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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맑음 Dec 07. 2021

친정엄마, 오늘도 내가 당당한 이유다.

어쩌다 보니, 출장 일기.

오늘도 출장이다. 내일모레는 김천 출장이 잡혀있다. 요즘 나는 보통 주 3회 이상 출장을 다닌다. 그래서 일요일 밤이면 시작될 한주의 일기 예보를 꼭 체크한다. 금주 날씨는 참 반가웠다. 한주 내내 포근할 거라니 혹시 많이 걷게 되더라도 루돌프 코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예보대로 어제도 오늘도 날이 포근하다.


오늘 아침 천안 터미널에 도착해 시동을 끄려는데 초3 넷째 태준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음? 9시 10분인데? 이 시간에 전화를?’


의아한 마음에 잠시 주춤한 뒤 전화를 받았다.


“어? 태준아? 무슨 일 있어?!”


“엄마!”


다행히 아픈 목소리는 아니었다.


 “으응, 말해봐 태준아!”


“엄마, 우리 학교 5학년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대요, 그래서 아마 경준이 형은 할머니 차 타고 집에 갔을 텐데, 선생님이 저도 가래요. 5학년 형이랑 같이 접촉했기 때문에 저도 함께 격리해야 된대요. 어떻게 하죠? 엄마?”


“으응, 그럼 일단 끊어봐, 엄마가 할머니하고 통화한 뒤 바로 전화해줄게.”


태준이와 전화를 끊고 바로 친정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지금 어디세요?”


“으응, 경준이 태우고 맥도널드 앞 지나가고 있는데, 왜?”


“아.. 다행이다. 아직 멀리 안 갔네, 엄마 지금 다시 학교로 차 돌려야겠어요. 태준이도 같이 자가 격리해야 된대요. 필로티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할게요. 엄마 고마워요.”


끊자마자 다시 태준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준아, 할머니 금방 도착하실 거야. 필로티에서 기다리고 있어. 할머니 잘 만나고 집에서 잘 쉬고 있어.” 


“네, 엄마. 내일까지 집에서 원격 수업이에요.”


“그래, 알겠어. 엄마 출장 잘 다녀올게, 저녁에 만나!”


“네, 엄마. 사랑해요. 잘 다녀오세요.”


태준이 목소리는 분명 신났다. 톤이 높고 가볍다. 코로나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직 체감하지 못한 녀석들은 온라인 수업을 하거나 오늘처럼 쉬게 되는 날이면 입이 찢어졌다. 그래. 니들이 좋다니 나도 좋다. 우리 아프지만 말자. 건강만 하자. 내 바람은 오직 그거 한 가지다.


출장으로 이동 중에 오늘처럼 예기치 않은 일이 터지면 옴짝 달짝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게 된다. 아파서 조퇴라도 하게 되는 날이면 업무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그런 날엔 일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진이 빠진다. 아마도 이 땅의 모든 워킹맘의 애환일 것이다.


나에겐 주저앉아 고개를 떨굴때마다 어깨를 툭툭 쳐주는 구원투수가 있다. 산처럼 바다처럼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시는 나의 친정엄마다. 엄마의 그늘 아래서 땀을 식히고, 일렁이는 엄마의 넓은 품 안에서 짧은 단잠을 잔다. 엄마는 언제나 그렇게 내 한숨을 삭혀주고 숨을 고르게 한다.


나는 네 아이의 엄마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글도 쓰며 종종 그림도 그린다. 그런 사치와 여유를 다 누려가며 24시간을 48시간처럼 에너지 넘치게 살 수 있는 건, 모두 친정엄마 덕분이다. 언제나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나의 엄마가 있다. 밤이면 엄마에게 드릴 반찬과 과일을 들고 건너가 웃으며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 같은 엄마가 바로 옆 70미터 거리에 계시다.


어제는 신랑이 퇴근길에 아버님이 주셨다며 껍질을 벗겨낸 하얀 알밤 한 봉지 들고 왔다. 묵직했다.


“여보! 우리 먹을 것만 조금 덜고 지금 빨리 장모님 가져다 드리고 와. 냉동실에 넣어두고 밥 하실 때마다 두세 개씩 넣어 드시라고. 먹어보니 진짜 맛있어.”


고맙게도 신랑은 나의 엄마를 먼저 챙겼다.


바로 코 옆에 엄마가 사시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귤 네 개와 감 두 개를 더 챙겨 들고 파자마에 긴 패딩을 툭 걸치고 집을 나섰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엄마 집이다.


“엄마! 나왔어.”


“으응, 어서 와. 잘됐네, 세아 좋아하는 동치미 담고 있었는데.”


딸의 목소리를 듣자 엄마가 반색한다. 밤을 보자 더욱 반기셨다.


“웬 밤이야?!”


“엄마, 나는 내일 드리려고 했는데, 엄마 사위가 지금 당장 가져다 드리래요. 좋으시겠어, 엄마는.”


“그럼, 우리 박서방 만한 사위가 없지. 세상에 없지.”


끔찍한 사위사랑이 또 시작됐다.


밤과 귤, 그리고 감과 동치미를 앞에 두고 우리 모녀의 수다는 시작됐다. 부산 이모가 최근 허리가 안 좋아져 곧 수술을 받게 될 거란 이야기와 둘째 현준이가 아침에 지각한 이야기 그리고 언니네 이야기와 남동생네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이다. 손맛 좋은 친정엄마표 동치미를 품에 들고 엄마 집을 나섰다.


“엄마! 따뜻하게 주무셔요. 잘 먹을게요 엄마!”


“그래, 어서 쉬어라. 피곤하겠다.”


엄마는 매일 보면서도 기어이 대문까지 따라 나오신다. 내일도 또 볼 텐데 말이다. 2년 전 딸기를 보고 철이 든 이후 좋은 것을 보면 무조건 엄마 생각이 난다. 그래서 꼭 두 개씩 집어 든다. 뭐든 엄마랑 함께 나누고 싶다. 함께할 시간이 그리 넉넉지 않다는 걸 알기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이니 오늘의 내 마음을 표현하며 살뿐이다. 마음껏 효도할 수 있도록 엄마가 제발 꼭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그게 요즘 유일한 내 소망이다.


친정엄마, 오늘도 내가 당당한 이유다.


어제, 엄마 집에 놔드리려고 작은 트리를 샀다. 자식과 손주들을 바라보듯 트리를 바라보실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셨으면 좋겠다.


“엄마! 사랑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엄마집 거실 티비 장 위에 이렇게 올려 놓음. 너무 좋아하셔서 내가 더 행복하고 뿌듯했다.^^ 엄마! 메리크리스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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