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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근 김태현 Nov 17. 2017

나는 다만 나답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

-퇴사하고 여행갑니다-

팀장님,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조직 개편으로 새 부서로 발령이 난 다음 날, 오랜 기간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말을 꺼냈다.

“저 이제 회사 그만두려고요…….”

희망했던 부서로 발령이 난 참이었지만, 그래도 ‘이때다’ 싶어 3년을 함께했던 회사에 이별을 통보했다. 몇 달 전부터 이날을 마음속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맡은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기 전인 지금이 최고의 시점이라고 나름 판단했기 때문이다.

illust by 최진영

언젠가 시골로 가는 길에 있었던 일이다. 목적지로 향하는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인 고속도로를 타고 운전하다가 피곤해져 잠시 휴게소에 들렀다. 스트레칭을 해보고 커피도 한잔하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지만, 앞으로만 길게 뻗어 있는 도로 앞에서 바로 졸음이 몰려왔다. ‘잠시 쉬었다 갈까?’


휴게소에서의 휴식으로는 부족해서 맛집을 찾아 밥을 먹고 온천에도 들려 쉬다가 국도를 타고 꼬물꼬물 가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은 자꾸 고속도로를 다시 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지만, 고속도로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풍경과 신선한 공기에 취해 전원 버튼을 자연스럽게 눌러버렸다.

단지 잠시 쉬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운전대 방향을 돌린 것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예상치 못한 여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에 생기가 돌았고, 목적지에 도착하자 평소에 느끼지 못한 성취감까지 느꼈다.


이렇듯 인생에서도 보이는 길만 따라 앞만 보고 달리지 않고, 익숙지 않은 경로를 찾아 잠시 쉬어 가기로 한 것이다.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거야?”

“사업하려고?”

“회사 잘 다니고 있는 줄 알았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거야?”

“앞으로 계획이 없으면 우선 다니면서 좀 더 생각해봐.”


그만두겠다고 말한 지 하루 만에 나의 퇴사 소식은 빠르게 회사 전체에 퍼졌다. 자리에 앉아있기 힘들 정도로 많은 선배와 동료가 찾아왔다. 물론 퇴사에 대한 반응은 다양했지만,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조언과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생각에 고마움을 넘어 미안한 마음마저 들기도 하였다.


어쩌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떠나는 것보다 매일 함께 울고 웃었던 사람들 곁을 떠난다는 사실에 ‘퇴사’라는 것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잡고, 마침내 나는 오랜 기간 컴퓨터 바탕화면을 지키고 있던 퇴직원을 작성하였다. 

illust by 최진영

인턴십을 할 때, 한 팀장님이 커피 한잔을 함께하며 대한민국 직장인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직장 생활을 지속하는 데에는 세 가지 요건이 있다고 해요. 


첫째, 그 어떤 곳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 경우. 둘째, 오랫동안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경우. 셋째, 가족과 같은 직장 동료와 함께 일하는 경우. 안타깝게도 이 모든 걸 다 충족하는 직장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아요. 이 중에 두 가지만 갖춰도 사람들은 그곳을 ‘신의 직장’이라고 불러요. 그나마 이 셋 중에 하나라도 충족되면 사람들은 힘든 부분을 버티며 회사를 다닐 수 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몰랐고 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현실적인 말이었다. UN이 발표한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155개국 중 56위에 불과하다. 이런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재원으로 한국에 온 글로벌 기업의 한 외국인 중역은 “대한민국 직장인은 전부 슈퍼맨이다”라는 다소 씁쓸한 말을 남기고 다시 미국으로 떠나기도 했다.


수십 년 전에는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노력해 목표를 달성했겠지만, 요즘처럼 각박한 시대에는 ‘되면 한다’는 말이 우리에게 더 익숙하다. 한 가지를 이루어야만 비로소 또 다른 무언가를 생각할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끝이 보이지 않으면, 마음속에는 절망, 포기와 같은 단어들이 슬며시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자연스레 연애, 결혼, 출산, 집, 경력, 희망, 취미 그리고 인간관계는 하나씩 단념해버린다.


하지만 퇴사는 달랐다. 나에게 퇴사는 포기가 아니라 ‘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믿음 같은 것이었다. ‘그만두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그만두겠습니다!”라는 말을 꺼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렇다. ‘퇴사’라는 것, 누구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실행으로 옮기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을 위한, 작은 선물 하나를 준비하고 싶었다. 매일같이 반복하던 오만 걱정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도록 말이다.


by 김 군

▶<퇴사하고 여행갑니다> 도서 자세히 보기 : http://bit.ly/2j29aML

★ 퇴사 운 카드 시연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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