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천왕봉
2017년 4월 24일
구례 화엄사를 빠져나와 지리산을 가로지르는 861 국도를 타고 굽이굽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달려 달궁계곡과 뱀사골 계곡을 지나 친구 같은 동갑내기 지인이 기거하는 경남 함양의 펜션에 도착한 것은 밤 9시가 훌쩍 넘어서였다.
13년 만의 반가운 재회로 그간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밤늦게까지 나누다 잠들었지만, 잠자리가 바뀐 탓에 일찍 깨어 얕은 어둠이 걷히고 초록의 봄을 맞이한 계곡 주위로 이어진 길을 찬 새벽 공기 함껏 들이키고 들어오니, 냇가에서 직접 나를 위해 잡아 왔다며 다슬기를 넣은 미역국으로 아침을 차리고 있었다.
평소 지병이 있어 도회지에서의 재즈 음악 생활도 접고 요양차 혼자 이곳으로 들어온 그에게 건강 잘 챙겨서 꼭 다시 만나자며 안녕을 고하고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백무동 계곡에 도착하니 시간은 8시쯤 됐다.
원래 계획은 지리산의 둘레길을 돌면서 봄을 맞이한 지리산 기슭에 옹기종기 핀 야생화와 봄의 기운에 기지개를 켜고 있는 재래 수종을 관찰하고 오후에는 산청의 황매산 철쭉을 볼 예정이었으나, 군청에 연락을 해 보니 산철쭉이 아직 봉우리를 트터리지 않았다고 하여 다시 전라도 땅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인이 언제 다시 기회가 있어 천왕봉에 오르겠냐며 다리에 근력이 있을 때 올라가 보기를 권유하는 바람에 변변한 준비도 없이 오르기로 했다. 지리산 기슭에서 주봉인 천왕봉까지 오르는 코스는 4박 5일의 종주 코스까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당일치기가 가능한 곳이 바로 이 백무동 계곡과 산너머의 중산리이다.
해발 1915미터의 천왕봉.
한반도 남반부에서 한라산을 제외하고 제일 높아 한반도의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제일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듯 그 장엄함을 자랑하고 있고, 경남, 전남, 전북 이렇게 삼도에 걸쳐있는 지리산 기슭을 연결한 둘레길의 길이만도 장장 274킬로에 이르니 산세의 크기를 가늠하고도 남는다.
하여 예부터 설악산은 기암절벽들이 웅장히 솟아 있어 장군의 기개를 닮아 남성적이라고 표현함에 비해, 지리산은 능선 자락이 한복 치마를 펼쳐 놓은 듯한 굴곡미와 넓게 펼쳐진 산자락이 마치 어머니의 넉넉한 품과 닮았다 하여 여성적이라 표현해 왔다.
백무동 계곡 입구에 있는 몇몇 상가와 숙박시설을 지나 탐방센터의 지리산 관리 사무실에 물으니 정상까지 어른 걸음이면 왕복 8시간 정도라 오후 4-5시쯤 돌아올 수 있다고 한다. 등산로 안내 소책자를 보니 백무동 → 하동바위 → 참샘 → 소지봉 → 장터목대피소 → 제석봉 → 천왕봉 이렇게 총 7.5킬로이다.
점심으로 시골 슈퍼에서 미리 구입한 맛동산과 쿠키, 그리고 얇은 잠바만 배낭에 챙겨 넣고 운동화 끈을 다시 매고 이 안내책자의 코스대로 오르려고 등산로 초입에 들어서려는데 자손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인 듯한 옛 무덤이 하나 눈에 띄었다.
필시, 이 무덤은 수많은 세월 동안 화려한 등산복과 멋진 등산화를 신고 저마다 오래 살려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철마다 산을 오르내리는 수많은 등산객들을 내려다보면서 피식하고 헛웃음을 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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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까짓 것들이 꾸며봤자...
제까짓 것들이 살아봤자.........
