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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맑음 Dec 27. 2021

2021년 끝자락에서 친정엄마에게 띄우는 편지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 오늘이 2021년 마지막 월요일이래요. 벌써 2021년의 끝자락이라니.. 지금 제 마음 한구석에 작은 구멍이 뚫린 것 마냥 찬바람이 새어드는 이유는.. 엄마 머리에 흰머리가 더 늘었기 때문이고, 엄마 얼굴에 주름살이 더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엄마 키가 1미리쯤 더 작아졌기 때문이고, 엄마와 함께할 시간이 조금 더 줄었기 때문입니다. 새해가 다가온다 하여 이제는 마냥 들뜨거나 기쁘지 만은 않네요. 이런 제 마음도 모르고 째깍째깍 경쾌하게 흐르는 시간이 정말 야속하게 느껴집니다.


‘엄마’의 철부지 딸이 어느새 중년이 되어, 네 아이들에게 ‘엄마’라 불리고 있지만 ‘엄마’ 앞에서는 여전히, 벌렁 드러눕고 싶은 응석 배기 딸입니다. ‘엄마’라 부를 수 있는 내 ‘엄마’가, 바로 옆에 살고 있어서 "엄마, 우리 엄마한테 갔다 올게."라고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어서 제가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엄마’는 알까요..? 


고1이 된 첫째 세아와 중2가 된 둘째 현준이가 사춘기가 되고 보니, 요즘에는 그 시절 제가 엄마에게 했던 말들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엄마가 뭘 안다고 그래?” “엄마는 몰라도 돼!” 나름 착한 딸이었던 것 같은데.. 왜 그런 말을 무심히 툭툭 던졌을까요.. 저는 저희 아이들에게 그런 소리를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그 시절 저는 왜 그렇게 미운 말을 엄마에게 했던 건지.. 철이 없었다지만,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고 싶어요. “엄마! 죄송합니다.”


세아가 처음 태어나자마자 박서방이 3개월 장기출장을 떠나게 되었을 때, 엄마가 짐 싸들고 저희 집에 오셔서 100일간 저와 세아 곁을 밤낮으로 지켜주셨잖아요. 만약 그때 엄마가 없었다면 아마 세아를 품에 안고 매일 밤 눈물로 지새웠을 거예요. 엄마 덕분에 네 아이 모두 건강히 낳아 이만큼 예쁘게 키울 수 있었습니다. "엄마!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엄마, 사실 올해는 저에게 조금 특별했어요. 2021년이 되고서 알았거든요. 아빠를 떠나보낸 그 해 엄마 나이가 지금의 제 나이였다는 것을요.. 당시 제 눈에 엄마는 한없이 커 보였고 엄마는 그냥 엄마이기에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아니 감당할 수 있는 슬픔의 무게라고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오로지 제 슬픔에만 집중하느라 남편을 잃은 엄마의 깊은 상실감을 미쳐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새벽, 차갑게 식어버린 아빠를 차디찬 욕실에서 처음 발견했던 엄마. 거실에 털썩 주저앉아 덜덜덜 떨면서 퍼렇게 질린 얼굴로 기가 막힌 속울음을 삼키셨던 그날의 엄마를..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나이가 지금 제 나이었다니요.. 저는 아직 이렇게 어린걸요.. 남편의 부재 - 그건 생각만으로도, 상상만으로도 이렇게 끔찍하고 무서운걸요.. 그때 엄마가 지금의 제 나이었다니요.. 한동안 그 사실이 충격이었습니다.


아빠가 그렇게 갑작스레 떠나신 이후, 어떤  슬픔이 한순간 쓰나미처럼 나를 덮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의 그림자가 트라우마처럼  정신을 흔들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랬으니 엄마는 오죽했을까요.. 가뜩이나 심장이 약한 엄마인데, 그때의 충격으로 찢겨나간 엄마의 심장이..  피가.. 이제서야 선명히 보입니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꾸덕꾸덕 아물었다지만, 눈물로 지새운 수많은 불면의 밤들이  없으셨을까요..? 이제는 엄마 딸이,  찢긴 가슴에 숨결을 불어넣어 드릴게요. "엄마! 아빠 없이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아무렇지 않은  씩씩하게 홀로  남매  키워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올 6월, 제가 브런치에 합격했을 때 엄마는.. “그럼 이제 작가 되는 거야?" 하시며 엄청 좋아하셨지요. 그 이후 엄마는 제 글을 읽지 못하셨지만 "친정엄마가 머문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엄마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김밥 이야기, 빨래 이야기, 편지 이야기, 피아노 이야기, 삼계탕 이야기, 딸기이야기 등등 엄마가 들으시면 재밌다고 웃음 지으실만한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어요. 얼마 전 지인분이 제 딸기 글을 읽으시고는 엄마에게 소리 내서 꼭 읽어드리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어요. 그분 말씀이, 읽어드리려고 하니 친정엄마가 떠나셨다고. 더 늦기 전에 어서 실천하라고요. 돌아오는 주말에는 쑥스럽더라도 엄마에게 제가 쓴 글을 꼭 들려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엄마, 주말에 꼭 읽어드릴게요.


엄마 최근에 제가 읽은 시중 감동적인 시가 있어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잎”

벌레 먹은 잎이라고 하지 마세요

애벌레를
나비를
키운 잎이에요

벌레 먹인 잎이에요

 - 추수진-


이 시를 읽는데, 엄마가 떠올랐어요. 애벌레와 나비를 멋지게 키워낸 잎사귀처럼, 아빠 떠나시고 오랜 시간 건물 청소일, 궂은일 하시면서 저희 삼 남매 잘 키워내신 엄마의 희생과 사랑. 잊지 않고 꼭 기억하겠습니다. 이제야 철이 들어 뜨겁게 안아 드릴 수 있게 되었는데 아프시면 절대 안 돼요. 엄마, 꼭! 증손주 보실 때까지 건강하세요. 2022년 새해에는 우리 더 많이 표현하고 더 많이 웃기로 해요.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합니다. 엄마.”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엄마.”



2021년 12월 27일 월요일. 12월의 끝자락에서..

엄마의 둘째 딸, 현주 올림.



https://youtu.be/CBDUIOBTZGE

인순이 노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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