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4
나는 주도적인 삶을 살아왔다.
나의 인생을, 나의 감각대로 설계했고, 그 선택들을 철저히 즐기며 살아왔다.
그래서 남들과는 조금 결이 다른 삶을 걸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즉흥적이었고, 본능에 가까운 감정에 충실했다.
감정은 늘 나의 방향이었다.
어느 날 문득 바다가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면, 지하철 막차에 몸을 실어 해안가로 향했고,
그곳에서 기네스 두 캔을 따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새운 적도 있다.
직업도 다르지 않았다.
‘이건 돈이 되겠다’, ‘이건 정말 재미있겠다’는 단순하고 본능적인 판단만으로 방향을 정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냈다.
그래서였을까. 나의 20대는 후회도 미련도 없이 지나갔다.
다 말하지 못할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모든 시간들이 나에게는 살아 있음의 증거였다.
그런 내가, 왜 지금 나를 버리려 하는 걸까.
어쩌면 정신적인 문제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한마디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단지 힘들어진 것이 아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라는 감정을 버렸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진심이다.
내가 말하는 감정이란, 시기, 질투, 기쁨, 기대, 사랑, 그리고 상실감 같은 인간적인 것들이다.
그런 감정들을 우리는 살아있다고 부른다. 그리고 그런 존재를 우리는 ‘사람’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이기를 포기한 걸까?
아니다. 나는 아직도 사람이다.
다만 그 감정들을 감당하지 못해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나를 조금씩 버려가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는 꽤 위험한 상태에 있다.
죽음을 바라고 있으며, 그 끝에서 자유를 상상한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내게는 어쩐지 달콤하게 들린다.
모든 것이 끝나는 곳. 실패도 기대도 사라지고, 더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
흙으로 돌아가 자연이 되어 자유로운 상태,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죽음의 형태이다.
어떻게 죽을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할 용기조차 없다.
아마 나는 그럴 만큼의 강단도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미 버려진 나를 그저 끌고 다니는 삶을 살고 있다.
무언가를 붙잡으려 하지 않고, 의미도 희망도 두지 않으며, 감정을 흐리지도 않는 채
그저 시간 위에 놓여 있을 뿐이다.
그렇다. 나는 나를 버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서 내면의 자유를 얻었다.
집착도 기대도 없는 상태.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에 어떻게 망가져도, 무엇을 잃어도, 아무렇지 않게 되는 차가운 자유.
그렇게 나는 나를 조금씩 버린 것이었다.
더는 나를 지키지 않는다.
세상은 언제나 현실이고, 현실은 늘 잔인하다.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는다.
나를 덜어냈고, 그렇게 나를 버렸다.
이 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당신의 몫이다.
당신 역시 언젠가 스스로를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 선택의 끝에는 아주 차가운 자유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기대도 희망도 모두 사라진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어떤 무게에서 벗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다만 그 자유는
모든 감정이 사라진 자리에서야
비로소 찾아온다는 것,
그 사실만은 잊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