등산로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동선을 따라 평평한 돌들이 넉넉한 폭으로 놓여 있었고 자연미를 최대한 살려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니 이 높고 가파른 길을 만든 사람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진짜 산을 아끼는 사람들은 산을 오르는 등산(登山)이 아니라 산과 같이 한다는 뜻의 산행 (山行)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원래 공원 관리공단이 전국의 국립공원의 많은 등산로를 경사도와 폭, 거리, 노면상태 등을 종합하여 1-5등급으로 나눴는데, 이 등산코스가 가장 난이도가 가장 높은 5등급 코스 중에 하나라 한다. 바로 아래 등급인 4등급이 산행 동행자와 대화가 불편할 정도의 험난한 코스이고, 5등급은 등산 경험이 풍부한 자에게만 적합하다는 것.
따라서 경사가 기본적으로 35도 정도라 평소 운동을 잘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난코스일 수 있고, 중도에 포기하고 내려오는 사람도 많다고 지인이 귀띔해 줬는데 평일날 아침에 이 야심한 산속에 등산을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지 않아 초반부터 마라토너들이 힘찬 출발을 하듯 가급적 발걸음을 재촉해 조금씩 앞을 향했다.
완연한 봄내음의 진초록이었던 산기슭의 나뭇잎들이 고도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봄기운이 아직 들 올라온 탓일까 연초록으로 남아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서로 다퉈가듯 봄단장에 바쁘다. 계곡을 건너야 할 험한 바위돌이 쌓인 곳에는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 다리를 놓아 등산로가 단조롭지는 않았지만 초입에서 힘차게 내딛던 발걸음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숨이 가빠오고 다리의 근력이 딸리기 시작하는 듯해, 길가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지팡이로 삼아 등산길이 자다 일어난 듯한 절벽 같은 경사가 가파른 길을 또 올라갔다. 산세가 험한 탓에 가끔씩 보일듯한 고갯마루는 통 보이지 않고 않고 유려히 이어진 계곡 산등성 너머 금빛 아침 햇살이 아프도록 눈을 찌른며 넘어오고 있었다.
다행히 나를 지나가던 중년의 한 여인이 아래에서 나의 행색을 보면서 안타까워 보였다며 자신의 스틱을 꺼내면서 나중에 하산 후에 "지리산 식당"에 맡겨 달라며 건네준다. 미안한 마음에 쓸려고 가지고 온 것을 빌려줘도 되냐고 물으니 자신은 탁구감독으로 매일 3시간 운동을 하고 있고 울산서 지리산 등산을 자주 와서 스틱이 필요 없다는 말을 남기고 나비 날아가듯 훌쩍 가 버린다.
빌려준 스틱에 의지해 가며 하동바위를 지나 오르고 또 오르니 계곡물이 끝나는 참샘이란 샘터가 나온다. 배낭을 가볍게 하려고 생수도 사지 않았지만 슈퍼의 할아버지가 파는 생수보다 계곡물이 더 맛있는데 왜 무겁게 사가느냐고 핀잔을 받기는 했지만,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더 이상 계곡물을 마실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일단 이 참샘에서 최대한 물을 많이 먹어두기로 하고 바가지로 돌벽을 통해 흘러나오는 물을 목에 담았다.
이 심산의 옹달샘에서 나는 샘물,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 사람의 눈물과 침, 그리고 포도밭에서 나는 와인이나 양조장에서 만드는 소주..... 이 모든 것들이 색깔과 발하는 냄새는 다 다른지만 한걸음 더 들어가다 보면 화학기호의 H2O로 구성되어져 있다. 속된 말로 그놈이 그놈이라 다소 틀리다고 해서 야단법석을 떨 필요가 없다.
문득 전날 화엄사를 돌면서 떠올렸던 불이(不二) 란 불도자의 주요 사상으로 둘이 아니다, 즉 하나라는 뜻을 다시 상기해 본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는데, 내 것과 너의 것으로 나눠질 때 개인 간의 싸움과 질투가 생기고, 나라 간에 분쟁과 생겨 세상은 갈등과 불운으로 가득 차게 된다는 것이다.
내 생각이 맞고 네 생각이 틀린 것, 나는 잘났지만 너는 못났다는 것, 이런 구별이 차별을 불러오고 우월감과 열등감을 조장시켜 우리 삶의 번민이 생기지만, 너와 나는 같은 사람이라는 것. 원래 우리는 하나라는 인식을 가질 때 평화가 온다는 것이다.
결국 5월 전쟁설등의 괴담이 돌아다닐 정도로 남과 북이 군사적 대치로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데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 샘물은 계곡을 통해 강으로 가 결국 다른 물들과 같이 바다에서 만나게 된다. 결국 모든 물이 하나가 되는 공존하는 이치를 이 참샘터가 일깨워주는 셈이다.
