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문이 열리고, 대기실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마주하니 들어서는 발걸음이 조금 주저됐다. '아무리 상담보다는 약이 중심인 정신의학과라지만 이렇게 환자가 많은데 제대로 케어가 될까?' 하는 의심이 먼저 들었던 것이다. 원래 가려던 병원에서는 당일 초진환자 예약이 다 찼으니 내일 다시 오라 하고, 이미 그곳까지의 이동도 힘에 부쳐서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시는 아빠 옆에서 습관적인 눈치를 보며 가까운 다른 병원을 급히 찾아 들어온 상황이었다.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접수하면서 물어본 대기 시간에 대한 답이었다. 또 불안하게 아빠를 보게 된다. 최근 부쩍 귀가 어두워진 아빠는 접수원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대기실을 가득 메우며 기다리는 환자들을 아빠도 보신 터라 내가 다시 아빠 귀에 전한 '긴 기다림의 시간'에 "어쩔 수 있나?" 하시며 순순히 수긍하셨다. 그제야 내 마음도 자리를 잡고 쉬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간호사가 와서
"아버님 질문지 검사는 어려우시겠죠? 뇌파 검사만 할까요?" 한다.
"제가 도와드리면서 같이 하면 되지 않을까요?"
'제대로 케어가 될까?' 하는 의심스러운 첫인상 때문이었겠지, '질문지 검사마저 안 하면 어쩌려고?' 싶었다.
따로 챙겨주신 넉넉한 쿠션을 무릎 위에 놓고 태블릿을 올렸다. 나는 아빠의 얼굴 가까이에서 검사 내용을 쉽게 풀어 설명했다.
"이번 한 달 동안에 잠을 몇 시에 주무셨어요?"
"이번 한 달 동안에 잠들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셨어요?"
"깨어있을 때 집중이 안 돼서 다른 일을 못하신 게 일주일에 며칠 정도나 되세요?"
"자신의 실패, 죽음을 얼마나 자주 생각하세요?"
"주변 사람들이 본인을 어떻게 대한다고 생각하나요?"
"내 우울의 원인이 무엇인지 얼마나 자주 헤아리나요?"
나의 질문과 아빠의 대답이 낭랑하고 또렷하게 조용한 대기실을 채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의 대화를 듣는 다른 환자들이 의식되다가 뒤에는 질문의 내용에, 이내 이 질문에 대답하는 아빠에게로 마음이 옮겨갔다.
예닐곱 개나 되는 항목, 각 20문항쯤 되는 긴 검사에 "어이구"라며 지겨움을 표하셨지만 답안 선택은 아주 진지하게 집중하셨다. 검사에 답하시는 동안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으셨다. 질문지의 내용에, 또 아빠의 답에 따라 내 마음은 내려앉기도, 울컥하며 아련해지기도, 안도감에 쉬기도 했지만, 아빠의 태도나 음성에서 아빠의 마음을 알아채기가 어려웠다. 다만 답하는 템포가 조금 느려졌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 외에는...
검사가 끝나고, 이어진 뇌파검사.
그리고 드디어 진료실로 호출되었다.
동행을 제지하는 듯한 간호사의 손 제스처에 "아빠 귀가 어두우신데." 했더니 "아, 그러면..." 하며 문을 열어주셨다. 나는 아빠 옆에 앉았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검사지를 보던 의사가 물었다.
"불안하고, 초조해요, 정신이 멍하고 마음이 비어버린 것처럼 멍해요."
천천히 한 마디씩 군더더기 없이 담담히 이야기하셨다. 의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어떤 방어도 없이 마치 오랜 시간 곱씹던 말을 이제야 꺼내놓는 것처럼... 자신의 괴로움을 조용히 호소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아빠는 알코올의존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아빠가 술을 많이 드세요. 망상인지 취중에 봤다는 것을 말씀하시기도 하고요. 지난 일요일에 아빠를 뵀을 때 취하지 않은 상태인데도... 뭐랄까, 저희 고모가 치매초기일 때 봤던, 사람이 옆에 있어도 관심 없이 다른 곳을 보는 듯한 약간 멍한 표정을 봤어요. 그래서 모시고 온 거고요."
"술을 얼마나 많이 드세요?"
선생님이 아빠에게 질문하셨다.
"내가 중독끼가 좀 있지."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피하고 싶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자조, 부끄러움, 그리고 약간의 체념...
그 순간 내가 느낀 아빠의 결...
평온한 표정 아래 그 오랜 시간 부정하고 외면하려 했던 아빠의 마음의 짐...
술로 마음을 막고, 비우고 또 채웠던 그 오랜 시간들...
엉켜 있는 실타래에 손을 대는 것은 쉽지 않다. 아빠가 대화의 주제가 될 때면 남편은 아빠를 '너의 방치'라고 했고, 나는 '보는 것만으로도 아픈 상처'라고 했다. (가슴의 긴장이 왼쪽 어깨까지 넓게 이어지며 올라간다) 아빠는 오랜 시간 돌볼 수 없던 자기 마음을 술로 감추어 왔고, 나는 그걸 어떻게든 보지 않으려 애써왔다. 하지만, 우리가 병원 대기실에 마주 앉아 질문하고 대답을 주고받던 그 시간은, 그렇게 덮어두고 지나온 시간들을 향해 조용히 문을 열고 길을 내어주었다.
아빠랑 병원을 동행했던 일은 그저 아빠를 병원에 모시고 갔다 왔다는 하루의 일과가 아니다. 오랜 시간 '괜찮은 나'의 역할을 했던 내가 나의 불안과 외로움을 인정하며 돌봄을 선언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아빠와 나는 '방치하며 살아온 존재'에서 '돌봄을 허락한 존재'로 조용히 함께 자리를 옮긴 것이다. 오랫동안 외면하고 마주하지 못했던 내 안의 감정들이 아빠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내가 아빠와 병원 문을 열던 그 순간부터 내 안의 '돌보지 못한 나'의 손을 처음으로 마주 잡은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오렌지를 드시며 아빠는 의사 선생님께서 추천했던 알코올 중독 치료병원의 폐쇄병동 입원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셨다. 혹시나 한 번 알아보라 하셨다. 나도 내키지 않고 그것만은 피하고 싶지만 지난 시간의 외면하는 습관이 고개를 드는 것이 아닌가 싶어 "네, 알아볼게요. 필요하면 해야죠." 했다. 아빠도 나도 이제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이 아닐까? 더 이상 숨기고 괴로움을 참아내는 것이 결코 존엄한 방식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이렇게 다 까발리 듯 환부를 제대로 드러내는 것이 방향을 바꾸고 나를 돌보는 것이라는 것을...
오늘 나는 아빠를 통해 내 안의 아픈 나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조용히 마주하고 끌어안을 수 있었다. 돌볼 수 없는 존재를 돌본다는 건, 결국 그 마음을 알아보는 일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일은, 생각보다 훨씬 작고 조용한 순간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