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꽃미남 록커 이야기(13):21세기 록커 특집

완벽한 수트와 거친 베이스 리프 사이, 21세기 록의 얼굴들

by 동물의삽

누군가는 록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힙합과 알고리즘이 점령한 차트 위에서 록스타의 실종을 한탄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잠시 고개를 돌려 차트 구석을 살펴보면, 그곳엔 여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대를 할퀴고 있는 록커들이 건재한데요.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21세기에도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록이라는 음악의 생명력을 증명하고 있는 다섯 밴드를 소개합니다.



https://youtu.be/gGdGFtwCNBE

더 킬러스의 브랜든 플라워스는 미국 네바다 출신이지만, 그의 음악적 토양은 유타의 엄격한 몰몬교 집안이라는 정적인 배경과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네온사인이라는 양극단의 환경이 맞물려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질적인 성장 배경은 그가 미국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펄프(Pulp)와 같은 영국 밴드 특유의 냉소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감성을 뚜렷이 체득하게 만들었는데요.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들의 정교하고 세련된 사운드 때문에 국적을 착각하곤 하지만, 킬러스는 그 모호한 경계 위에서 자신들만의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했습니다.


그들의 대표곡인 'Mr. Brightside'는 그 자체로 지독한 반어법의 정수인데요. 제목만 보면 희망찬 청년의 찬가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질투와 망상에 사로잡혀 미쳐가는 한 남자의 처절한 독백이 흐릅니다. 긍정적인 제목 뒤에 숨겨진 비극적인 서사는 청중으로 하여금 화려한 비트 속에서도 서늘한 감정의 밑바닥을 마주하게 만들죠. 낙관을 가장한 이 처절한 비극이야말로 21세기 록이 대중의 심장을 파고드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https://youtu.be/iAP9AF6DCu4

더 콜링(The Calling)의 알렉스 밴드는 21세기 초반 가장 눈부신 '금발의 아이콘'이었는데요. 수려한 외모와 그에 상반되는 굵직하고 거친 바리톤 보컬은 대중들에게 완벽한 '엄친아 록스타'의 이미지를 각인시켰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껍데기 아래에는 헐리우드의 명성과는 거리가 먼, 꽤나 시리고 녹록지 않은 성장 서사가 자리 잡고 있었죠.


알렉스 밴드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는 그의 혈통입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존 본 조비(본명 존 프랜시스 본지오비 주니어)와 같은 이탈리아계 혈통을 공유하고 있는데요. 두 사람 모두 조각 같은 외모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그 내면에는 이탈리아계 특유의 뜨거운 정서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후 아버지와 배다른 형제들 사이에서 자라야 했던 알렉스에게 음악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닌, 부재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쏟아내는 유일한 창구였을지도 모르겠네요.


결국 알렉스 밴드가 들려주는 그 묵직한 울림은 타고난 재능을 넘어, 결핍을 메우기 위해 스스로를 단단하게 단련해 온 소년의 포효에 가깝습니다. 대중은 그의 외모에 먼저 열광했지만, 우리가 정작 그가 던진 'Wherever You Will Go'라는 메시지에 응답했던 이유는, 그 굵직한 목소리 속에 담긴 상실과 그리움의 무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https://youtu.be/gPDcwjJ8pLg

올 아메리칸 리젝츠(The All-American Rejects)는 그 이름만으로도 21세기 청춘들이 마주한 기묘한 소외감을 대변합니다. '올 아메리칸'이 상징하는 미국의 전형적인 주류 가치 뒤에, 입국 심사대에서나 쓰일 법한 '리젝츠(거부당한 자들)'라는 단어를 붙임으로써 이들은 스스로를 시스템 밖의 이방인으로 규정하는데요. 가장 미국적인 외모를 지녔으나 정작 그 시스템의 문턱을 넘지 못하거나, 혹은 그 안락한 진입을 스스로 거부한 채 경계에 서 있기를 자처하는 록커의 발칙한 선언인 셈입니다.


이러한 정체성은 이들의 음악 스타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데요. 대중적인 팝 펑크의 매끈한 멜로디를 구사하면서도, 그 이면에는 뒤틀린 냉소와 패배자의 정서를 거침 쏟아냅니다. 특히 프런트맨인 타이슨 리터가 화려한 비주얼을 뒤로하고 밴드의 가장 낮은 곳을 지탱하는 베이스를 직접 연주하며 노래한다는 점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데요. 그는 사운드의 뿌리를 책임지는 베이시스트로서 밴드의 중심을 잡는 동시에, 입국 거부를 당한 이방인이 공항 로비에서 소란을 피우듯 유쾌하고도 파괴적인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결국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은 완벽함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힌 세상을 향한 세련된 조롱이나 다름없죠. 거부당했다는 사실을 슬픔으로 치환하는 대신, 오히려 그 경계 밖에서 누리는 자유와 야성을 베이스 리듬에 실어 찬가로 만들어냅니다. 입국 허가증 없이도 자신들만의 영토를 구축해 나가는 이들의 무대는, 규격화된 삶에 답답함을 느끼는 대중에게 '리젝트'라는 낙인이 오히려 훈장이 될 수 있다는 짜릿한 해방감을 선사하죠.