소지봉으로 가는 급경사로 이뤄진 돌계단을 허덕이며 오르니, 세월을 견디다 못해 비바람에 제 수명을 다한 나무가 쓰러져 있다. 이 나무도 벌목지에서 자랐다면 누군가에 의해 베여 인간의 의자가 되어 주고, 산산조각 잘려 합판이 되어 주고, 그도 아니면 쪼개져서 아궁이의 땔감이 되어 남김없이 모든 것을 인간들에게 내어 주었을 것이다.
지구 상의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들은 남기는 것 없이 자연으로 다시 돌아간다지만 우리 인간들은 그 육신이 땅에 묻혀도 남기고 가는 물건들이 많고 평생을 살면서 자연에 보태주는 것 없이 산과 바다, 그리고 땅속까지 파 헤져가며 자연의 곳곳을 해치는 것도 모자라 만물의 영장이란 미명(美名) 아래 스스로 자연 위에 군림하는 지구 상의 점령군 인지도 모르겠다.
이 땅에 무쇠가 처음 나와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한 용감한 나무가 말하길 우리가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우리를 벨 수는 없다고 자위했던 나무들의 비장함이 서려있는 글귀가 새삼 되새겨진다.
앞만 보고 올라온 길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해는 이미 중천이고 시간은 벌써 정오를 넘겼다. 결국 4시간 정도 땀 흘리며 힘 빠지는 다리를 한 발 한 발 디디며 오르니 돌이 놓인 길은 사라지고 흙길이 나오면서 낮은 능선을 이루는 이 짧은 등산로의 양쪽으로 5년에 한 번씩 꽃을 피운다는 산죽인 조릿대 밭이 이미 등산객의 허리까지 자라 올라 산을 오르는 이들을 마중하고 있다.
계곡 능선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에 장단을 맞춰 낭창거리는 무녀의 춤사위처럼 살랑거리는 파릇파릇한 잎들의 흔들림은 속세의 번뇌한 소음과는 사뭇 다른 옥타브의 속삭임을 청명히 느낄 수 있다. 앞으로 얼마만큼 더 가야 장터목 대피소가 나올지는 모르나 오래간만에 평지의 오솔길을 걸으니 조릿대들이 파아란 잎새를 흔들며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이윽고 산등성이를 내리듯 다시 돌면서 올라가니 장터목의 기지국처럼 보이는 안테나가 보이기 시작하자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네 군데의 등산로가 만나는 길이라 인파가 제법 있다. 국립공원에서 운영하는 지리산의 8개의 대피소 중에서 이곳 장터목 대피소는 주봉인 천왕봉에서 제일 가까이 있어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제일 좋은 산장이라 한다.
그 옛날에는 지리산 북쪽의 백무동의 함양 사람과 남쪽 중산리의 산청 사람들이 봄과 가을에 물물교환을 위해 장이 들어섰던 곳이라고 "장터목"이라 하였다는데, 요즘처럼 산을 오르는 게 레저가 아니라, 이 험준한 산길을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내려야 했던 산사람들에게 이 산꼭대기의 장터는 삶의 터전이었고, 산을 오르는 것이 삶 그 자체였었다.
이쯤에서 만족하고 전주에 발목을 굽질려 조금 삐였지만 변변한 산행 준비도 없이 그래도 나름 정상에서 80% 정도까지 왔으니 이 정도에 만족하고 인증샷이나 찍고 하산할까 하는 유혹이 앞선다. 그리고 밖에 나와 이정표를 다시 보니, 천왕봉 1.7km라 적혀 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 또 가보자.. 하며 제석봉을 향해 몸을 틀었다.
이윽고 30여 분 만에 제석봉 정상에 남쪽을 향해 강하게 불어오는 산바람을 맞았다. 첩첩히 포개진 이 많은 높고 산들과 봉우리들이지만 만년의 세월을 지나왔어도 서로 높이를 다투질 않고 묵묵히 침묵으로 산과 더불어 사는 이들을 돌봐왔 이 지리산.
