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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루 May 29. 2019

사소한 감각들

러시아 이르쿠츠크_알혼섬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머물렀던 호스텔의 스태프들은 모두 젊고 활기찼다. 개 중에는 밝고 명랑한 중국인과 새침한 러시아인, 친절한 남미 청년이 우리를 맞았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추운날씨를 고려하여 전통방식과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옷이다. 특히 후드처럼 머리에 쓴 것을 보고 스태프들은 매우 놀라워했고 재밌어 했다. '그 스타일, 진짜 맘에 든다.'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다녀와서 숙박을 하지는 않지만 샤워를 해도 되냐고 물어보자 흔쾌히 답해주었다. 특별히 나에게만 그런 기회를 준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다. 내 동료들도 그 좋은 기회를 나누어 주면 안될까? 했더니 문제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분좋은 대화를 뒤로 하고 아침 일찍 알혼섬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오전 9시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계획은 이랬어. 1월 20일 오전 9시에 호스텔 바로 앞에 알혼섬으로 가는 차가 도착한대. 그것을  5시간-6시간을 타고가면 알혼섬 내 후지르 마을에 위치한 숙소에 두세시쯤 도착. 설명은 간단했지. 당시 같은 동호회 분이 알혼섬에 먼저 도착하셔서 키톡으로 몇 가지를 여쭈어 봤거든.  그분도 오전 9시에 출발해 오후 2시쯤이면 알혼 섬 숙소까지 도착예정이었는데 실제로는 3시가 훨씬 넘은 시각이었다는 거야. 조금 늦어질 수는 있겠지 싶더라. 어쨌든 아래 사진을 보면, 당시 우리 호스텔 스태프가 설명해준 내용이 상형문자처럼 그려져 있어. 이때까지는 아무 문제 없었다고.




좁디 좁은


호스텔 앞에 차가 도착했어. 정시보다 20여분 늦은 시각이었지. 미니버스는 15인승이었어. 맨 앞자리에는 호스텔 직원을 포함한 관리 인원 2명과 러시아 운전기사 아저씨가 탔지. 겨울이라 두꺼운 옷을 입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모두 배낭같은 것을 메고 있었기 때문에 자리는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좁았어. 내 바로 뒤는 3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자리였는데, 그들 발과 내 어깨가 닿을 정도였으니까 얼마나 자리가 협소했는지 상상이 가겠지? 탑승한 자세 그대로, 옴싹달싹할 수 없었지. 육중한 미니버스에 움직일 틈도 없이 꽉 찬 좌석때문에 대화조차 나눌 수 없었어. 숨이 턱 막히는 내부공기는 우리 호흡까지 단절시킬 것 같더라. 이르쿠츠크에 최근 중국인 여행객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던 적 있어. 바로 버스안에서 확인할 수 있었지. 나를 포함한 한국인 5명, 서양인 커플을 제외한 사람들이 모두 중국에서 온 젊은 여행자들이었거든. 시내 다른 숙소에서 나머지 승객들을 모두 싣고 본격적으로 차가 내달린 시간은 10시. 


중략ㅡㅡㅡ


일행을 기다리며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어. 낮은 언덕, 꽁꽁 언 바이칼 호수, 또다시 눈이 내려 하얗게 되어 버린 산등성이와 호수 바닥... 투명하게 안쪽까지 다 보이는 물 위를 걷는 느낌은 새로웠어. 정말 내가 호수를 걷고 있는 것인지, 꿈을 꾸고 있는것인지 구분이 잘 안가더라. 한 발, 한 발, 꾹꾹 눌러 걸어보았어. 이 순간을 잊지 않도록. 내가 여기에 왔다는 것을 내 스스로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어딘가에 처음 도착하게 되면 누구나 깃발을 꽂지. 내가 여기 왔노라고, 이곳을 정복했노라고. 하지만 나는 느껴. 그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내 마음속에 그 장소를 담아두는 것이라는 걸 말이야. 내가 밟았던 바닥의 느낌과 촉감을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해. 나는 누군가 왔던 곳을 확인하러 온 것이 아니야. 직접 느끼고 체험하러 온거지. 내 발로, 내 다리로, 얼어붙는 내 뺨으로, 내 얼굴로. 심지어 여기에 서서 호흡을 했을 때 콧속 안까지 파고 드는 얼음을 느끼면서 말이야. 아주 사소한 감각들이 나에게 확실한 기분을 느끼게 해줘. 내가 드디어 여기에 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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