버지를 둔 정치학 전공생이 그리스에서 불법 체류하는 시리아 난민을 만나 사랑하게 되다니, 로미오와 줄리엣보다도 더 가혹한 상황이 아닌가. 그러나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데이트를 즐기는 이들의 모습은, 바로 몇 분 전 관객을 떨게 만든 잔인한 폭력사태와는 무관한 이야기처럼 보일 정도이다.

토끼 같은 아들이랑 놀아줄 땐 언제고, 만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매력적인 스웨덴 여성 엘리제와 불륜을 저지르는 지오르고도 마찬가지다. 그가 사랑에 빠진 모습은 얄궂게도 너무 진지해서, 마냥 욕할 수만은 없게 된다.

독일 교수 세바스찬과 그리스 가정주부 마리아 커플도 알고 보니 불륜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더 따뜻한 눈으로 마리아를 바라봐주는 세바스찬을 어찌 욕할 수 있을까. 마리아를 비참한 현실 속에서 구원해주는 세바스찬의 사랑을 그저 불륜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 숭고하다.

엘리제와 지오르고의 첫 만남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향하다.

밝지만은 않은 도입부로 시작해 점점 무게를 더해 가는 이 영화는 마침내 하나의 종착점에 이르러 폭발한다. 비극적인 폭발 후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영화는 이대로 끝나지 않는다. 에로스와 프시케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처럼, 모든 걸 잃은 이들에게도 새로운 삶이, 그리고 사랑이 펼쳐진다.

이 영화의 대단한 점 중 하나는 그저 따뜻한 미소만 짓게 하는 게 아니라 곳곳의 개그코드도 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아플 땐 아프고, 답답할 땐 답답하면서도 웃길 땐 빵터지게 하는 이 영화는, 비극과 희극을 넘나드는 우리네 현실과 다르지 않다.

세바스찬과 마리아




이 영화가 계속해서 말해주듯, 사람들은 사랑을 신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를 이끌고 가는 것은 사랑이다. 영화의 여운을 간직한 채 삶을 되돌아보니, 내 삶을 이끌어가는 것도 사랑이었다.


나는 영화를 통해 깨닫는다. 아!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신으로 만들었구나.


한줄평: 눈물과 웃음 속에서 마음은 따뜻해지고 옆구리는 시려워지는 멋진 영화.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의 시사회 초대를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진출처: Daum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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