https://youtu.be/BermIHe03zU

로열 블러드(Royal Blood)의 마이크 커는 21세기 록 신에 '밴드 구성의 전복'이라는 충격을 던졌는데요. 드럼과 베이스라는 단출한 2인조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들려주는 사운드는 대규모 밴드의 그것을 압도할 만큼 육중하고 묵직합니다. 기타리스트가 없는 밴드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대 위를 가득 채우는 소리의 벽은, 록의 전통적인 문법을 파괴하며 등장한 이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죠.


마이크 커는 베이스 한 대에 복잡한 라우팅과 이펙팅을 더해, 저역대의 펀치감과 고역대의 날카로운 리프를 동시에 출력해 냅니다. 이는 단순히 소리를 키운 것이 아니라 베이스라는 악기가 가질 수 있는 물리적 한계를 정면으로 돌파한 결과인데요. 화려한 세션이나 장식적인 요소를 모두 거부한 채, 오직 두 사람의 완벽한 합만으로 스타디움을 장악하는 이들의 미니멀리즘은 가장 현대적인 형태의 하드 록을 보여줍니다.


결국 로열 블러드의 음악은 21세기 록커가 지향해야 할 '효율적 야성'에 닿아 있는데요. 불필요한 인원과 구성을 덜어내고 오직 핵심적인 타격감에만 집중했을 때, 록은 비로소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마이크 커는 자신의 베이스 한 대로 증명해 보입니다. 그 믿기지 않는 묵직함은 규격화된 사운드에 길든 리스너들의 고막을 벼락처럼 내리치는 통쾌한 일격으로 느껴지네요.



https://youtu.be/qN4ooNx77u0

특집의 대미를 장식할 주인공은 아이돌의 견고한 껍질을 깨고 21세기 록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거듭난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입니다. 그의 솔로 데뷔곡 'Sign of the Times'는 그가 단순히 유행을 쫓는 팝스타가 아니라, 록의 황금기였던 70년대의 유산을 계승하는 진정한 록커임을 선포한 사건이었는데요. 5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 동안 서서히 고조되는 웅장한 피아노 선율과 폭발적인 보컬은 데이비드 보위와 퀸이 구축했던 글램 록의 낭만적인 비장미를 21세기에 재현해 냅니다.


이 곡에서 해리 스타일스는 시대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이 교차하는 지점을 노래하는데요. "우리는 왜 도망쳐야만 하는가"라고 묻는 그의 목소리에는 아이돌 시절의 가벼움을 걷어낸 처절한 무게감이 실려 있습니다. 화려하고 유연한 패션으로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파격적인 비주얼을 보여주면서도, 무대 위에서 뿜어내는 에너지는 가장 고전적이고 정통적인 록스타의 그것을 닮아 있는데요. 그는 과거의 영광을 복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세련된 감각으로 '록의 품격'을 현대적으로 복구해 냈습니다.


그의 'Sign of the Times'는 21세기 록이 나아가야 할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데요. 브랜든 플라워스의 역설, 알렉스 밴드의 결핍, 타이슨 리터의 저항, 마이크 커의 전복을 지나 도착한 종착역은 바로 이 거대한 '포용'과 '계승'입니다. 시대의 징후를 읽어내고 그 안에서 불멸의 낭만을 노래하는 해리 스타일스의 목소리는, 록이라는 장르가 여전히 우리 시대의 가장 뜨거운 심장박동임을 증명하는 희망으로 들리네요.



결국 우리가 이들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이유는, 규격화된 세상이 결코 채워줄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해방감이 록의 선율 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브랜든 플라워스의 서늘한 질투부터 해리 스타일스가 포효하는 시대의 징후까지, 이 다섯 명의 록커는 '정상'이라는 궤도를 이탈한 우리 모두가 사실은 각자의 영토를 가진 주인공임을 증명해 보였죠.


록은 결코 죽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모습과 형체를 바꾸어, 더 은밀하고 치열하게 우리의 심장박동을 대신하고 있을 뿐인데요. 당신의 플레이리스트에 남은 이 뜨거운 흔적들이, 지루한 일상을 버텨낼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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