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두맑음 Aug 15. 2021

광복 76주년을 기념하며 써본 영화 “동주” 리뷰!

독립을 위해 애써주신 무명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영화 동주의 주인공 “윤동주”와 그의 고종사촌 “송몽규”

2021년 8월 15일! 오늘이 바로 광복 76주년입니다. 이 뜻깊은 날을 맞아, 전에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 “동주” 리뷰를 해보려고 합니다.


작년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아름다운 청년 “송몽규&윤동주” 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동주”를 넷플릭스로 온 가족이 함께 보았습니다. 눈물 없이 볼 수 없었던 영화! 마음으로 준비한 리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윤동주 (1917.12.30-1945.2.16)

출생/만주 명촌동 
활동분야/문학 
출생 시집/북간도 
주요 /서시,  헤는  

일제 강점기에 짧게 살다  젊은 시인으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고뇌하고 고민하는 시인이었다. 독립을 눈앞두고 송몽규와 함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네이버 출처-
송몽규 (1917.9.28-1945.3.7)

출생/외가인 윤동주 집에서 
출생지/중국 지린성 룽징 
활동분야/독립운동 
주요 수상/건국훈장 애국장(1995)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로 일본 유학 중에 윤동주와 함께 체포되어 광복을 눈앞에 두고 윤동주와 함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네이버 출처-

아름다운 청년 윤동주, 송몽규 둘 다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짧은 생을 하얗게 불태우고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감사했던 건, 그동안 배경지식이 전혀 없었던 “송몽규”라는 훌륭한 독립운동가를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영화로 새롭게 조명되어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은 고종 사촌지간으로, 어려서부터 한집에서 자라며 꿈을 키우고 함께 고민하고 번뇌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할아버지가 시인이셨던 엘리트 가문 출신으로 윤동주 아버지는 그가 의사나 법조인이 되기를 바랐지만, 윤동주는 문학도의 길을 선택합니다. 시인이셨던 할아버지의 도움이 컸다고 전해집니다.


​송몽규, 윤동주 둘 다 글쓰기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고 총명했습니다. 지금의 연세대학교인 연희전문대에 함께 진학했습니다. 윤동주는 문학가로, 송몽규는 독립운동가로, 같은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독립을 코앞에 두고 후쿠오카 감옥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너무나 가슴 아팠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잊히질 않습니다. 윤동주와 송몽규가 함께 갇혔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년간 그들은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게 되는데요.. 이는 생체실험을 위한 ‘바닷물 주사’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때 그곳에서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고 죽어간 우리나라 사람들이 약 1800명이었다고 합니다.


윤동주, 송몽규와 1800명의 우리 국민들이 그 주사를 맞지 않았다면, 그해 1945년 8월 15일! 꿈에 그리던 광복의 아침을 맞이하고 자유의 기쁨을 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광복을 목전에 둔, 1945년 2월에 윤동주가, 1945년 3월에 송몽규가,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 그 장면을 보면서 참으로 애통하고 원통했습니다.


​​실제로 윤동주의 할아버지는 생때같은 손주를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고 자신이 죽으면 세울 비석을 윤동주 묘에 대신 세워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묘비명으로 “시인 윤동주”라고 새겨 넣었다고 해요. 살아서는 “시인”이라는 말을 듣지 못했던 손주에게  시인이라는 칭호를 최초로 붙여 주신 겁니다. 감동이었어요.

​​​

둘 다 연희전문대(지금의 연세대학교)에 입학한 건 가문의 영광이었습니다. ​​멋들어지게 잘 키운 아들들을 명문대에 입학시키고 한없이 자랑스러웠을 부모님들은.. 자식을 그리 허망하게 잃게 될 줄 어디 상상이나 했을까요... 이토록 총명하고 건강한 아들들을..​

​​​

입학 후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문예지를 만들며 웃고 이야기 나누던 시절이 마냥 좋았습니다. ​​꿈을 펼치던 20대 청춘의 미소가 아름다웠습니다. 환히 웃고 있어 더 마음이 아픈 이 장면! 누가 이들의 푸른 꿈을 빼앗아 갔을까요...


무엇이 윤동주의 해맑은 눈빛을 불안하게 할까요…

​​

송몽규! 끓어오르는 그의 열정과 애국심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너는 계속 시를 쓰라! 총은 내가 들거니!” 이렇게 말하며 몽규는 동주에게 또 말합니다.


세상을 바꾸지 못할 거면
문학이 무슨 소용이니?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동주는 이렇게 받아칩니다.


시도 자기 생각 펼치기에 부족하지 않아,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있는 진실을 드러낼 때 문학은 온전하게 힘을 얻는 거고
그 힘이 하나하나 모여서
세상을 바꾸는 거라고!



, 칼을 들고 행동했던 몽규와 그저 독립을 노래했던 동주! 방법과 모양은 서로 달랐지만, 독립을 향한 간절한 염원은 똑같았습니다. 그러나 윤동주가  시들을 읽다 보면, 몽규처럼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시만 쓰는 본인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듯한 글들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그의 고뇌가 얼마나 깊었는지 느낄  있습니다.

쉽게 쓰여진 시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풍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먼저 형무소에 갇힌 몽규를 찾아 간 동주! 나라를 잃고 고뇌하며 아파하는 두 청춘을.. 그저 꼬옥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일본은 창씨개명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어쩔 수 없어 개명한 날! 부끄러운 마음에 “참회록”이라는 시를 남기는 윤동주. 문학에는 사상이 들어가니, 이렇게 계속 탄압하는 일본군. 분노가 끓어오르던 장면입니다.


세상에 나올뻔한 윤동주 시집! 시집 출간 직전 “후쿠오카”형무소에 수감됩니다.

​​

그가 세상에 남기고 싶었던 시집의 제목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다행히 잘 보존되어 저희가 아름다운 그의 시를 읽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영광인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해에 삶을 마감한 두 사람.

​영화 ‘동주’를 다 보고 난 뒤...

유명 무명을 떠나 독립운동을 위해 애쓰셨던 모든 조상님들께 진심으로 깊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희생과 핏값으로 되찾은 자유 대한민국에서 나는, 과연 어떤 애국을 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거창한 것이 아닌, 제 가정을 사랑으로 잘 돌보고 소중한 네 명의 아이들을 몸과 마음이 모두 맑고 건강한 사람으로 잘 키워내는 것이야말로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애국이라고 생각합니다.

​​​

일본에서도 윤동주를 추모하는데.. 정작 자신은 윤동주의 삶에 대해 너무 몰라 부끄러워서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는 “이준익”감독님의 고백을 듣고 진심으로 존경스러웠습니다. 흥행과 상관없이 귀한 영화를 만들어 주신 감독님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와 그의 고종사촌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숭고한 일생을 다룬 감동 영화 “동주” 아직 못 보신 작가님 독자님들이 계시다면 꼭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대 한 독 립 만 세!!



매거진의 이전글 피카소 vs 뷔페, 두 천재 화가의 여자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