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 고갈과 끝없는 소비에 대하여
우주 최강의 존재 타노스. 마블 시리즈에서는 제거해야 할 악당으로만 비춰진 그는 나에겐 누구보다 매력적인 환경히어로이다. 자원고갈의 결과(이대로 가면 우린 다 망한다)를 현실적으로 예측하고 이에 대한 혁신적인 솔루션(우주 인구의 절반을 날리자)을 내놓은 전무후무한 인물인 것이다. 게다가 재로 사라질 절반은 랜덤으로 정하고, 살아남은 절반은 감사하자는 사상, 이 얼마나 공평하고도 긍정적인 방식으로 공익에 봉사하는 자세인가.
타노스의 제안은 혁신적이었지만 최초는 아니었다. 18세기의 영국 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또한 자원 고갈을 이유로 타노스보다 수백 년 앞서 인구 억제를 주창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에겐 인피니티 스톤즈가 없었지). 산업혁명이라는 변화 속에서, 폭발적인 인구증가와 이로 인한 식량자원 부족이 빈곤, 범죄, 전쟁 등의 문제를 빠르게 심화시킬 것이라는 게 그의 예측이었다.
다행히 식량부족에 대한 맬서스의 우려는 기우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기술 발전 덕에 먹을 음식은 충분하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 등 신생국의 급속한 인구증가와 너나 할 것 없이 질주하는 자원 소비 현황을 보자면, 이제 더 이상 지구는 품위 있고 깨끗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닌 듯하다. 미세먼지를 마시면서, 또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환경호르몬에 둘러싸여 시름시름 앓으며 먹는 것에서 생존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여러모로 타노스와 맬서스의 선견지명이 빛나 보인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자원소비의 속도를 지구인들이 추월한다는 것은, 그리고 그중에서도 한국이 월등하다는 것은 연구로도 나타난다. 지구와 각국의 자원소비 현황을 진단하는 GFN(Global Footprint Network)는 우리가 2019년 한 해 동안 썼어야 할 자원을 7월 29일에 모두 소비한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모든 지구인이 한국과 같은 자원소비 행태를 보인다면 4월 10일에 1년 치 자원을 이미 다 쓴 꼴이 된다. 우리나라는 타노스에게 후려맞아도 할 말이 없는 자원낭비국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구 절반을 날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일까? 타노스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난 제안한다, 우리가 0.5인분의 자원만 사용해보자고. 소비는 확실한 행복이라지만, 불확실할지라도 소비 외의 곳에서 행복을 찾는 노력을 해보자는 것이다.
아마 어려울 것이다. 어디에서 자원을 절약해야 할지 감도 안 올 것이고, 종국에는 왜 타노스가 인구 절반을 날리기로 결정했는지 겸허히 이해하게 되겠지. 하지만 그래도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변해왔으니까, 2020년 새해 0.5인분으로 살아보기를 결심하는 것은 어떨까. (스트레스성 소비나 '쓸모없는 선물하기' 이벤트 정도만 없애도 큰 한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생명의 존엄성은 어떤 가치보다도 앞서야 한다. 환경도 다 같이 건강하게 행복하자고 지키는 건데 50%의 확률로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는 건 합리화될 수 없다. 광역 어그로를 시전하기 위한 자극적인 서문은 양해를 구하지만, 타노스만큼의 위기의식과 해결 의지를 가지지 않고서는 파괴를 향해 질주하는 우리의 행성을 구할 길이 없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우리 모두가 사라지지 않으려면, 절반만큼만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