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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선생 Aug 11. 2019

[퇴사일기 #1] 언제 처음 퇴사를 꿈꿨나요?


 입대 후, 요즘 말로 ‘현타’가 왔다. 천상 군대 체질이라 믿었는데, 여러 가지 놀이 중에서도 전쟁놀이나 총싸움을 제일 좋아했고, ‘델타포스’ 따위의 B급 영화일지라도 특공대가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열광했던 내가 입대 3일 만에 탈영을 꿈꾸게 되었다. 늦은 나이에 어렵사리 첫 취업에 성공한 내가 회사 체질이 아님을 느끼게 된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들에 비해 제법 늦은 나이(31살)에 공채를 통해 입사 한 덕에 ‘어렵사리 들어간 나름 대기업을 1년 만에 과감히 때려치운 용자’ 취급을 본의 아니게 받게 되었다. 자발적 퇴사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도망에 가까웠지만 ‘꿈을 위해 안정된 직장을 내려놓은 사람’ 이란 프레임이 씌워진 탓에 당장이라도 세계여행이나 워킹 홀리데이, 최소 4박 5일 동남아 여행이라도 다녀와야 될 것 같았다.


 차마 퇴사하지 못하는 동료들의 바람이 더해지고 대리만족 심리까지 입혀져 한동안 ‘꿈의 퇴사자’로 불리었다. 덕분에 이런저런 퇴사 관련된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아 왔다. 오늘은 그중 하나, 바로 ‘왜 그만두었는가?’ ‘언제 처음 퇴사를 생각했나?’ 란 질문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다.

 사실 ‘왜 그만두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 그러니깐 퇴사에 이르기까지 내가 겪었던, (겉으로 또는 속으로) 일련의 과정들은 그리 간단하게 단답형으로 정리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나눠 보자면 크게 두 가지다. 입사 후 조직과 업무에 대한 부적응과 부당함,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기까지의 전반전. 과연 퇴사해도 괜찮을지, 그놈의 ‘사람 구실’을 또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할지 라는 고민의 밤을 보냈던 후반전.

 오늘은 그 전반전의 시간 중에서 ‘회사란 정말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나는 정말 회사에 적합한 인간이 아니구나.’라고 느꼈던 부적응의 순간, 처음 퇴사를 떠올린 시간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물론 그땐 내가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순간이라 뭘 모르긴 했다. 취업 전 5년이란 긴 시간을 ‘고시생’ 신분으로 보냈으니 사회성이 상당히 고갈된 상태였을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갈 일도 있었음을 쿨하게 인정한다.)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의 기초 ‘이메일’

 입사하자마자 몇 달 동안 현장 영업관리 일을 하다가 본사 사무직으로 옮긴 지 며칠 안된 시점이었다. 변방에 있다 중앙부서로 들어왔으니 업무와 관련된 이메일의 양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이메일 하나하나를 늘 정독하는 습관부터 들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차에 수신인이 ‘김한빛’ 딱 한 사람으로 지정된 이메일이 눈에 띄었다.

 ‘한빛님. 제가 ㅇㅇ 교육 차 2주간 자리를 비울 예정입니다.
 ㅇㅇ 과장님께 여쭤보니 주간 보고 관련해서 인수인계를 한빛님께 하라고 하시네요.
 보고 양식 엑셀 파일 첨부할게요.’

 발신인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니, 뒷자리의 같은 팀 동료였다. 파티션이 쳐져 있는 것도 아닌 바로 뒤돌면 뒤통수가 눈 앞에 가득 채워지는, 바로 뒷자리! 일하다가 땅에 디딘 두발에 힘을 빡 주고 바퀴 달린 의자를 밀어내면 퍽하고 부딪힐, 그래서 ‘윽! 아니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라고 화들짝 놀랄, 정말 바로 뒷자리!

 처음엔 이메일로 엑셀 파일과 내용을 대충 보내 놓고 곧 나에게 이런저런 얘기라도 해주겠지 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한빛님. 메일 보낸 거 보셨죠? 제가 다음 주에..... 뭐라 뭐라 주저리주저리......’

 하지만 이메일로 끝이었다. 그 동료는 며칠 뒤 예고한 대로 교육을 위해 2주간 자리를 비웠고 결국 난 그 사람의 보고 업무를 2주간 대신하게 되었다. 뭘 덧붙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깔끔하고 완벽한 업무의 인수인계였다.  

 물론 그 사람이 업무적으로 잘못을 한 건 없다. 명확히 이메일을 통해 본인의 사정과 업무 내용을 밝혔고. 첨부한 엑셀 파일을 열고 그 수식만 들여다봐도 따로 설명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는 자료였으니깐. 심지어 ㅇㅇ과장의 승인을 받은, 개인적인 부탁이 아닌 업무적인 인수인계임을 재차 밝히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불쾌함을 넘어서서 그 사무실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 혼자 동떨어져 있는 기분을 느낀 건 대체 무엇일까?

 ‘말 한마디라도 덧붙여 줬으면 좋았을 텐데. 나 교육 다녀온다. 미안한데 한빛님이 나 대신 맡아줘야 할 것 같다. 부탁한다.’  

 이메일로 시작해서 이메일로 끝나는 곳이 회사라곤 하지만. 물론 신입 사원 연수 때부터 ‘이메일 제목/본문 작성/파일 첨부하기/수신인 설정 같은 내용을 철저히 교육을 받아 왔지만. 이 놈의 이메일로만, 오로지 이메일을 통해서만 업무가 이뤄질 수 있는 곳이 회사라는 걸 처음 깨달은 날 나의 기분은 지금도 참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얄궂었다.

 좋게 말하면 아날로그 감성, 심플하게 말하면 촌놈 또는 꼰대 감성 따위는 집에 두고 오지 못한, 쓸데없는 감성이란 짐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출근한 내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무실에 자리한 수많은 사람들의 뒤통수와 정수리를 쳐다보면서, 그 순간에도 수많은 이메일을 주고받는 타자 소리를 들으며, 나는 참 외로웠다.

 그리고 참 바보같이 자존감까지 스스로 긁어 부스럼을 내버렸다. 난 정말 이 사무실, 회사라는 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구나. 넥타이만 매고 있다고 다 똑같은 직장인이 아니구나. 얼른 이 답답한 빌딩 숲을 벗어나 넥타이를 벗어던지고 동네 분식집에서 순대나 끊어다가 소주 한 병 걸치고 풀침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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