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가슴 밑, 깊숙이 뭉쳐있는 자극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묵직한 무게감으로 그 덩어리의 존재가 분명해지던 순간 가슴 중앙까지 찌르는듯한 통증이 두어 번 지나갔다. 찰나의 통증이었지만 가슴 깊은 곳을 불쾌하게 울리는 충격이었다. 덩어리는 단단하게 느껴졌지만 내가 고요해질수록 점차 가벼워지더니 이내 옅어졌다.
넓게 펼쳐진 푸른 하늘 아래 낮은 건물들이 길게 이어진 풍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여긴 어디~~' 하는 순간 '고령!'... '마트 앞 주차장!'...
고령에 있는 휴양림에서 하루 지내려고 가던 중에 숯과 불판을 사러 남편과 들렀던 마트였다. 그리곤 그 휴양림에서의 소동...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날의 일이 내 몸에서 생생하게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휴양림 관리실에서 키를 받고 '내가 예약했다는' 숙소 앞에 도착했지만 우리는 한동안 차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집은, 그전 해에 남편 친구 부부와 두 번이나 함께 지냈던, 작은 개울과 아름드리 숲에 둘러싸인 그 예쁜 숙소가 아니다. 이곳이 '숲 속의 집'이 맞는데 왜 그 숙소가 아닌 거지? 관리실 사무원이
가리키던 숙소 방향이 내가 알던 그 방향과 '다르네?' 할 때부터 살짝 불안하더니...
그때 남편이 옆에서 툭 내뱉었다. "이게 뭐냐?"
나는 '뭐지? 어떻게 된 거지?' 허둥지둥 당황한다.
그 이후의 소동...
나는 분주하게 허둥대며 예약했던 웹페이지를 열었다가 다시 관리실로 뛰어갔다가 결국 내가 숙소 이름을 헷갈려 잘못 예약한 것을 확인했다. 실망감을 감추며 "어쩔 수 없지, 오늘 하루 잘 쉬자." 했던 남편은 한 쌍인 듯 비슷한 구조의 옆 숙소에서 웅얼웅얼 퍼지며 들려오는 사람 목소리에 "이건 아니야, 바꾸자, 바꿔달라고 해." 하며 억눌렀던 짜증을 터뜨렸다.
결국 나는 작은 패닉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갔다. 다시 숙소를 예약했던 웹페이지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가 또 관리실로 뛰어갔다가 또 어디엔가 사정을 했다가... 웹페이지 상담원의 말과 관리실의 설명은 달랐고,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어떤 설명을 하고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남편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고, 내가 실수했고, 그 눈치가 느껴졌고, 나를 향한 짜증이 들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 짜증을 해결해야 했다. 무마해야 했다.
이리저리 뛰어다닌 끝에, 예약할 때 지불했던 금액을 포기하고 다시 새로 예약을 하는 방법으로 남아있는 15인용 숙소를 잡을 수 있었다. 옮긴 후 짐을 챙겨 넣고 거실 마루에 앉으니 그제야 마음이 제 자리를 찾았다. 찬찬히 둘러보니 옮긴 숙소의 위치며 주변 환경, 구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예약하려 했던 '황토방'도 이 집에 댈 것이 아니었다. 여유를 찾고는 "오히려 낫네~~. 신랑이 짜증 부려 숙소 바꾸길 잘했어." 라며 그 소동을 농담하며 서로 놀리기도 했다.
가슴의 자극이 펼쳐 보인 그날의 사건이다.
나의 실수, 남편의 짜증...
그 순간의 나, 나의 감정, 나의 마음...
이 당시의 내 마음, 감정을 알아차리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 나를 돌보는 첫걸음이다.
그때의 내 마음...
나도 짜증 나고 당황하고 혼란스러웠다. 홈페이지에서 예약은 내가 했지만, 옆에 남편도 같이 있었다.
"숲 속의 집으로 예약한다?" "응"했다. 옆에서 맞장구쳐서 같이 예약했는데 나만의 잘못인 듯, 자신은 피해자인 듯 짜증을 내며 나를 구박하니 서럽고 원망스러웠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왼쪽 가슴 밑이 움찔움찔하며 간간히 트림, 하품이 올라오고 코로 뜨거운 기운이 나간다. 자극이 느껴지는 부분에 가만히 의식을 둔다.
숙소를 바꾸지 못해서 저 웅얼거리는 소리를 계속 들어야 하면 어떡하지?
그 원망을 어떻게 받지? 걱정이 밀려왔다.
딱히 이렇게 부랴부랴 오고 싶지는 않았는데, 괜히 왔잖아~~ 하는 후회도 올라왔다.
나는 왜 찬찬히 보지 않아서 이런 실수를 하는 거지? 하는 자책도 이어졌다.
그때의 그 마음이, 그때의 내가 왼쪽 가슴 밑에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조심스레 손을 올려보았다. 일정한 심장 박동의 진동 사이로 미세한 작은 떨림이 손으로 전해진다. 꿀렁꿀렁한 움직임도, 꿈틀꿈틀한 움직임도 그려진다. 그때의 나를, 온전하게 남아있는 그 감정을 이렇게 만난다.
이내 목이 싸하며 작은 기침이 터진다. 곧이어 트림, 또 시원한 방귀...
어깨가 내려가고 상체 긴장이 풀어지며 목 뒤 머리 뒤쪽으로 시원한 기운이 지나간다.
평화로움...
지금에 돌아보니 나는 그리 중하지도 않은 나의 작은 실수 앞에서 스스로 나를 너무 몰아대고 있었구나 싶다. 만약 친한 친구가 내가 했던 같은 실수를 했다면 그 실수를 이렇게 무겁게 느낄까? 분명 아니다. '그럴 수 있지' 하며 해프닝으로 여겼을 것이다. 또 그날의 상대가 남편이 아니라 친구였다면... 내가 그렇게나 당황해하고 불안해했을까? 왜 나는 남편 앞에서의 내 실수에 그렇게나 위축될까?
결국, 가슴 중앙을 막히게 했던 건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실수 하나로도 그 사랑을 잃을까 두려웠고, 서툰 행동 하나로 미움을 살까 위축되었다. 나는 그저, 사랑만 받고 싶었다. 그 마음이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고, 당황하게 했고, 그 순간 나를 구박하는 사람 앞에 더욱 작아지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남편과의 관계에서 나는 늘 이 마음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가 나를 어떻게 볼지, 기분이 어떤지, 실망하진 않을지… 그 마음에 휘둘리며 나를 잃고 있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사실, 이 마음은 남편과의 관계에서만 작동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 살아온 마음이라는 걸 안다. 내 안에는 사랑받지 못했다고 믿는, 작은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눈치’와 ‘배려’, ‘예의’와 ‘괜찮음’이라는 포장 속에 잘 숨어 있었다.
다시 한번, 그 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품는다.
그리고 선언한다. "나는 사랑받고 싶다."
이 마음은 잘못도 아니고, 약점도 아니다. 그저, 너무도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내 마음이다.
이 마음을 부정하지 않을 때, 나는 비로소 내 감정과, 진짜 내 존재와 다시 연결된다.
그리고 누군가의 사랑을 바라보기에 앞서, 나 자신을 먼저, 조용히 사랑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