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기가 살 미래의 삶에게 쓰는 편지
규민아,
오늘 엄마 아빠는 토요일을 맞아 너와 살결을 보듬으며 낮잠도 자고 네가 좋아하는 요플레를 마음껏 묻혀가며 먹기도 하고 잠시 창가 쇼파에 나란히 앉아 하늘도 바라보며 하루를 보냈단다.
특별히 목적지를 두고 나가지는 않았지만, 잠깐의 공원 산책하는 와중에 강아지를 만난 너는 돌고래 초음파 소리를 내며 소리를 질렀단다. 너는 늘 그래. 강아지를 좋아하지.
서론은 이쯤 접어두고, 오늘은 옛날 이야기를 조금 섞어볼까 한단다.
자식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얘기 중 하나가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는~" 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라던데 오늘은 시대 흐름에 따른 변화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잘 들어주길 바란다.
90년대 초반에는 핸드폰도, 노트북도 없었고 현관문도 지금과 같이 지문이나 비밀번호로 인식되지 않았단다. 핸드폰 보다는 길거리에 공중전화 찾는게 더 쉬웠던 시절이 있었고, 노트북은 상상조차 못했으며 현관문 열쇠를 몇 번씩 잃어버려 호되게 혼나던 시절이었단다. 지금이야 초등학교 입학선물이 핸드폰이 될 만큼 기계와 친숙해진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엄마가 어릴 때는 친구들 집 전화번호는 머릿 속에 새기고 친구와 놀고 싶을 때면 친구 핸드폰이 아닌 친구 집에 전화해서 몇 시에 어디서 만날지 정하는게 일상이었단다.
네가 10살이 되고 20살이 되면, 아마 지금 엄마가 상상도 못할 기술 발전이 이루어져있겠지.
아마 지금보다 학교 수업이 더 디지털화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학교에 교과서를 들고다니는게 아니라 외장 하드디스크 혹은 USB에 담아 다닐 수도 있겠구나. 센서로 등/하교 하는 것으로 출석체크를 할 수 도 있고 말야.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의 혜택으로 삶이 굉장히 편리해지고 있는데 불행한 사람은 참 많이 늘어나고 있단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야. 예전에 비하면 참 살기 좋은 세상인데, 왜이리 행복한 상황이 내게 오지 않는 것만 같은지 싶을 때가 있단다. 왜 그러냐고? 그 세상이 주는 편리함이 사람들을 망각시킨단다. 마치 원래 누려야했던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거지. 애초에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시 생각하면서,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곳에서 에스컬레이터가 점검중이라 운행을 잠시 멈출 때에는 불행하게 생각해. "왜 하필- " 이라며 투덜대는거지.
자발적으로 불편함을 감수하면 삶의 즐거움이 커지게 된단다. 불편하지만 불행하지 않은 것. 그게 자발적 불편함에 핵심이라고 볼 수 있지. 네가 자발적으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아간다면 사소한 것 하나에도 감사할 줄 알고 혹여나 마주치게 될 불행에도 맞설 수 있는 견고함을 단련하게 된단다. 소소한 불편함들이 예방주사의 역할을 해주어서 큰 시련이 올 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항체가 되어주는데 이건 엄마가 너를 병원에 각 접종 별 시기에 맞춰 영유아 예방접종을 하는 것만큼 매우 중요하단다.
말그대로 자발적으로 해야하니, 엄마가 굳이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주지 않아도 언젠가 네가 이해할 나이가 되면 자발적으로 불편함을 감수하는 도전을 해보기를 바란다. 엄마는 그 옆에서 너를 응원할게.
사랑한다 아들.
Enter through the narrow gate.
For wide is the gate and broad is the road that leads to destruction,
and many enter through it.
But small is the gate and narrow the road that leads to
life, and only a few find it.
[Matthew 7: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