하지만, 1950년대 벌목꾼들이 정상 근처에 불을 지르는 바람에 그 오랜 세월을 울창했을 이곳도 고사목들만 남겨버려 군데군데 관리 사무소에서 애써 심은 듯한 어린 구상나무 묘목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자연사든 인간에 의해 파괴되었든 한 세대가 가고 다른 한 세대가 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지만 제석봉을 넘는 이 가파른 언덕길에 한 고사목이 내 눈에 들어와 박힌다.
세월의 풍파에 제 가지 꺾이고 인간의 손에 의해 불태워져 앙상히 뼈대만 간신히 남긴 이 흉물 같아 보이는 고사목. 하지만 고산의 계곡을 타고 올라오는 강풍과 엄동의 폭설에 행여 쓰러질까 노심초사 삼발에 의지해 자라는 이 묘목을 걱정하는 모심(母心)으로 내려다보는 것 같아, 묵묵히 서 있는 고사목에서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묻어나고 비장함마저 배어 있다.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제석봉에서 천왕봉까지 올라가는 도중에 하늘을 통과한다는 뜻의 통천문(通天門)을 지나가야 한다. 신령한 한국 남단 최고봉에 걸맞게 그냥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할 만큼 좁고 가파른 돌계단과 철계단을 지나니 아스라이 천왕봉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예로부터 부정한 자는 출입을 하지 못한다는 이 전설이 올라가는 양쪽 바위의 표면에 촘촘히 서려있는 잠언이자 금언인 듯 해 세상에서 죄 많이 지어온 나로서는 선 듯 이제 천왕봉이 보인다고 반가히 달려가기에는 마음이 무거워지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엄청난 급경사에 해발의 높은 고도라 땅이 얼음에서 해동을 하고 있어 이번 산행에서 제일 힘들고 위험한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제 통천문을 지나 천왕봉 턱밑까지 다가가자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바윗산 위에 검은 새무리가 계곡 아래로 펼쳐진 산세를 응시하며 맞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는 바위를 돌아 올라가니 마침내 사진으로만 보던 천왕봉의 정상비를 마주하자마자 감격에 겨워 두 팔을 활짝 펴서 확 껴 앉았다.
"한국인(韓國人)의 기상(氣像) 여기서 발원(發源)되다"
이 비문의 글을 몇 번 읽어 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 봐도 감회가 실로 새롭다.
그래 나는 한국인이었다. 한동안 삶이 바빠 잊고만 있었던 나의 정체. 그래 나는 한국 부모에게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랐던 사람이지.
이 정상에 오르는 사람들마다 대부분은 정상을 정복해 승리감을 느끼고 싶고, 산 아래의 만 천하를 내려다 보고 짜릿한 성취감이란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혹자는 어차피 내려올 산을 왜 올라가냐고 물으면 논리의 비약일지 모르나 어차피 죽을 것 왜 사냐고 묻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산이 있어 산을 오르고, 목숨이 있어 살아가고,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을 사랑하고, 꽃이 있어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인데, 너무나도 나와 우리는 존재의 그 가치에 그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까탈스럽게 왜 존재하느냐에 대한 물음에 쫓게 살아오다 그 존재 가치에 의미를 두지 못하고 귀한 것을 놓치고 마는 우를 범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해 본다.
바로 이것이다.
내가 바로 현재 이 시간 한반도의 최정상에 서있는 것은 성취감도 정복감도 아닌 바로 존재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겸허히 알아가는 것. 알아야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니 귀히 여길 수 있으며, 귀하게 여길 수 있으니 지켜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들이 어린 자식들을 평생을 바쳐 지키듯, 우리의 선열들이 이 금수강산을 목숨 걸고 지키듯, 그 고사목이 어린 묘목을 묵묵히 지키듯..
그러기에 생명이 다음 세대를 이어갈 수 있고 자연이 대자연을 변함없이 이어가는 그 법칙이 여기에 있지 않는가.
10여분을 기다려 후발로 올라오는 등산객에게 사진을 청하여 인증샷을 찍고 나서 다시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수구초심이라 눈을 남쪽을 향하니 어디쯤인지는 모르나 내 고향 마을 구재봉이 겹겹이 쌓여 내려가는 많은 봉우리 사이에 있을게다. 그 훨씬 너머를 말발굽 달리듯 내려가면 쪽빛 물결 넘실거리는 남해가 넉넉한 바다가 보일 것인데 나안으로는 볼 수가 없으니 상상만 한다.
