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편지
여기서는 매년 6월 셋째 일요일은 아버지의 날.
간단히 아침을 먹으려고 앉으니, 딸이 자기 전에 적어 둔 아버지의 날 감사 쪽지가 식탁 위에 놓여있다. 올해는 어떤 내용을 적었을까 하고 접힌 쪽지를 펴서 읽으면서 마음이 좀 불편했다.
딸이 아직 고등학생이라 직장인 자식을 둔 부모처럼 근사한 레스토랑의 저녁식사를 초대받는 것은 감히 바랄 수 없다. 하지만 근처 슈퍼에 가면 반듯한 카드를 몇 달러 정도로 살 수 있다.
그리고, 자식을 둔 아버지라면 일 년에 한 번 밖에 없는 이 날이 철없는 소년처럼 설레지는 날이 바로 아버지의 날인데, 축하품 치고는 너무 허접한 노트에 급조한 티가 나다 보니,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내가 혼잣말로 투덜거리자 옆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아내가 지난 주는 기말고사, 졸업식, 방학식 등으로 딸도 바쁜 한 주를 보내는 바람에 슈퍼에 카드 사러 데리다 줄 시간이 없어서 그랬으니 너그러이 이해하란다.
하지만, 매년 보관해 두는 딸의 Father's day 편지지만 언제부터인가 카드에 직접 그려놓는 그림이 없어졌다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와 아버지 날 찍어두는 남동생과의 기록사진도 자기보다 훌쩍 커버린 동생이 징그러워 사진을 찍기 싫다며 요리조리 뻐딩기기 일쑤다.
5년 전 초등학생 때 적은 편지를 다시 끄집어 내 보니, 색연필도 쓰고 소녀답게 디테일하게 정성을 다한 여백을 다 메운 흔적이 역력하다. 순간, 이러다가 딸이 대학 졸업하고, 직장 잡고, 그리고 훌쩍 시집가서 제 식구가 생기면 아내와 나는 나이 들어 이런 카드도 못 받는 찬밥 신세가 되는 것 아닌가?
자식도 품 안에 자식이라는 데, 진짜 인생 선배들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럼 내가 딸에게 기대했던 것들을 지금이라도 조금씩 내려놓으면 그 섭섭한 마음이 덜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의 꿈은 커서 Hillary Clinton이나 Caroline Kennedy와 같은 여성 외교관이 되는 것이다. 세상 물정을 알기 시작할 7살쯤 내가 왜 외교관이 되고 싶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여러 나라를 구경할 수 있어서라고 유치하지만 솔직한 답을 해줬다.
그러자 나는 외교관이 되려면 일단 외국어를 잘 해야 하는데, 5개 국어를 대학 가기 전까지 능통하게 말할 수 있을 자신이 있냐고 어린 딸을 붙잡고 심각히 물었다. 그런데 어린 딸은 그게 얼마나 험한 가시밭길 인지도 모르고 철없이 끄덕이며 나와 손가락을 걸고 서로 약속을 해 버렸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딸과 내가 한 그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며 딸과 나는 집에서는 절대로 영어나 한국어는 사용하지 않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딸은 틈날 때마다 Native Speaker가 들어면 비웃을지 모르는 실력이라도 나에게 자신의 언어 실력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매년 아버지의 날 편지도 5개 국어로 적고 오고 있다.
"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는 "사람들이 배를 만들어 주길 당신이 원한다면, 목재를 갖다 주고 일을 지시하지 마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 너머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누구에게나 다 귀한 자식을 둔 많은 우리 부모 들는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해라 하면서 왜 공부를 해야 하냐라는 자녀들의 물음에 많은 부모들은 남들보다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하기 위해서라 한다. 왜 사람은 평생 배워야 하는지, 어떤 공부가 진정한 공부인지, 어떤 게 진정한 행복인지, 불행하게도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 이것을 진지하게 이야기해 주는 고마운 선생님이 있었다는 기억은 없다.
더더욱, 애들에게 학원 가서 공부 열심히 하라면서 정작 부모는 등산이나 공치러 놀러 나간다면, 그리고 애들에게 시험 잘 치라고 공부방 문을 닫으면서 부모는 거실에 앉아 TV만 보고 솔선해서 부모도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배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데 과연 아이들이 공부에 대한 진정한 동기가 부여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단언컨대 나는 부모는 아이들의 삶의 Running Mate가 되어야 한다. 그들의 꿈이 무엇인지 꾸준히 체크하고, 없다면 가지게 끔 대화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목표 없이 출항하는 배는 망망대해에서 허송세월만 하고 목적지에 닿을 수 없다. 그리고, 끊임없이 부모도 아이들과 함께 뛰고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줘 신임을 갖게 해야 한다. 자신의 옆에서 보조를 맞춰서 격려하면서 뛰는 부모를 보는 보통의 우리 아이들이라면 적어도 걷는 시늉이라도 내지 절대로 기지는 않는다.
그러기에 성공한 자녀가 아닌 훌륭한 자녀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 스스로가 훌륭함을 보여줘야 한다. 그 방법은 여러 가지고 정석은 없다. 나는 그저 딸과 공부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내가 딸의 러닝메이트임을 알리기 위해 스스로 공부하는 모습을 일부러라도 보여준다. 직장생활에 전공 공부에 아들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이지만, 꾸준히 딸의 외국어 대화 상대가 되어줘야 하기 때문에 같이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외국어를 많이 구사하는 것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다. 하지만, 말이 통하는 것보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배운 언어로 상대방의 마음을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게 경험상 정말 어렵고 나도 딸과 지내면서 많은 실패를 해 말대로 쉽지만은 않다.
우리 집에 두 여자.
한 여자는 사춘기고 또 다른 한 여자는 갱년기라 두 여자 사이에 요즘 시시콜콜한 것으로 말다툼을 하면서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딸 편을 들자니 마누라에게 볶이고, 아내 편을 들자니 딸내미가 마음에 걸린다. 이래저래 두 여자랑 한지붕 아래에서 중년 가장으로 사는 게 쉽지 않다.
나 역시 중년 남성의 갱년기인지, 별것 아닌 것에도 딸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스스로 자괴감을 느낄 때가 많다. "기대의(에) 어긋나지 않게 잘 할게요" 란 문득 딸이 편지에 적어 놓은 글의 진정성을 의심만 했지, 역으로 "나는 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아버지가 되고 있는가"라고 나 자신을 의심하지 못한 딸바보 아빠인 내가 참 바보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래저래 Father's Day.
이 날은 딸의 꿈이 개꿈이 되지 않기 위해서 또 한 번 아비로서의 노력을 다짐하는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