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곪아간 마음, 나의 우울증에 대하여

현실 3

by 하나시라

나는 한동안 내가 우울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특별히 불행하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행복하지도 않은,

그저 잔잔하게 뛰는 마음의 고동일 뿐이라고 믿었다.

늘 평정심을 지키려 애썼고,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려 애썼다.

하지만 반복되는 도전과 그 끝에 찾아오는 수많은 실패들은

내 마음을 조용히, 깊게 잠식하고 있었다.


지금 와서야 그때가 얼마나 힘든 시기였는지 알지만,

그 당시 나는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버텼다.

그러나 곪아가던 마음은 결국 터졌다.

그 균열은 ‘공황’이라는 이름으로 내 삶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고,

이유도 모른 채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괴로움과 참을 수 없는 고통,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슬픔과 끝없는 좌절감이

내 안에서 거칠게 몰아쳤다.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믿기 어려웠다. “내가 우울증?”

하지만 자해 충동과 죽고 싶은 마음,

살아 있어도 죽은 듯한 나날들에 대한 설명은

내게 달리 선택지가 없음을 알려주었다.

나는 아픈 사람이었다.


처음엔 약만 먹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증상마다, 약마다, 용량마다 달라서

적절한 조합을 찾는 데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알약이 늘어날수록,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약을 끊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잠들지 못했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팠으며,

감정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때 깨달았다.

약은 치유가 아니라 버티기 위한 최소한의 버팀목이라는 것을.

그 후로는 억지라도 약을 먹기 시작했다.


사회에선 늘 가면을 썼다.

밖에선 미소를 띠었고,

집에 돌아와서야 가면을 벗었다.

혹시 당신도 그러한가?

누군가를 위해, 타인을 위해

내 얼굴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집 안에서조차 나는 지쳐 쓰러졌다.

공허함과 허탈감은 눈물 대신

숨쉬기조차 힘든 깊은 고통으로 다가왔다.


3년이 흘렀다.

완전히 나아진 건 아니지만,

조금씩 평화를 찾아가고 있다.

어떻게 견뎌야 할지 감각이 생기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만약 너무 괴롭다면,

먼저 병원을 찾아가길 바란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정신이 아플 때도 잊지 않길.

정신과는 무서운 곳이 아니다.

나를 이해하는 시작점이다.


약을 복용한다면, 다음은 당신의 몫이다.

거창한 목표가 아닌,

아주 작은 습관부터 만들어가길.


나에게 그것은 글쓰기였다.

감정을 솔직히 적고, 절망 속에서 시를 썼다.

그 글들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을 때,

나는 아주 작지만 확실한 충족감을 느꼈다.

그것이 나를 버티게 했다.


당신에게도 그런 것이 있을 것이다.

글쓰기, 명상, 운동, 기도,

어떤 것이든 좋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감 속에 있어도 괜찮다.

당신은 단지 시간이 필요한 사람일 뿐이다.

그 시간 동안 약을 챙겨 먹고,

하루를 견디며,

조금씩 나아지는 자신을 믿어주길 바란다.


꼭 기억해주길,

“나는 할 수 있다.”

그 짧은 문장이

내 가장 어두운 순간을 붙잡아주었다.

당신에게도 그럴 것이다.


나 역시 지금도 약을 먹는다.

우울과 공황은 내 삶의 일부다.

한때 나는 평정심을 삶의 정답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 안다.

그건 착각이었다.


어디선가 읽은 문장이 있다.

“심장은 격렬히 뛰고 흔들릴 때 살아 있고, 멈추면 죽어 있는 것이다.”


몸이 그러하듯, 마음도 그렇다.

평정만이 답이 아니다.


슬플 때는 슬픔을 온전히 느끼고,

우연히 찾아온 행복은 불안해하지 말고 품자.


이 글이 당신에게

작게나마 빛이 되길 바란다.

그러니 견디자. 버티고 살아내자.


그러면 언젠가 반드시

당신의 시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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