천왕봉에서의 해돋이는 하늘문이 열리는 듯한 웅장함을 보기 위해 산 중턱에서 밤을 지내고 이른 새벽녘에 오를 정도로 지리 십경 중의 하나지만, 구름에 가리는 날이 많아 삼대(三代)가 덕을 쌓아만 볼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 한다.
이제 올라왔으니 다시 내려가야 한다. 정확히 올라 온 거리만큼 내려가야 원위치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내려가는 것은 더 힘들 것 같다. 근력은 소진되었고 배는 고프고 시간이 없으니 마음은 급하다. 그래서 그런지 입산 초입에 오후 4시 이후로 입산을 금지한다는 안내를 본 것 같다.
힘 빠진 다리를 한걸음 한걸음 내디뎌 내려오는데 정상에서의 부는 바람 때문인지 해발이 높은 곳이라서 그런지 4월 말의 봄이라도 한기를 느껴 다시 배낭에서 잠바를 꺼내 입고서 하산하기 시작했다.
원점인 백운동에 다시 돌아온 건 정확히 12시간 뒤인 저녁 8시.
다시 탐방센터의 인간이 만들어내는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니 반가움이 앞선다. 평상시 도회지에서 살면 당연히 은색의 달빛이나 영롱히 시린 별빛이 더 아름다워 보일 텐데 이제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불빛과 사람을 마주치는 눈빛이 이 어둠에 쌓인 계곡에서는 그리워진다.
탐방센터의 닫힌 입구 문을 열고 조금 내려오니 휴가철 야영객도 없고, 평일 저녁 늦은 시간이라 몇 안 되는 등산객들도 하산한 터라 백운동 계곡 아래에 위치한 가계들도 다 문을 닫았는데 한 작은 가계에서만 불빛이 흘러나왔다. 바로 "지리산 식당"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주인 할머니는 나를 알아본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낮에 그 여인이 울산에 도착해서 두 번이나 전화로 내가 도착했는지 물었다며 할머니도 혹시 조난사고나 당하지 않았나 걱정했다고 한다. 아무튼 대강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산채비빔밥을 시키고 신발을 벗고 앉으려는데 양쪽 엄지발가락에 왕방울만 한 물찝이 손에 잡힌다. 준비 없이 올라간 탓이 이 산이 내게 내린 훈장인 셈이다.
너무 피곤하니 내려오면서 느꼈던 허기도 없어졌는데 산에서 캔 나물들을 비벼서 후딱 비우니 이제야 하루 일과를 마쳤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할머니에게 스틱을 전하고 다음에 그 울산 여인이 다시 찾으러 오거들랑 베푼 호의에 감사했노라 전해 달라고 말하고 주차장을 향했다.
몇 가게 내려오니 불 꺼진 가계 마당에서 산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을 고무호스가 열심히 큰 다야에 넘치게 담고 있다. 이 옹달샘물은 시냇물을 이루고 계곡물을 만나 이윽고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흐르고 다시 비가 되어 이 산 숲 속으로 돌아올 것이다.
저 아스라이 산봉우리 위에 떠오르던 초승달도 하루가 지나면 돌아오고 알퐁스 도데에 나오는 소년의 마음을 훔쳐간 저 별도 한 해가 가면 다시 밤하늘에 제자리를 다시 찾아와 그 밤하늘 위에 떠오를 것이다. 모두 다 잠시 떠났다고 서운해했지만 언젠가 필히 다시 제자리에 돌아온다.
선대 조상들이 대를 이어 지켜왔던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아등바등 살아 보려고 이 산을 등지고 일찍이 도회지로 나가 버렸다. 그리고 27년의 세월을 타국을 전전하며 나그네 같은 삶을 살았지만, 이 지리산이 배 앓아 낳아 준 나도 저 서쪽 저녁 하늘에 떠있는 초승달처럼 어머니의 품과 같은 이 지리산에 돌아왔다.
이제 다음 주면 또다시 태평양을 건너야 하는 타지인(他地人)이 되어 버렸지만, 인간의 수명을 주관한다고 전해지는 북두칠성이 언젠가 그 자리를 윤회하며 돌아오듯 나도 다시 이곳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다. 언젠가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