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자의 미래는 없다
지난 연말부터 차일피일 미뤄왔던 한 권의 책을 겨우 다 읽고 오래간만에 미 북동부를 몰아친 폭설로 잔설이 아직 녹지도 않은 지난주 일요일, 뉴저지 북부에 위치한 한 수도원을 가기 위해 애들을 데리고 차로 거의 2시간을 달렸다.
St. Paul 수도원.
그곳에는 재작년 여기서도 상영된 영화 "국제시장"에서 흥남 철수 때 덕수네 가족이 타고 온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 (Meredith Victory)의 선장이었던 러너드 라루 (Leonard Larue, 세례명-Maridus)가 동란이 끝나고, 4년 후에 이 수도원에 들어와 평생을 수도사로 봉헌하며 살다, 2001년 87세의 일기로 생을 마치고 수도원 뒷 뜰 묘지에 고이 잠들어 있다.
흥남 철수(1950년 12월 12~24일).
영하 30도의 혹한에서 26만이 넘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에다 원산마저 중공군에 점령돼 육로로 후퇴를 못하자, 적에게 포위된 미 10 군단장 알몬드 장군은 흥남을 통한 후퇴를 명한다. 그런데, 미군이 배로 철수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함경도 각지에서 월남하려는 10만여 명의 피난민들이 흥남부두로 몰려오자, 미군 당국은 후송에 난색을 표했다. 왜냐하면, 이 철수 계획에 피난민은 애초부터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함경도 출신인 의사 현봉학 민사고문과 우리 국군 고위부의 끈질긴 설득에다 정찰기를 타고 흥남부두 현장을 돌아 보고야 알몬드 장군은 마음을 바꾸었다. “저들을 놔두고 그냥 갈 수는 없다.” 이렇게 하여, 진주만 기습 이후 미군 역사상 최악의 패전으로 기록된 흥남 철수 작전은 시작되었다.
12월 20일, 맥아더 사령부 지시로 7,600톤급 미국 화물선이 흥남부두에 접근했을 때, 선착장과 백사장은 피난민들로 넘쳐나고, 그 옆에 놀란 병아리처럼 몰려든 아이들이 있는 광경을 라루 선장은 쌍안경으로 둘러보면서 당장 미군 참모부에 전문을 보내 몇 명을 태워야 할지를 묻자, “얼마나 태울 지는 알아서 하라”라고 했다.
이에 그는 두말 않고 배 안에 실려 있던 모든 병참 무기를 빼내고 피난민들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피난민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구출하라"라고, 라루 선장이 지시했다고 지금도 생존해 있는 로버트 러니 일등 항해사는 증언했다. 그러나, 이렇게 부하들에게 명령을 한 그였지만 적재가 끝나 출항 준비가 완료되었는데도 이를 하역하고, 대신 피난민을 태우는 건 결코 쉬운 결단이 아니었다.
당시의 사료를 참고로 하면, 먼저 중공군의 포성이 점점 가까워와 빨리 흥남부두를 출항해 해안가에서 멀어지지 않으면 배마저 포격으로 격침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시간과의 긴박한 싸움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부산항에 하적을 완료하지 못한 채 급히 명령을 받고 와 고휘발성 항공유 300톤이 배 바닥에 적재되어 있는 상태라 어뢰에 부딪히면 자체 폭발력에 의해 선체 자체가 통째로 날아갈 수 있었다. 또한, 64명 정원의 화물선에 정원의 230배나 되는 무려 14,000명나 되는 어머어마한 무게의 피난민에다 그들의 짐까지 합치면 배는 과적으로 인해 수면 아래로 더 내려앉게 되고 그러면 배 바닥이 어뢰에 노출될 면적이 더 넓어진다.
그는 이런 최악의 악조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46명의 동료 승조원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목숨조차도 보장되지 않는 모험이었지만, 배를 타지 못하면 죽게 될 거라며 절규하며 추위에 떨고 있는 피난민들을 차마 내버려 두고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다며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피난민을 구했다.
이 흥남철수를 배경으로 한 이 "Miracle of Voyage (기적의 항해)"이란 책에서 , "갑판에 올라가 돌아다니면서 어머니들은 아기를 꼭 품에 끌어안고, 아버지들은 코트 속에 애들을 묻어 필사적으로 따뜻하게 해 얼어 죽지 않으려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다"라고 그 로버트 승조원은 당시를 생생히 회상했다.
