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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선생 Mar 05. 2021

대기업 퇴사를 결심하게 된 순간 #1


 마선생 유튜브 채널 https://bit.ly/2KlQGI4







최근에 제가 올린 글들을 보니까

대부분 연애와 관련된 얘기가 참 많았습니다.

근데 연애와 관련 없는 것들 중에 그나마 반응이 좋았던 게 딱 하나 있었죠.


‘퇴사’  


그 퇴사 이야기를 조금만 더 풀어보고 싶습니다.

반응과 별개로,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변곡점(?)이 되었던 순간이었던 지라

10년이 넘은 이야기인 데도 자잘하게 풀고 싶은 썰들이 많네요.

오늘의 주제! <퇴사를 결심하게 된 순간>


하나의 글로 꾸리기엔 양이 너무 많아서 오늘은 1편만 보여 드릴 텐데,

반응이 좋으면 2편까지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큰 줄기에서 퇴사할 당시를 돌아보면 딱 두 번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첫째, 내가 이거 하려고 그렇게 공부했나? 싶은 현타가 오는 순간!

소위 말하는 직무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왔습니다.


(자칫하면 제 글이 직무에 대한 평가가 될 수 있으니깐

미리 말할겠습니다. 이건 그냥 제 개인적인 감정일 뿐입니다.

사실 저는 '회사생활+직무'를 잘해 나가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함량 미달의 회사원이었습니다.)



저는 ‘영업관리’라는 부문으로 지원을 했는데.

취준생 때는 ‘영업관리’가 뭘 하는 건 지도 몰랐어요.

그냥 저처럼 스펙 없고 딱히 서류에 쓸 것 없는

애들이 만만하게 지원하는 데가 영업관리여서 쓴 거예요.

경영기획 이런 쪽은 경영학과 친구들이,

인사총무 이런 데는 스펙 좋은 취준생들이 버티고 있으니까

어차피 거기는 써봐야 서류 탈락이다! 싶어서 쓴 곳이 ‘영업관리’였던 거죠.


제가 맡은 직무는 영업관리 중에서도 방문판매하는 직영 영업소의 소장이 되는 건데

신입 사원 연수 끝나고 첫 출근 한 날, 팀장이 저를 앉혀 두고 이런저런 훈시(?)를 좀 하더니

주소 하나 적어 주는 겁니다. 그리고는 ‘자 이제 떠나라’


본사와 전철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지역이었습니다.

도착했더니 진짜 동네에 흔히 보이는 허름한 상가 건물 3층 구석에 영업소가 있는 겁니다.

들어갔더니 여자 직원 한 명 있고, ‘오 새로 오신 소장님이네요!’ 이러는데..

정말 그 회사 입사 안 했으면, 그런 영업소의 정체가 있는 줄도 몰랐을 그런 분위기였어요.

옆에 피시방 하나 있었는데 맨날 화장실에 중고딩 놈들 와서 담배 처 펴대고.  


그때부터 영업하는 분들 이랑 같이 길거리 나가서 판촉 돌리고

빌딩 탄다 그러죠? 건물 꼭대기부터 가게든 병원이든 하나하나 문 열고 들어가서

‘안녕하세요~ 혹시 이것 좀~’

영업소장이라고 영업하는 분들 시켜 먹고 이런 거 절대 없어요.

오히려 ‘우리 제발 영업 좀 합시다’ ‘본사에서 매출 안 나온다고 뭐라고 해요’

하고 사정사정을 하는 분위기이죠.


그러다가 아침에 출근하는데 전철역 앞에서

신한은행이었나? 아직도 은행 이름까지 기억합니다.

은행 직원들이 일렬로 서 가지고 지점 이름 찍혀 있는 물티슈 같은 거 나눠주면서

인사를 막 크게 하고 있는 거 에요.  

그걸 받으면서 그 남자랑 눈이 딱 마주쳤는데… 딱 봐도 때깔이 신입사원이야.

나랑 별반 처지가 다를 바 없는 거죠. 그 순간 뭔가 서글프더라고.


걔도 나름 금융권, 그것도 신한은행 입사했다고 엄청 좋아하고 그랬을 텐데

나도 그때 31살이어서. 공채로는 거의 막차였고, 감지덕지하는 마음으로 회사였거든요.

그런데도 밀려오는 현타를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빚내서 대학 등록금 내고 꾸역꾸역 졸업했나?’


