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맨해튼 나들이
학교를 안 가는 주말에 볼일이 있으면 집 주변에 3층 이상의 건물도 없고 변화가 늘 없는 시골 같은 따분한 집에만 살아온 애들을 가끔씩 데리고 맨해튼을 나간다. 사람도 차도 많고 화려한 네온사인과 높은 건물들이 자기 눈을 호강시켜서 인지 이 도시를 기억하는 아들은 차가 허드슨강 밑의 링컨터널로 내려가는 순간 멀리 마천루가 보이는 맨해튼을 손으로 가리키며 방긋이 웃으며 차창 넘어를 바라보는 아들의 얼굴이 백밀러에 잡힌다.
모처럼 주말에 아들을 푹 재울 수 있는데 굳이 아침잠을 깨우며 데리고 가야 하냐고 핀잔을 늘어놓는 아내를 뒤로 하고 얼른 나섰기에 다행히도 딸이 오늘 치를 시험장까지 9시 전에 입실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는 시험이 끝날 때까지 아들이랑 단둘이서 연말 쇼핑 대목을 맞이한 시험장 근처인 5번가를 발품을 팔며 돌아다녔다.
12월 첫 주말이고 추수감사절이 끝나자마자 시작된 연말 시즌이라 고는 하나 이 도시의 거리에는 늘 사람들로 붐빈다. 워낙 세상이 흉흉하고 얼마 전에는 맨해튼 남단에서 테러도 있어 불안한 요즘, 이것 저것 눈길을 떼지 않은 채 방긋방긋 오래간만에 웃음 짓는 아들의 얼굴이 더 보기 좋아보니 절대로 사람 많은 곳에는 있지 말고 조용한 데를 데리고 가거나 회사 사무실에 가 있으라는 아내의 말은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기온이 영상이라고는 하나 빌딩 숲을 뒤지며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차가워 발걸음을 재촉해서 회사 사무실로 행했다. 아들이 워낙 산호초나 해초 사이를 헤집으며 수영하는 열대어의 모습에 푹 눈이 빠질 정도로 주의 깊게 관찰하기를 좋아해서 가끔 회사로 데리고 온다. 다행히도 회사 사장도 열대어 마니아로 열대어를 기르는 게 취미라 장식용으로 한 개씩 두는 어항 정도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층층마다 대형 수족관을 두고 있어 사원들끼리는 농담 삼아 사원들보다 열대어가 더 많다고 농담을 할 정도다.
추운 실외에는 인조적 장식으로 고객을 유혹하며 12월 한 달 대목에 돈 벌려고 혈안이라 정나미 떨어질 정도로 상업적인데 반해, 사무실 안은 상온의 열대어와 산호초, 물풀이 유리로 갇힌 공간에서 만들어내는 소자연이 왠지 한여름처럼 정반대로 움직이지만 한 장소에 공존한다.
예준이도 머릿속에서는 북적대고 요란한 것을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물속에서 유유히 느림의 미학을 즐기는 열대어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점에서 사람이 사는 장소도 사람이 가진 마음도 어떻게 보면 정반의 연결고리 같은 게 상존하는 것 같다.
문득, 딸내미 시험장에 데려다주고 나오는데 중국 티베트 라마교 황톳빛 복장을 한 스님풍의 중국 사람이 염주를 아들에게 건네주면서 서명해 달라며 종이를 내밀자 무슨 내용인지 읽고 있는데도 뭘 그런 것을 따지냐는 듯 사인을 하면서 20불씩 기부를 하라고 종용한다. 정확히 어디 소속의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금전까지 요구를 하기에 이를 거부하고 갈렸는데 불쑥 화를 내며 아들이 쥐고 있던 염주를 낚아채고서는 신호등을 건너가 버렸다.
이국적 옷차림, 동양의 신비, 그리고 티베트의 독립을 빙자해 영문 모르는 관광객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차려입은 옷만 봐서는 석가의 자비가 넘처나 보이 지면 이를 빙자한 세속의 사람을 이용하는 엉터리 스님에 불과한 셈이다.
