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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름 Oct 06. 2019

엄마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

집에 전화를 하려고 시계를 보다가 문득, 내가 엄마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구나 했다. 엄마가 자고 있을 때, 아직 그곳은 거무스름한 새벽기가 가시기 전이고, 여기는 해가 떠서 축축한 창이 마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기분이 이상했다. 안방의 전경과 어둠, 요 위에서 아직 자고 있을 엄마, 아빠의 조용한 숨소리가 떠올랐다. 사랑이랄까. 일에 쫓겨 일어나는 아침 말고 충분히 자고 일어나는 여유로운 아침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 편안하고 따뜻한 잠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은 사랑이구나 싶었다.     


엄마와 아빠의 사랑은 내가 여전히 자고 있을 때에도 부지런히 식구 먹일 아침을 차리고 바지 밑단을 양말 안으로 넣는 것이었다. 이르지만 상관없이 하루를 시작하는 것, 혹시 내가 깰까 조심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그들의 사랑이구나 싶었다.     


엄마보다 먼저 잠에서 깨어났다고 해서 대단히 생산적인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은 했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보다 먼저 무언가를 한다는 것,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대해. 여기에서 중요한 건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가 무방비 상태로 내가 제공하는 좋은 영향 아래 놓여야 한다. 따지고 보면 나는 무방비 상태로 자란 것이나 다름없다. 내 엉덩이가 커가는 속도에 맞춰 속옷을 준비한, 배가 고프기 전에 더운밥을 준비해 딱 배고플 때 맞춰 먹인 그들로 하여금. 훈기 속에서 지낸 유년을 통해 나는 따뜻함을 수식 없이 배웠다. 미안함이나 고마움을 느낄 줄 아는 것도 다 그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온전히 나에게서 나온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빠진 자리에서 다시 자란 모발 혹은 유치가 지난 자리에 박힌 영구치..도 역시 아니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게 조금 기특하면서 아주 다행스럽다. 알아야 하는 것들을 자주 놓치고 있지 싶다. 길고 커다란 테이블에 한 가족, 한 신사, 노부부가 앉아있다. 내 맞은편에 앉아 빵 하나를 나눠 먹으며 커피를 마시는 노부부를 보며, 그들이 누리는 주말을 보며 내 부모를 떠올린다. 여유는, 여행은, 욕구는 누려온 사람들에게 훨씬 가깝게 있다. 그들의 젊은 시절에는 있었던 로맨스가 잡을 수 없는 과거가 되고 나면 다시 불러오기가 어색하고 심지어는 불가능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나는 훗날 이런 어른이 되고 싶지 않고 그들이 이 마음에서 더 멀어지게 두고 싶지도 않다. 느린 아침을, 여행하는 마음을 걸어 놓을 작은 걸이들을 그들에게 붙이고 싶다고 생각한다.     




엄마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한다는 건, 그들이 오랜 시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피로를 이해할 수 있는 도안을 펼친 것과 같았다. 복잡하고 분리할 수 없는 수많은 공간을 내려다보는 느낌이랄까. 촘촘히 통과되는 문과 통로를 지나고 지나다 결국은 침대나 소파, 따뜻한 전등과 난로가 있는 방까지 되돌아가는 걸 관두고 중간 어디쯤에서 휴식을 취하는, 고단하고 쓸쓸하지만 ‘저기 어디쯤에 그런 방이 있지’하는 것으로 위안 삼는 부모세대라는 다세대 도안 중 하나를.     


나는 여전히 다 자라지 못했지만 내 부모를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은 자랐다. 그들이 좋은 방을 두고 중간 어디쯤에서 갖는 휴식을 기껍게 받아들이는 마음을 알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은. 겨울 해가 좋은 날이었다. 머리 위로 쬐는 뜨끈한 햇볕을 손에 모으거나 주머니에 담아서 아침을 맞는 그들에게 살며시 꺼내 보이고 싶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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