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팔 할, 20세기 전자오락실 이야기(8)

사장님이 직접 쌓아주던 오십 원짜리 동전, 그 묵직한 전사의 입장권

by 동물의삽

오늘은 1989년 게임들로 찾아왔습니다. 그때 오락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뭐였는지 기억하시나요? 화려한 게임 화면보다 먼저 우리를 맞이했던 건, 카운터 위에 사장님이 직접 손으로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오십 원짜리 동전 탑이었죠. 요즘처럼 동전 교환기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면 사장님이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오십 원짜리 스무 개를 손바닥에 툭 얹어주시곤 했습니다. 그 묵직한 동전 뭉치를 받아들 때의 기분이란... 그건 단순한 잔돈이 아니라 1989년이라는 거친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우리만의 아케이드 입장권이었던 셈이죠.



베이 루트(Bay Route), 썬소프트/세가

https://youtu.be/QIM4sQI6eu0

코나미의 혼두라와 조금 비슷한 모습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다양한 무기들을 가지고 시작한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었죠.(하다 보면 무기 바꿀 새도 없이 하나로 정착하게 됩니다만:) 스테이지와 보스에 따라 무기들을 상황에 맞게 선택해서 사용하는 것이 클리어의 지름길이었습니다.



다이너스티 워즈(천지를 먹다), 캡콤

https://youtu.be/MmFTKTfdEUY


슈에이사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게임인데요.(김태랑으로 유명한 모토야마 히로시 원작) 만화의 캐릭터 디자인을 사용해서 몰입도를 높였고, 필마단기, 혹은 2인용으로 적들을 쓸어버리는 쾌감이 특징이었죠. 2탄도 인기가 많았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1탄을 더 높게 평가한답니다.



이-스와트, 세가

https://youtu.be/vNTUx7E_97g

게임 초반에는 경관으로써 일반 무장과 킥으로 적들을 상대하다가, 중반 이후 강화복이 등장하면서 이 게임의 진정한 재미가 시작됩니다. 훨씬 강화된 무기와 체력으로 한결 편안하게 학살(?)을 즐길 수 있었는데요. 다만 보스전이 제법 어려워졌던 기억이 나네요.



파이널 파이트, 캡콤

https://youtu.be/5YcfUCVcXEk

(그때는 몰랐지만, 근육맨 해거가 사실은 시장님이었다는군요.)


딸을 납치당한 해거와 딸의 애인 코디, 그리고 코디의 친구 가이 세 명이 주인공인데요. 주로 혼자 할 때는 코디를 많이들 했습니다. 적을 한쪽에 몰아넣고 와리가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고수가 되어 있는 게임이었는데요. 그 타이밍을 익힐 때까지가 관건이었죠. 1989년의 최고 인기 액션게임이라 하겠습니다.



골든 엑스(황금도끼), 세가

https://youtu.be/HQgHoshKghg


보통 이 게임을 할 때는 주인공처럼 생긴 남자 캐릭터를 별로 안 하고, 드워프 할아범으로 주로 플레이했던 기억이 나네요. 일단 도끼 파워가 어마어마해서(...) 플레이하기 제일 편했습니다. 그리고 물약을 많이 먹을 수 있는 여성 플레이어도 많이 했죠. 결국 2인용도 드워프 여자 조합이 킹왕짱이었습니다.



미드나잇 레지스탕스, 데이터 이스트

https://youtu.be/TdNmMZQqP7A

이 게임이 들어왔을 때, 스틱이 팔각형으로 바뀌어서 신기해했었는데요. 8방향으로 무기를 고정해서 발사할 수 있는 신박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열쇠 가득 채워서 무기 사는 재미도 쏠쏠했죠. 제가 기억하는 최고 무기는 화염방사기였는데요. 아무리 장비가 좋아도 중간에 살아서는 지나갈 수 없는 곳이 등장했던, 엄청난 난이도의 게임이었습니다.



팡, 미첼

https://youtu.be/UyhP6uLk9Fg

캐릭터가 아기자기하고 배우기가 쉬워서 여학생들도 즐겨했던 게임인데요. 초반엔 할 만 하지만 무기를 잘못 먹거나 후반으로 가면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습니다. 그나마 작살 두 개가 한꺼번에 나가는 무기를 얻으면 할 만했었죠. 50 스테이지가 마지막이라는데, 거기까지 가는 사람을 아직 못 봤습니다.



스트라이더 비룡, 캡콤

https://youtu.be/IK8ZzfCZjNw


잘 디자인된 스테이지를 날아다니며(?) 적들을 베어 넘기는 시원한 액션게임입니다. 화려한 그래픽과 BGM으로도 인기가 높았는데요. 정확히 10년 후에 3D로 만들어진 2편이 나와서 또 한 번 인기를 끌었습니다. 좀 짧긴 하지만 2014년에 PC 버전으로도 만들어졌었네요.



UN 스쿼드론(에이리어 88), 캡콤

https://youtu.be/pY8yMGefNB8

오락실과 슈퍼패미컴 사용자들 모두에게 극찬받은 최고의 슈팅게임 중 하나인 에이리어 88입니다. 원작 애니메이션도 엄청 감동적으로 봤었는데요. 게임에서는 그렉을 플레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인 카자마도 아니고 미키로 많이 했는데요. 2인용을 하면 미키와 그렉으로 할 때 제일 밸런스가 좋았던 기억입니다.



베이퍼 트레일(공아), 데이터 이스트

https://youtu.be/K4Ne4r9OHNw

박진감 넘치는 음악과 함께 시작하는 명작 슈팅게임입니다. 기체를 고를 수 있었는데 보통은 밸런스형인 실프를 많이 선택했죠. 무기를 꾸준히 업그레이드하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우리 기체(적의 보스가 아니라!!)의 탄막을 볼 수 있는데요. 본격 대학살의 쾌감을 만끽할 수 있는 게임이었죠.



WWF 슈퍼스타즈, 테크노스 재팬

https://youtu.be/MScbQDpQIQ0

오락실용 레슬링 게임은 종종 나왔었는데요. 실제 WWF 선수들을 그대로 가져와서, 직접 조종할 수 있게 해 준 게임으로는 최초였습니다. 오락실에서 인기도 엄청났는데요. 게임 때문에 역으로 AFKN에서 해주던 WWF 방송을 밤새워가며 보게 만드는데 일조했죠. 교실에서 책상 밀어놓고 레슬링 하는 광경도 쉽게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워리어와 빅보스맨 콤비가 초보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걸로 기억하네요.




어느덧 사장님이 쌓아주던 그 오십 원의 국룰도 깨졌고, 동네 오락실들도 하나둘 자취를 감췄네요. 저도 이제는 넥타이를 맨 중년이 되어버렸지만, 가끔 삶이 팍팍하게 느껴질 때면 손가락 끝에 남아있던 그 시절 조이스틱의 투박한 감각이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1989년의 우리는 단돈 오십 원만 있어도 온 우주를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었잖아요. 비록 지금은 백 원, 천 원의 가치조차 희미해진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 가슴 속엔 여전히 그 시절의 뜨거웠던 비트가 흐르고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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