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메탈의 제왕 머틀리 크루, 음악으로 증명한 1억 장의 전설
"가장 화려했고, 가장 위험했던 그들의 음악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sex, drugs & rock'n roll이라는 고전적인 공식을 가장 극적으로 체현했던 밴드, 머틀리 크루. 80년대 LA의 선셋 스트립을 집어삼켰던 그들의 사운드는 단순히 유행을 넘어 하나의 시대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데뷔 앨범의 풋풋한 날것의 에너지부터 전 세계를 호령한 전성기, 그리고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그들의 음악적 발자취를 지금부터 앨범별로 되새겨보려 합니다.
밴드가 셀프 프로듀싱해서 내놓은 데뷔 앨범으로, 머틀리 크루의 독자 레이블인 레더 레코드에서 900장을 초판으로 찍어냈습니다. 상당한 인기를 끌어서 결국 메이저 음반사인 일렉트라 레코드와 계약하는 토대를 쌓아준 앨범이죠.
데뷔 앨범에서 싱글 커트된 두곡중 하나로, 머틀리 크루 초기 날것의 에너지가 살아있는 곡입니다. 나중에 베스트앨범에 리믹스된 버전으로 실렸는데요. 뮤비는 밴드 자체에서 감독했으며, 원래 밴드는 사타니즘과 거~의 관련이 없지만, 튀어 보이기 위해서 집어넣었다는군요. :)
Shout At The Devil(1983)
(니키 식스가 존경하는 비틀즈의 렛 잇 비 앨범 표지에서 모티브를 얻지 않았을까 합니다)
(렛 잇 비 앨범 표지)
머틀리 크루의 성공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앨범이며, 그들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밴드가 유명해지자 기독교 보수단체들이 사타니즘을 신봉힌디며 들고일어나기 시작했는데요. 오히려 밴드에게는 훌륭한 노이즈 마케팅이 되었죠.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7위까지 올라갔고, 싱글 'Looks that Kill'은 싱글차트 54위에 올랐습니다. 1997년까지의 집계로 4백만 장이 넘게 팔렸고, 대부분을 무에서 유를 창조한 밴드의 힘이었다고 하겠네요. 이제 머틀리 크루는 데뷔때와 비교불가한 거물 밴드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두 번째 앨범의 최고 히트곡입니다. 밴드가 MTV에 처음으로 선보인 뮤비이며, 믹 마스의 기타 리프 중에서는 가장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Theatre Of Pain(1985)
빈스 닐이 저지른 가장 큰 범죄인 음주운전 사고로, 하노이 록스의 드러머가 사망하고 상대 차량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중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앨범이 발매될 때, 빈스 닐은 감옥에 갇혀있었죠(...)
그렇지만 이 앨범은 두 번째 앨범의 성공을 넘어섰는데요.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6위에, 스모킨 인 더 보이즈 룸과 홈 스위트 홈은 각각 싱글차트 18위와 89위에 올랐습니다.
밴드를 대표하는 발라드로, 베스트 앨범에 리믹스되어 실리면서 사랑받은 곡입니다. 대부분의 송라이팅을 담당하는 니키 식스와 믹 마스의 곡이 아니라 빈스 닐이 작곡한 노래인데요. 1991년 버전이 빌보드 싱글차트 37위에 오르면서 밴드의 공식적인 마지막 top40 싱글로 남았네요.
Girls, Girls, Girls(1985)
밴드의 네 번째 앨범인데요. 음악에 원숙한 세련미가 덧붙여졌습니다. 퇴폐와 향락적 이미지의 머틀리 크루이지만, 이 앨범은 올뮤직에서 별 4개의 높은 평가를 얻어냈는데요.
그들의 일반적인 이미지와 달리 앨범에 실린 'Nona'는, 어릴 적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니키 식스의 자전적인 곡으로, 그들의 내면을 보여주는 곡이었습니다.
4집은 빌보드 앨범차트 2위까지 올라서 크게 성공했으며, 타이틀 곡인 'GIRLS, GIRLS, GIRLS'는 싱글 차트 12위에 올랐습니다.