차라리 내가

‘영업으로 큰돈 한번 벌어 보겠다!’  

‘밑바닥부터 배워가겠다.’

라는 마음으로 아예 시작부터 세일즈맨으로 작정한 거면 모르겠는데.  

나름 대기업 사무직이라고, 주변에 좋다고 자랑 다하고 입사한 건데.

어찌 보면 제가 철이 없었던 거죠.

대기업, 그것도 넥타이에 사원증 매달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환상만 있었던 거니까.


두 번째, 회사라는 시스템에 대한 현타가 오는 순간.

제가 다니던 회사는 저처럼 신입사원 때는 현장 생활 2-3년 하다가

그다음에 본사로 올라오는 시스템이었어요.

근데 제가 운이 좋았는지, 때마침 빈자리가 나서 6개월 만에 본사로 올라왔습니다.

‘드디어 탈출이다!’ ‘이제 나도 본사로 출근한다!’

‘이제 사원증 좀 매고 다녀보겠네. 구내식당에서 사원증 띡! 찍고 밥도 먹고!’


뭔가 이제 진짜 대기업 다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죠.

근데 이것도 진짜 잠시! 회사라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현타가 또 오더라고요.


제가 바라본 회사는 소꿉놀이처럼 회사 놀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아빠, 엄마처럼 각자 맡은 바 역할이 있고

그 누구도 그 역할과 전체 룰을 어겨서는 안 되고

월급을 위해서는 무조건 그 룰과 역할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해야만 하는 놀이.

소꿉놀이하는데 중간에 갑자기 누가

‘왜 내가 네 엄마야!’ 이러면 모든 판이 깨져 버리는 거죠.


말 그래도 ‘놀이’ 니까 뭔가 남는 거? 의미? 이런 건 별로 없어요.

그래도 그 역할에 맞게 행동하고 뭔가를 계속해야 됩니다.

이런저런 자료도 만들고 보고도 하고 결재도 해주고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없던 최소한의 의미가 생기게 됩니다.


‘아 저 팀이 필요한 팀이구나.’

‘아 쟤가 중요한 일을 많이 하고 있구나’


바로 옆자리에 있는 팀장님한테 ‘팀장님 근데…’

하고 말로 하면 5분이면 끝날 일이 있다 칩시다.


근데 그게 뭐라고 데이터 뽑아 가지고 엑셀 만들고, 보고용 양식에 걸맞게

반나절 정도 투자를 해야? 뭔가 인정받고 ‘쟤 일 잘한다!’

이런 분위기 있잖아요?


물론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 ‘업무를 자료로 남기기 위해서?’ 이해는 갑니다.

근데 말 그대로 회사 입장에서 ‘돈이 되는’ ‘일’을 하는 게 제일 우선시 돼야 하는데

그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인 엑셀, 피피티 이런 거에 집작하고

그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거죠.


실제로 제가 그만 둘 당시에 있던 곳이 ‘ㅇㅇ전략팀’이었습니다.

내년도 사업계획이라고 해서

한 20장 분량의 피피티를 일주일 내내 만들었던 적이 있었죠.


근데 결과물이라고 보면 정말 신입사원이었던 제가 보기에도

저기 있는 10가지 계획 중에서 진짜 내년에 할 게 몇 개나 있을까? 1-2개나 할까?

심지어 10가지 중에 절반은 작년 사업계획서에도 쓰여 있던 거예요.

그리고 1-2가지는 적당히 그럴싸한 문구들 있잖아요?


‘유튜브 채널 활용,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을 통한 브랜드 이미지 제고’ 이런 거!  


저도 지나고 나서 깨달은 건데

그렇게 뻔한 사업계획을 실제로 만드는 사람들 중에 99%는 그런 생각을 한대요.


‘참신하고 괜찮은 거? 필요 없어. 어차피 팀장님, 부장님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가면 돼.’

‘어차피 저거 실행하고 결과 나올 즈음엔… 나는 여기 없다!’


그 당시 다니던 대기업 회장이 나름 우리나라에서 주식 부자 TOP10 안에 늘 드는 사람이라,

나 따위가 감히 걱정할 건 아니지만,

그런 직원을 수천 명이나 월급 주고 부리고 있는 그 회장이 불쌍하더라고요.

그 사람은 이런 직원들의 속마음을 알까?

알면서도 하나의 부품처럼? 어차피 나사 하나라 생각하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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