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악마화에 대한 심리치료자 지망생의 반성문
10년 전 쯤이었을까,
내가 '경계선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라는 정체성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였다.
희망을 찾고자 켠 유튜브 영상에서, 한 정신과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경계선 성격장애는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절대 변하지 않아요. 곁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인연을 끊으세요.”
그 순간, 그 말은 내 심장을 내리찍는 사형선고 같았다.
이미 밑바닥에서 간신히 숨 붙이고 살고 있던 나에게, ‘넌 변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너무 잔인했다.
“넌 여기서 더 이상 나아질 수 없어.” 그렇게 못 박는 듯했고,
그 말은 오래도록 나를 절망하게 했다.
시간이 흘러, 심리학을 깊이 공부하며 알게되었다.
그 의사가 DBT(Dialectical Behavior Therapy, 변증법적 행동치료)는 들어봤을까 싶을 만큼,
근거 없이 위험한 단정을 내렸다는 것을.
다행히 요즘은 이런 발언을 하는 전문가가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한때 경계선 성격장애를 향했던 그 ‘악마화’의 화살이,
이제는 자기애성 성격장애(NPD,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로 향한 듯 보인다.
그러다 문득, 내 안에서 불편한 질문 하나가 싹텄다.
“혹시 나도, 나르시시스트를 그렇게 보고 있진 않았을까?”
나는 나르시시스트 가족 밑에서 컸다.
어린 나는 반복적으로 무시당했고, 비난받았고, 통제당했다.
따라서 나는 그 안에서 ‘안전하다’는 감각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그 지옥 같은 상황을 설명할 언어도, 빠져나올 힘도 없었다.
그래서 “저런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은, 사실상 나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패였다.
그렇게 믿어야만 더는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나를 해친 개인’과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 전체’를 동일시해 버렸다는 거다. 치료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으로서, 이건 위험한 시선이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울타리가, 어떤 이의 회복 가능성마저 막아버리는 편견의 벽이 될 수 있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더 깊이 공부하고 논문을 찾아보며 나는 새로운 사실들을 마주했다.
반사회적 성향이 두드러지지 않는 나르시시스트는 치료적 개입을 통해 변화가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들을.
‘나르시시스트는 자살하지 않는다’와 같은 속설 역시 아무런 근거 없는 편견이라는 것을.
그들 또한 과거의 깊은 트라우마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복잡한 방어기제를 쌓아 올릴 수밖에 없었던, ‘상처 입은 사람’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물론 이 말이 그들이 타인에게 준 상처를 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를 아프게 한 가족의 행동을 이해하거나, 더 나아가 용서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다만 내 개인적인 경험을 근거로 “모든 나르시시스트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순간,
나는 과거에 BPD를 가진 사람들을 사형선고하듯 단정했던 그 정신과 의사와 다를 바 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나는 이제 자기애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들을 볼 때,
그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가진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먼저 떠올리려 한다.
그 순간만큼은 ‘가해자’라는 단어보다
‘상처 입은 인간’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도록.
그리고 그 시선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되고 싶은 치료자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