4집의 최고 히트곡인데요. 오리지널 뮤비는 잘 아시듯이 19금에 가까워서, 오디오 음질 향상 버전으로 골랐습니다. 궁금한 분들은 직접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
(머틀리 크루의 라이브에서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코러스 듀오, 내스티 해빗츠입니다)
참, 믹 마스 형님은 내스티 해빗츠의 멤버 에미 캐닌과 결혼에 골인합니다. 비록 그리 오래가진 못했지만 말이죠.(1990~1994) 머틀리 크루의 전성기 앨범인 걸스 걸스 걸스와 닥터 필굿 앨범 투어에 모두 참여한 멤버들이라서, 사실상 밴드의 제5 멤버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커플의 단란했던 한 때)
이혼 후에도 독자적인 음악 생활을 이어가며, 앨리스 인 썬더랜드라 이름 붙인 자신의 밴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셨는데요. 그러나 지난 2017년에 향년 62세로 사망하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Dr. Feelgood(1989)
많은 팬들이 머틀리 크루 음악의 정점으로 평가하는 앨범입니다.
이 앨범으로 빌보드 앨범차트를 정복했으며, 유명 프로듀서 밥 록과 작업하면서 매우 다채로운 사운드를 들려주는데요. 6백만 매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상업적으로도 가장 성공했습니다.
그들의 최고 히트곡 닥터 필굿을 포함한 다섯 곡의 Top 40 싱글을 쏟아내면서 1989년을 자신들의 해로 만들었죠. 메탈리카의 라스 울리히는 이 앨범을 듣고 밥 록을 만나서 자신들의 다음 앨범을 제작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됩니다.
빌보드 6위까지 오른 그들의 최고 히트곡입니다. 사실 이 곡 앞에 있는 짤막한 TN'T와 이어서 들어야 제맛인데요. 뮤비에서는 단독으로 플레이되는군요. 밴드에게 첫 골드 싱글이 되었으며, 니키 식스와 믹 마스의 합작으로 완성된 곡입니다.
Decade of Decadence 81-91(1991)
밴드의 첫 베스트 앨범이자 사실상 밴드의 집대성입니다. 리믹스된 3곡과 라이브 버전으로 실린 'Kickstart my Heart', 그리고 두곡의 신곡과 밴드가 리메이크한 토미 볼린의 'teaser', 섹스 피스톨즈의 'anarchy in the U.K'등을 담고 있습니다.
(앨범 뒷면입니다. 리스트를 보시면, 알뜰살뜰하게 밴드의 대표곡들을 모아놓았죠)
편집 음반이지만 빌보드 앨범차트 2위까지 올랐으며, 신곡과 홈 스위트 홈의 리믹스 버전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1997년에 더블 플래티넘을 수상할 만큼 판매량도 쏠쏠했네요. 사실상 이 앨범까지가 머틀리 크루의 황금기였습니다.
베스트 앨범에 실린 곡입니다. 확실히 농익은 사운드를 들려주는데요. 빈스 닐은 이 뮤비를 찍으면서 과연 자신이 곧 밴드와 결별할 것을 알았을지 궁금해지네요.
MOTLEY CRUE(1994)
이후 새 보컬리스트 존 코라비를 영입해서 셀프타이틀 앨범을 발매합니다. 그러나 이전 앨범들에 비해서 팬들에게는 외면받았는데요. 일단 빈스 닐의 부재가 생각보다 컸고, 사운드도 얼터너티브도 아닌 것이 LA 메탈도 아닌 어정쩡한 면이 강했습니다.
그렇지만 믹 마스의 의견에 따르면 자신에게는 머틀리 크루의 화이트 앨범이라 부를 정도로 애착이 있었다고 합니다. 음악적으로는 밴드의 유산들 중 최고라고 말이죠.
밴드의 숨겨진 명곡입니다. 전혀 달라진 분위기와 함께, 정통 록 보컬리스트 존 코라비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수 있네요.
이후 이야기는 1부에서 언급한 그대로입니다. 믹 마스 형님은 조용히 은퇴하신 줄만 알았는데, 밴드의 나머지 멤버들과 소속사를 포함한 금전적 분쟁이 있었고, 결국은 승소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40년간 함께 한 그들이기에, 믹 형님이 받았을 상처가 컸을 텐데요. 그래도 인터뷰에서는 큰 형님답게 끝까지 쿨한 톤을 유지하시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 우리를 다시 열광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본질' 그 자체다." 초창기의 거침없는 질주부터 멤버 교체라는 진통을 겪으며 완성된 후기작까지, 머틀리 크루의 역사는 곧 8090 록 씬의 파란만장한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비록 시간은 흘러 머리칼은 짧아지고 무대 위의 풍경도 변했지만, 스피커를 뚫고 나오는 그들의 강렬한 리프는 여전히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합니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치 않는 야성으로 록의 전설이 된 그들, 머틀리 크루의 행보는 앞으로도 우리에게 가장 뜨거운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