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관계이론적 자기성찰
요즘 나는 여기저기서 ‘행복하다’고 말하고 다닌다.
감사한 일도 많고, 좋아하는 공부도 하고,
각종 스터디와 교육도 참여하며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게 꽤 괜찮아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문득 길을 걷다가도, 수업을 듣다가도
툭— 치기만 해도 울 것 같은 기분이 스며든다.
나는 웃고 있고, 잘 지내고 있고,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지만
그 안에 있는 나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만큼
공허하고 외롭다.
마치 아무도 진짜 나를 모른다는 느낌.
그들이 좋아하는 건, 내가 보여준 모습,
내가 조심스럽게 설계해 놓은 ‘괜찮은 나’일 뿐이라는 감각.
돌아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잘하는 아이’로 살아왔다.
부족하지 않고, 민폐 끼치지 않고, 타인의 기대를 잘 파악해서 실망시키지 않는 아이.
칭찬받고, 인정받으면 무서운 일들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일찍 배운 나는,
자연스럽게 성과와 인정으로 사랑과 안전을 얻는 법에 익숙해졌다.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에 따르면,
우리는 중요한 타인과의 관계 경험을 내면에 내사(introjection) 하며
자아를 형성하고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배운다.
내사된 대상(an introject)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내면에서 실제처럼 정서적인 힘을 발휘하는 생생한 이미지로 자리 잡는다.
나의 내면에는 늘 나를 평가하는 눈, 실망할 수도 있는 대상이 함께 있었고,
그 눈치를 보며 ‘괜찮은 나’를 유지하려 애썼다.
위니콧(D. W. Winnicott)은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거짓자기(false self)’를 만들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점점 나는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설계된 나를 만들어냈다.
거짓자기는 나를 지켜주는 동시에,
사회 속에서 기능하고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적응 전략’이기도 하다.
위니콧(D. W. Winnicott)은 거짓자기를 단순히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거짓자기를 ‘연속선(continuum)’ 위에 있는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건강한 거짓자기는 우리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예의를 지키며, 타인과 원활한 관계를 맺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이런 거짓자기는 일종의 보호막이며, 특히 어린 시절 사랑받기 위해 ‘좋은 아이’로 행동해야 했던 아이에게는 생존에 가까운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 거짓자기가 너무 강해져서 참자기(True Self)를 완전히 덮게 되면,
내 안의 진짜 감정과 욕구, 상처는 점점 더 깊숙이 숨겨지게 된다.
그 위에 무엇을 쌓아도,
참자기와 연결되지 않는 삶은
어쩌면 끊임없이 외롭고 허전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감정은,
진짜 내가 관계 안에서 존재하지 못하고 있다는 고통에서 온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혼자인 기분,
그건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환영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 가깝다.
나는 슬플 때 영어공부를 하는 습관이 있다.
슬플 때 내가 영어공부에 몰입하는 건
감정을 느끼는 대신 성과를 통해 존재감을 회복하려는 무의식적인 방어기제였다.
영어는 평가받기 쉽고, ‘잘하는 나’를 연출하기 좋은 대상이었다.
정리된 문장, 예상 가능한 정답, 인정받을 수 있는 정량적 결과.
그건 마치 내면아이에게
“우린 아직 쓸모 있어. 잘하고 있어. 버려지지 않을 거야.”
라고 조용히 말해주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반복 속에서,
진짜 나, 참자기(true self)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나는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는 사람이 세상 어딘가엔 있을까?”
…없을 것 같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느껴왔다.
위니콧(Winnicott)에 따르면, 참자기가 반복적으로 억압되고,
거짓자기가 외부 환경에 순응하며 주된 자아로 기능하게 될 경우
개인은 점점 내면의 생생함(sense of realness)을 잃고,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살아 있지 않은 듯한 삶(living as if)’에 빠질 수 있다고 한다.
“The False Self has the function of hiding the True Self, which it does by compliance with environmental demands… Eventually, the individual may live a life that is ‘as if’ – not real, not spontaneous.”
— Winnicott, D.W. (1960). Ego distortion in terms of true and false self.
그 말이 마음 깊이 와닿는다.
나도 한동안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겉으로는 열심히 사는 것 같았고, 주변에서도 잘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늘 어딘가 허전했고, 나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무언가를 이뤄도, 칭찬을 받아도, 그 기쁨이 깊이 스며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내가 아닌 나’로 살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버려지지 않기 위해
참자기의 목소리를 조용히 눌러온 시간들이 쌓이면서
내 삶에서 ‘나’는 점점 지워지고 있었던 거다.
이제는 조금씩이라도, 참자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고 싶다.
조금 서툴고 느리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하면서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삶을,
살아내고 싶다.
내 감정과 욕구를 인식하고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
- 억누르거나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껴주는 연습.
내면을 존중하며 자기표현을 연습하는 것.
-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 느끼는 것을 말할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허락하기.
자기돌봄과 자존감을 키우는 것.
- 잘하려는 나보다, 나를 따뜻하게 돌보는 내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
진정한 관계를 맺되, 거짓자기를 필요할 때만 활용하고 동일시하지 않는 것.
- 세상 속에서 역할은 하되, 내가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기억하는 것.
심리적 유연성을 길러 환경과 조화를 이루되, 참자기를 지키는 것.
- 바람이 불어도 중심을 잃지 않는 나무처럼, 흔들리더라도 나에게로 돌아오는 힘을 기르는 것.
(출처: '고급발달심리학' 수업 교안, 교수님 감사합니다)
참자기(true self)의 회복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조심스레 써보는 이 한 편의 글이
그 긴 여정의 첫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