한국에서 영락교회가 부자세습이라는 이유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일을 크게 하려면 교회는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는 어느 겸손한 은퇴목사의 은퇴사가 귀에 남는데 그리스도의 사랑을 빙자한 인간의 욕을 채우려고 한다면 이는 평생을 봉사를 하고도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 참으로 힘 빠지는 일이다.
아들과의 맨해튼에서의 짧은 시간을 거닐며 느낀 차들의 빠름과 열대어의 느림, 빌딩풍의 차가움과 수족관의 따스함, 크리스마스 장식들의 금속색과 광합 섬을 하는 수족관 안의 풀색, 강열히 발하는 쇼윈도의 강렬한 전기 빛과 은은히 비추는 물속의 수족관의 태양빛......
종교 지도자가 이웃을 사랑하자 하면서,
내 가족의 안위와 자신의 영광과 세상 욕을 더 챙기고........
위정자가 밝은 미래를 꿈꾸자면서,
정적의 과거를 몰염치하게 까발리고......
동창들이 연말 모임에 우정을 노래하면서도,
진정 아파하는 친구들에게 일말의 눈길도 주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위선의 인간사.
어떻게 보면 선과 악이 교묘히 공존하면서도 정반(正反)이 정말 다를 듯하면서도 백지장 한 장 차이고 보니 어찌 보면 못난 놈도 잘난 놈도 어떻게 보면 간발의 차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못났다고 서러워할 것도 잘났다고 뽐낼 것도 아닌 듯싶다.
왠지 뉴욕 지하철 환풍기에서 나오는 열풍도 차운 빌딩풍에 섞이면 그저 그런 미풍으로 흐지부지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마는 것인데 올 12월은, 아니 올 2018년은 각별한 일 없이 그렇게 또 한 해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음에 감사의 마음을 품어본다.
특별함에 늘 힘들어했던 이들에게는 각별함이 없는 올해가 어찌 보면 생의 최고의 해였는지 모른다. 새해 연초에 세워뒀던 화려한 계획도 다부진 다짐도 이제 초라한 미사여구나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3 주남은 이 해를 다시 주섬주섬 챙기고 나와 내 가족을 챙겨야겠다. 곧 시험 마치고 나올 딸에게 "시험 잘 봤어?"라고 눈으로 말하기보다 "시험 보느라 수고했어"라고 가슴으로 말해 주고 싶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
Fifth Avenue Presbyterian Church의 성가대 캐럴송
유명 브랜드 장식
5번가에서 그림집 앞에서
록펠러센터 천사상들 앞에 선 아들
트럼프 타워 정면
5번가 백화점 벽면에 붙은 크리스마스 장식
1983년에 완공됐다는 68층짜리 트럼프 타워. 안에는 5층까지 개방되어 트럼프 기념품도 판매
불어로 Dieu et mon driot, 영어로 번역하면 God and my right 영국 왕실 문양이 새겨진 건물
이 추운 겨울에 이런 시원한 사진이
꽃집의 크리스마스 장식
쇼윈도의 장식. 이 장식을 위해 반년 이상 준비하는 업체도 있다 함
센추럴 역 앞. 직진하면 유엔본부.
이스튼 강변의 유엔본부
센추럴 역
아직도 가을이 남은 곳이
군소 백화점의 요란한 크리스마스 장식
기도하러 성당을 향해 가는 인파를 지키는 경찰차
샤핑 시즌에 거리를 채우는 사람의 발길
수십 년간 연말 되면 항상 같은 장식을 하는 이곳
역시 불가리의 비싼 장식
성조기만큼이나 많은 각국 국기
성탄 뮤지컬 공연으로 분비는 Radio City
맨해튼에서 제일 큰 시립 도서관
회사 오피스 27층에서 바라다본 맨해튼 남단. 멀리 뾰족한 솟아 있는 것은 크라이슬러 빌딩
물고기 수영하는 것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예준이랑 회사 수족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