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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선생 May 02. 2019

띠커스 #8 스몰웨딩이면 축의금은 어떻게 줘야 돼?


 “그냥 청첩장에 계좌번호를 찍어. 모바일 청첩장에도 크게 보이게끔 딱! ㅇㅇ은행 938-292...”

 “계좌만 딱 찍기 민망스러우면, 조심스레 ‘마음 보내실 곳’이라고 쓰면 되겠다. 혹시나 못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깐, ‘마음 꼭! 잊지 않고! 보내실 곳’이라고 쓰던지 허허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친구들의 우스갯소리처럼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는 게 깔끔할 뻔했다. 하지만 당시에 난 왠지 저렇게 하면 내가 아주 상스럽고, 결혼 앞두고 돈만 밝히는 놈이 될 것만 같은 어쭙잖은 선비 마인드가 앞섰다. (그래 놓고 안 주면 또 두고두고 기억할 거면서. 난 참 피곤한 구석이 많은 성격이다.)

 실제로 스몰웨딩을 알리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베스트 3 중 하나가 ‘축의금은 어떻게 주냐?’였다. 그럼 나도 우물쭈물거리다가 ‘아하.. 알아서 주시던지 뭐 나중에 제가 다시 연락을 드리던지 할게요’라는 애매한 답만 남기곤 했다. 그들도 참 답답했을 것 같다. 자신이 먼저 연락해서 계좌를 알려 달라고 재촉을 해야 하는 건지, 아님 신랑과 가까운 최측근에게 전달을 하는 게 맞는지, 아참! 그 최측근도 결혼식에 못 가지. 계좌나 메신저로 보내면 또 성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대체 어쩌란 말이지.

 차라리 나와 막한 사이들은 ‘스몰웨딩이니깐 축의금은 안 줘도 되겠네?’라고 심장 떨어지는 농담이라도 건네면 ‘내가 어떻게든 한 명 한 명 다 받아낼 거다!’라고 되받아치기라도 해서 서로서로 고민할 상황이 없어진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나의 스몰웨딩 덕에, 명확하지 않은 축의금 규정 덕에 안 해도 될 복잡한 고민을 했을 수도 있겠다란 생각을 하니 뒤늦게 참 미안해진다.    

 ‘이걸 어떻게 선물로 보내줘야 되나? 선물도 참 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 안 주니만 못한데. 센스 없는 선물 줬다고 두고두고 흉볼 수도 있잖아. 살림살이를 사주기엔 액수가 또 애매하고.. 누구랑 같이 돈을 합쳐서 좀 더 큰 액수의 선물을 골라봐야 하나. 누구한테 물어보지? 아 그냥 결혼식 참석해서 봉투에 넣어서 내는 게 딱 깔끔하고 편한데, 못 가게 되면 가는 사람 계좌로 부탁하거나. 결혼 당사자 계좌로 바로 쏘기도 참 애매하네.’

 실제로 이런 축의금 문제 때문에 한창 머리가 터질 것 같았을 때, 모바일 청첩장에 따로 삽입할 문구를 적어 보기도 했다. 물론 ‘아 이 자식 결혼하면서 참 말 많네. 그냥 계좌번호만 찍지.’라고 욕할까 봐 실제로 활용하지는 못했지만, 혹시나 나와 같은 스몰웨딩을 앞둔 분들이 참고하고 작은 도움이나마 됐으면 좋겠다.



<알리는 글>

 직계 가족들만 초대하는 스몰웨딩이 저도 처음이고, 여러분도 생소하신지라 축의금의 액수, 전달 방법과 관련된 질문들이 정말 많고 저도 고민이 점점 쌓여갑니다.

 축의금 안 받는 결혼식을 할 만큼의 호탕한 성격과 재력을 가지지 못해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보기를 드리려 합니다. 보기가 두 개밖에 없는, 난이도 ‘하’인 아주 쉬운 문제입니다.

 [1번] “당연히 의례 하는 만큼, 또 내가 받은 만큼 줘야지.”

 초대해서 식사 대접도 제대로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첫걸음 내딛는 가정에 큰 힘 보태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귀하의 수많은 경조사 때 저 역시 함께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어려워 마시고 기꺼이 불러 주십쇼. 길고 험난한 인생, 저와 함께 가시죠.

 [2번] “식도 안 하면서, 초대도 안 하면서 무슨 축의금?”

 그럴 수 있죠. 암요. 이게 다 제가 인생을 잘 못 산 탓입니다. 제가 죽일 놈이죠. 제가 아주 큰 잘못을 했습니다!
 어차피 이번 생, 저는 틀린 거 같으니 다음 생에나 만날 수 있으면 만납시다.

 [답안 제출 방법]
 
 *ㅇㅇ은행 8220- 93202 XXX (입금하시자마자 저에게 영광스러운 ‘입금자명’ 석자가 문자로 날아옵니다.)
 *각종 ㅇㅇ 페이 (성의 없다 생각일랑 접어두시길 바랍니다. 축하해 주시는 마음! 저는 그 마음만 바라봅니다.)





 이렇게 다시 쓰고 보니, ‘참 말 많네 이 자식’ 이란 말이 안 나올 수 없겠다. 그냥 내가 욕먹더라도 계좌 번호만 깔끔하게 찍어두는 게 낫지 싶다.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어서 축의금 보내 주신 분들에게 진심을 전하고 싶다.  결혼 전엔 신랑들의 ‘고맙습니다’란 다섯 글자가 그냥 의례 하는 말인 줄로만 알았는데, 나도 겪어보니 절로 겸허해지고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다.

 아 그리고 이름 대신 ‘축의금’ 이란 석자만 적어서, 10만 원이란 거금을 제 통장으로 보내신 분을 찾습니다. 결혼한 지 두 달이 지나도록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수수께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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