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효녀일까 불효녀일까 아니면 그저 그냥 평범한 보통의 딸일까..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아마도 나를 아는 지인과 친척들은 효녀라고 생각할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내 모습은 내가 봐도 그렇다. 물질적으로 친정엄마에게 넘치게 잘하고 있으니 누가 봐도 착한 딸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장모님께 드리는 사위의 효도이지 내 효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양심은 알고 있다. 효녀라기엔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물질보다 더 중요한 사랑의 마음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는 아직 멀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동안 나는 보통의 딸이라면 모두가 하는, 딱 그 정도의 효도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두 해 전 코로나가 시작되면서부터 조금 달라졌다. 그 바람직한 변화의 중요한 시작점에 “딸기”가 있다.
어느 날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새빨간 딸기가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알이 굵고 싱싱한 것이 마치 하와의 눈에 비친 선악과처럼 먹음직하고 보암직했다. 탐스러운 딸기를 보니 가격이 저렴한 다른 딸기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네 명의 아이들이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맛있게 먹을 상상을 하니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묵직한 딸기 한 상자를 번쩍 들어 카트에 담고 돌아서려는 그때, 친정엄마의 얼굴이 불현듯 떠올랐다.
‘우리 엄마도 딸기를 참 좋아하시는데,
엄마는 비싼 딸기를
엄마 돈을 주고 직접 사서 드시려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딸기는 씻을 때 두세 개 먹는 게 다였다. 딸기를 접시 가득 씻어 놓고 혼자 호사를 누리며 먹어 본 기억이 전혀 없다. 언제나 아이들 입에, 내 새끼 입에 넣어주기 바빴으니 말이다. 엄마가 되면 다 그런 걸까.. 순간 울컥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그동안 아이들 먹이려고 딸기를 수십 번 수백 번 샀을 텐데 친정엄마 생각을 해보지 못했었다. 드디어 나도 철이 드는 걸까. 나이를 먹는 걸까. 내 모습에서 자꾸만 엄마를 보고 느낀다. 그날 나는 딸기를 두상자 샀다. 그리고 친정엄마를 찾아갔다.
“엄마! 딸기가 너무 싱싱해서
엄마 생각나서 하나 더 샀어.
누구 주지 말고
꼭! 엄마 혼자 다 드세요.
다음 주 금요일에 또 사다 드릴 테니까
부지런히 드셔. 알겠지 엄마?”
그날 이후 나는 딸기를 살 때 두 상자를 산다. 딸기의 계절이 아닐 때는 고등어를 사거나 오징어를 살 때, 한 마리를 더 사서 엄마에게 드리곤 한다. 오늘은 시내 나갔다가 찐빵을 사 왔다. 지난번에 엄마가 이렇게 말했었기 때문이다.
“현주야!
찐빵 하나만 사다 줄래?
어제부터 갑자기
찐빵이 그렇게 먹고 싶네”
찐빵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를 보니 문득 그날의 엄마 말이 떠오른 것이다. 그때도 퇴근길에 찐빵을 사다 드렸더니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오늘도 생각지 못한 딸의 찐빵 선물에 엄마는 입이 찢어지셨다.
어릴 적 여름 방학만 되면 외할머니가 계신 서울에 기차를 타고 갔다. 엄마는 어린 삼 남매를 데리고 서울에 가면서 한 번도 빈손으로 가신적이 없다. 외할머니 댁에 가기 며칠 전부터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무척 바쁘셨다. 엄마 양손에 들린 천으로 된 가방은 곧 찢어질 것 같았고 엄마 어깨는 곧 빠질 것처럼 힘겨워 보였다. 기차에서 내리면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데도 엄마는 무거운 짐보따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다. 가뜩이나 외할머니와 이모들은 월세살이로 잦은 이사를 했고, 우리는 갈 때마다 바뀐 주소 하나 달랑 들고 낯선 서울 길을 물어물어 찾아가야 했다. 무거운 짐을 든 엄마는 말이 없었고 발걸음은 계속 빨라졌다. 엄마를 잃어버릴까 봐 우리 삼 남매는 눈치껏 뛰다시피 따라가야했다. 오랜만에 큰딸과 상봉한 외할머니는 엄마를 안아주거나 반기는 대신 항상 화를 내셨다.
“아니,
그냥 빈손으로 오지,
뭔 짐을 이리 무겁게 또 들고 오냐!
작은 애들 셋 데리고
낯선 서울길 찾아오려면
빈손이어도 힘들 텐데..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냐! 진짜!”
외할머니의 핀잔에도 엄마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배시시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
비싼 거는 없어,
엄마 좋아하는 식혜 3병 담고
엄마가 좋아하는 약식,
그거 조금 만들어서 가져온 거야.
그리고 동생들 옷이랑 신발
필요한 것들 조금 사 왔어.
진짜 비싼 거는 하나도 없어, 엄마”
7남매 중 첫째였던 친정엄마는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던 막내 동생들을 위해 옷이랑 신발까지 챙기셨다. 지금 내가 딸기와 찐빵을 볼 때마다 친정엄마를 떠올리는 것처럼 친정엄마 역시 외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식혜와 약식을 맛 보여드리고 싶으셨던 것이다. 언제 화를 내셨냐는 듯 외할머니는 엄마가 준비한 음식들을 아주 맛있게 드셨다. 외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피어난 함박웃음꽃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외할머니는 엄마의 식혜와 약식에 감동하고, 우리 엄마는 딸의 만 원짜리 딸기 한 팩에 감격하고 기뻐하신다. 나 역시 이다음에 아이들이 쥐어주는 두둑한 용돈보다 사랑이 담긴 작은 선물에 더 큰 감동을 느끼게 될 것 같다.
그 옛날 친정엄마가 외할머니에게 보여드린 사랑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지만, 오늘도 나는 빨간 딸기에 감사한 마음을 가득 담아 친정엄마에게 사랑을 전한다. 따뜻한 포옹과 함께.
“엄마!
제가 딸기 더 많이 사드릴 수 있도록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