이윽고, 크리스마스이브 거제도 지심도 앞바다에 도착했을 때, 사흘간의 항해에서 배 제일 아래층 화물칸에서 먹을 것도 덥을 것도 화장실도 없고, 심지어 햇볕조차 들지 않는 배 밑바닥에 실려온 사람들은 많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명의 목숨도 잃지 않았다며 피난민들의 삶에 대한 강인함에 당시의 승조원들은 놀라워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 난리 속에 5명의 새 생명까지 배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고 한다.
또 라루 선장은 “가끔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 항해를 생각한다. 그 위험한 항해에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는 것은 거칠고 험난한 바다를 항해하는 우리 배가 하나님의 손에 의해 조정된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뒷자리에 앉은 딸에게, 기네스북에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구조한 배"로 등재돼, "기적의 배"라는 이름까지 얻었다고 설명해 주자, 갑자기, “ 아빠 그럼, 그 배 지금 어디 었어?”라고 물었을 때, 중국의 철강회사에 93년 고철로 헐값에 팔려 버렸다는 말을 차마 부끄러워 내뱉을 수가 없었다.
당시 동일한 사양으로 건조된 또 한 척의 배는 퇴역 후 현재도 플로리다 연안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우리는 흥남 철수에 사용된 그 배를 악착같이 찾아 역사적 교훈으로 삼기 위해 크지 않는 금액으로 구입해 후손들에게 보여 주기는커녕, 그 배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2005년, 거제도 포로수용소 공원 한 켠에 흥남철수를 기리기 위한 기념비 제막식날, CNN과 외국 통신사들은 다 몰려왔는데, 국내 언론은 토막뉴스로 처리하였다고 공원 담당자의 소회에서 씁쓸함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라루 선장이 2001년에 87세의 일기로 타계했다는 소식을 뉴욕타임스가 그의 업적과 함께 상세히 전했지만, 우리나라의 주요 언론사는 그의 숭고한 넋을 위로하는 단 한 줄의 기사도 부끄럽지만 내 보내지 못했다.
6.25 동란이 발발한 지 올해로 반세기를 훌쩍 넘은 67년째. 트로트 "굳세어라 금순아"의 금순이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영화 "국제시장"에서 처럼 제2의 막순이가 더 이상 나와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전후 세대라는 핑계로, 그리고 이만큼 경제성장을 이뤘으면 됬지라는 스스로의 자만에 빠져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금순이를 우리는 까마득히 잊고만 살아왔다.
우리가 자식들 데리고 해외여행 가기 전에, 아산의 현충사, 용산의 전쟁기념관, 거제의 포로수용소, 그리고 광주 5-18 국립묘역, 부산의 유엔묘지와 같은 역사 교육의 현장에 데리고나 가 봤는지, 아님, 적어도 그렇게 해 보려고 하는 최소한의 애국심이 나에게 있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만일 아니면, 미안하지만 우리는 역사의 죄인(罪人)이다.
관객 천만을 돌파했다던 "국제시장"은 분명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살아온 우리 아버지들의 삶의 애환을 서사적으로 옮긴 훌륭한 영화지만, "그냥 감동적이었다"는 감탄의 말로, "눈물을 흘렸다"는 자기만족으로 일말의 애국을 했다고 끝내선 절대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임란 후 300년도 채 안돼 또다시 일제에 국권을 찬탈당한 우리의 근대사를 두고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앞날이 없다."라고 말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짧지만 한이 서린 이 격언이, 제발 나에게만 마음에 다가오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를 안내해 준 한 수도사와 점심 식사 후, 그는 나에게 그 엄청난 14,000명을 인명을 라루 선장의 결단으로 구했지만, 40여 년간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 동료 수사들에게 내색 조차 하지 않아, 그런 기적과도 같은 선행을 행한 줄도 모를 정도로 겸손히 생을 마쳤다고 전했다.
반 평도 채 안 되는 그저 평범한 그의 묘지에 쌓인 눈을 쓸고 한 다발 꽃송이를 받치며 무거운 발길을 돌리면서 나는 그에게 지키지도 못할 큰 약속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저, "나와 내 자식들 만큼은 결코 잊지 않겠노라고, 금순이도, 막순이도, 그리고 피난민을 구해 준 당신과, 당신의 고결한 사랑도..............."
1.NY Times의 라루 선장 타계 기사
http://www.nytimes.com/2001/10/20/us/leonard-larue-rescuer-in-the-korean-war-dies-at-87.html
2. 메러디스 빅토리호 전용 사이트
http://www.shipofmiracl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