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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고은 Nov 21. 2024

오랜만에 불합격

2008년 임용고시를 치른 이후로 오랜만에 시험준비를 했다.

신설교 교사공모지원.


신설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할 만큼 업무 강도가 세서 창립멤버는 비석에 이름도 새겨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런 곳에 내가 뼈를 묻을 각오로 지원을 한 것이다. 

내년에 타 시도로 이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육아를 하는 입장에서는 잃는 것보다 얻는 게 크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정성껏, 지원서를 고쳐쓰기를 일주일.

심층면접을 보러오라는 공문이 왔고, 기쁨도 잠시,

그렇게 또 일주일을 면접준비로 새벽까지 자료를 찾고 연습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학교도 시험기간에, 온갖 평가에, 학생생활지도에, 학기말 업무가 몰려오기 시작하는 시즌이라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느라 입술이 다 부르틀정도로 노동 강도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이루 말도 못 했지만.


오랜만에 수험생이 된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이들이 시험준비하며 느끼는 불안감을 나도 같이 느꼈고 도서관에서 마감종이 울릴 때까지 있으니 뿌듯함이 컸다. 


마음속으로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엄습해 오면 '내가 붙지, 누가 붙어!' 호기롭게 다짐했었다.

긍정적인 마음이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온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교육청에서 진행된 면접은 말 그대로 심층면접.

면접 번호를 뽑았고, 나는 꼴찌가 되어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면접관을 세 시간 만에 만났다.

아니, 면접관들.. 못해도 15명이 넘는 사람들이 나만 응시했고

10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는 주절주절 말을 이어나갔다.


면접이 끝난 직후, '아, 망했다.'

아이들이 쓰는 말 중에 하나가 "망했다."이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망했다고 표현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나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소감을 그렇게 표현했다. 면접을 잘 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결과는 기다려봤다. 


무대체질이 전혀 아닌 나는 역시나 버벅댔고 긴장했고 떨었다.

교사로 정년퇴직을 하신 이모가 멀리서 부터 오셔서 면접 준비를 잠깐이나마 도와주셨는데, 그때의 실력을 뽐내지 못한 것이 마냥 아쉽고 속상했다.


어제, 최종발표가 있는 날. 합격자에게만 공문이 간다는 메시지는 이미 나에게 불합격을 알리는 신호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공문은 오지 않았고 나는 떨어졌다. 10월 말부터 준비했던 일이 한순간에 끝나버린 상실감과 허탈함이 밀려오면서. 어제부터 '나는 괜찮다, 더 좋은 일이 생기려고 그러는 것이다.'라고 위로했지만 사실은 속상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려던 것이었는지.


오늘 아침 학교 갈 준비를 하면서 문득 돌아가신 아빠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나면서 울컥 눈물이 나왔다.

아빠에게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혼잣말을 하던 나였는데, 지금은 아빠 품에 안겨서 위로를 받고 싶었다. 나오는 눈물을 얼른 다른 생각으로 집어넣고 오늘은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이어폰을 꽂아, 슬픈 노래를 들었다.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기운이 없어서 평소와 달리 터덜터덜 걸으며 학교로 갔다.


아침 조회시간에는 다시 텐션을 올렸다. 

교실문을 열고 인사를 하고, 오늘 일정을 이야기해 주고 아이들에게 농담도 하고, 그렇게 또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럴 때는 바쁜 게 낫지 싶다.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


더 좋은 일이 생기려고 그런 걸 거야. 그렇게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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