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ric Jan 14. 2019

낭객(浪客)의 신년 만필(新年漫筆)

잊지말아야 할 역사

지금으로부터 95년전인 1925년 1월 2일 당시의 동아일보에 실린  단재 신채호 선생의 "낭객(浪客)의 신년 만필(新年漫筆)"란 칼럼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

우리나라에 부처가 들어오면

조선의 부처가 되지 못하고 부처의 조선이 된다.

우리나라에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못하고 공자의 조선이 된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

조선의 예수가 아니고 예수의 조선이 되니,

이것이 어쩐 일이냐!

이것도 정신이라면 정신인데, 바로 노예 정신이다.

.......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바로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혀 바로 알게 해야 할 것이다. 

.........


바로 당시 일제치하의 식민국으로 전락한 우리 민족의 역사관에 대한 헤이함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단재 선생이 중국 북경에서 기고한 글이다.


아들 예준이가 한 달에 한 번 교정치과를 가는 오늘.

조금 일찍 오전 진료를 마치고 차로 15분 정도의 거리인 뉴저지 에디슨에 위치한 고 현봉학 선생이 평생을 사셨다던 집을 또 둘려봤다. 원래 이 집을 알 길이 없었으나 현박사에 대해 개인적으로 궁금해 그의 문헌과 옛 인터넷 자료들을 찾던 중 시카고에 사는 모 한인 역사학자를 통해 집 주소를 얻게 되었다.

평생을 의사로 지내셔 제법 좋은 지역의 어리어리한  집에서 살았을 법도 한데 이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미국의 가난한 소시민이나 살 법한 단층 랜치스타일의 작고 오래된 집을 통해 그가 얼마나 검소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2007년에 8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행방이 묘연했던 우리의 민족 시인 윤동주의 묘를 찾기 위해 자비를 들여 태평양을 건너 중국을 몇 번이나 방문한 끝에 그의 묘를 찾았고, 같은 모교 출신인 윤동주 시인을 기리기 위해 "윤동주 문학상"까지 제정했다고 한다.


또한, 몇년 전 영화 "국제시장"에서 함흥 철수 때 미군과 한국군만도 철수시키기 버거웠던 알몬드 사령관을 끈질기게 설득해 10만명 피난민을 구해 한국의 쉰들러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한 그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서재필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을 비롯해 안창호 선생, 안중근 의사, 장기려 박사등을 기리는 사업들은 물론 이곳 재미교포들을 돕는 많은 사업을 하였다.


10만명의 피난민을 자유세계로 오게 해 살렸지만, 동시에 크리스찬이였던 그였기에 그로 인해 100만명의 이산 가족이 생겼다고 괴로워하는 생전 인터뷰 모습에서 그의 동족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 지를 알 수 있다.


다시 글 서두에 언급한 단재의 신년 만필(新年漫筆) 중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  "조선의 예수"가 아니라 "예수의 조선"이란 말을 곱씹어 본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이끌었던 것처럼, 현봉학 박사도 피난민들을 그런 마음으로 구했다는 고백을 들으며 "조선의 예수"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직도 자식의 목사직 세습 문제나 목사의 자질 문제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많은 기독교인들이 개독교라고 비난을 듣는 모습을 보면서 크리스찬으로서 예수의 이름을 빌어 "예수의 조선"을 만들고 있지 않는지......


타인과의 삶에서 자신을 그 중심에 두며 이기적으로 사는 삶과 타인의 삶 속에 자신을 보태는 이타적인 삶은 그 만큼 힘들지만 값있는 삶이라 생각하니 다시 한번 이 땅에 등비비며 살며 그런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나로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잊어온 금순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