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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c Apr 24. 2018

이성과 지성을 넘어서

아들 예준이의 발달을 기대하며...

Thomson Reuters가 연구논문 발표수, 특허 신청수 등 11개 항목을 엄밀히 적용하여 발표한 2016년도 가장 혁신적인 세계 100개 대학에서 1위부터 5위는 스탠퍼드, MIT, 하버드 등 미국 대학이 차지했다.

하지만, 그다음 6위는 KAIST를 시작으로 포항공대(11위), 서울대(30위) 등으로 한국 대학이 전 세계의 유수의 명문 대학을 제치고 8개 대학이나 상위권에 있다는 것은 우수 대학에 대한 평가가 단순히 순위에 의하지 만은 않는다고는 하더라도 눈여겨볼 만한 통계자료임은 틀림없다.  

교육(敎育)이란 한자 단어를 말 그대로 풀이하자면, "가르쳐서 기른다"이다. 가르치다는 뜻은 말 그대로 어린아이가 세상의 지식과 물정을 잘 모르니 세상에 나가기 전에 기성세대가 가정이나 대학을 통해 축적해 온 지혜와 지식을 전수한다는 뜻이고, 기른다는 말은 그 가르침을 사회에 나가 세상을 이롭게 하고 윤리적으로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훈육한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이런 교육의 참 뜻에 반하여 자녀 교육이라는 게 가정에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대학에서도 그런 학생들을 바르게 키우기에는 여러 가지로 자라나는 대학생들을 에워싸는 환경이 달갑지만은 않다. 가령, 대학에서 학교의 랭킹이나 명성에 눈이 어두워 아이들이나 교수를 닦달해서, 지나친 스트레스를 주어 결국은 지나친 "敎"를 이루려다 당연히 동반되어야 할 "育"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집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위치한 프린스톤(Princeton) 대학. 역대 최고의 과학자라 불리는 아인쉬타인이 근무한 미국의 최고 명문 대학답게, U.S. News & World Report에서 매년 발표하는 최고의 대학에 순위를 5년 연속 1위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최고의 명문대학이 위의 혁신대학에는 한국의 서울대학(30위) 보다 뒤지는 32위에 머물러 있다.

이 대학의 교정에는 이 곳을 찾는 많은 예비 대학생들과 관광객이 놓치기 쉬운 작고 초라한 조형물이 하나 고색 찬란한 대학 건물들 사이의 음지에 놓여있다. 바로 한 노인이 무고 목숨을 애걸하는 듯한 청년을 향해 칼을 들고 있는 동철로 된 조각상인데, 자세히 보면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실험하기 위해 자신의 자식을 번제(태워서 제물로 삼음)로 바치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나이 80에 얻은 천금 같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 스스로 명줄을 끊으려는 장면이다.

공교롭게도 이 조각상을 지나 낮게 깔린 계단을 올라가면 왼쪽으로는 교회당이 있고, 왼쪽으로는 대학 본 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 넓은 이 대학 캠퍼스에 굳이 이 조각상을 두 상징적인 건물 사이에 두고 있는 까닭은 바로 피 끓는 젊은 대학생으로서 이성(理性)과 지성(知性)의 조화를 이루면서 학문을 배우라는 깊은 뜻이 있다고 본다.

자신의 미래의 영욕을 위해, 아니면 자신의 갈급한 지식욕을 채우기 위해 대학을 다니기 이전에, 왜 이 세상에 많은 이런 지식을 배워야 하고, 어떻게 배운 지식을 대학밖에 나가 인생의 새 발을 디딜 때 사용해야 하는지 끝없이 자신에게 자문하는 이성이 선행되어야 함에 있다고 본다.

미국의 금융과 경제가 집중된 대도시 뉴욕에서 Amtrack 기차로 위싱턴 DC행 기차를 타면 한 시간도 채 안되어  닿는 지리적 이점에도 불과하고 이 프린스톤 대학은 하버드대학과 같은 타 명문대학과는 달리 의대도 법대도 경영대학(MBA)도 없다.

세상적 셈법으로 보면 정말 우수한 학생들을 이런 인기 있는 단과 대학에 유치해 자신의 대학의 명성을 더 빛낼 수 있고, 말 그대로 대학의 몸값을 더 높이 받을 수 있고 재정적으로도 엄청나게 유리한 Cash Cow와 같은 단과대학들 임에도 불구하고, 이 대학은 고전적으로 전통 기초 학문에 그 중심을 두고 지금까지 아인쉬타인을 비롯한 37명의 노벨상을 수상하는 교수나 교직원들을 배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대학은 항상 자신의 욕(慾)을 채우려는 왜곡된 지성을 견제하기 위해 항상 건전한 이성을 갖추기를 주문하고 있다. 그러기에 세상적으로는 혁신이 필요한 대학인지 모르지만 정신적인 혁신을 가히 가름할 수 없기에 혁신대학 순위에서는 32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둘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류층의 미국인들은 늘 이런 양성(兩性)의 균형을 세대가 바뀌고 더 나아가 시대의 큰 조류가 산업화의 혁명으로 바뀌더라도 학문을 탐구하는 끊임없이 젊은이들에게 주문하고 있는지 모른다.

상큼한 녹음이 짙게 드리운 화창한 칠월의 중순. 한 달에 한 번꼴로 아들과 함께 찾는 이 프린스톤 대학 교정에서 단골 코스인 이 동상 앞에 매번 사진을 찍어 아들의 성장 과정을 담아오고 있다. 이성과 지성이란 대명제를 논하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발달 장애를 가진 아들에게 이 동상의 왼쪽은 누구고 오른쪽은 누구냐고 매번 물어도 대답을 제대로 못한다.  

당연히, 내 아들이 이 명문대학에 들어갈 수가 없고, 받아 줄 수가 없음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부모 욕심에 엄연한 현실이 꿈이 되고, 꿈이 다른 꿈을 재현해 내리라는 주술적 의미에서 나는 매번 이 동상 앞을 어스렁그리며 아들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있다.

남들은 자신이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는 "천사병"이라고 하기에, 사람이 어렸을 때 대소변도 못 가리다 한 6~70년 살다가 다시 치매 걸려 어린아이처럼 돌봄이 필요하듯이 내 아들은 평생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리고 이성과 지성의 구별을 못하지만, 그래도 이 사회에 큰 해약을 끼치는 그런 못된 어른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에, 그래서 신의 손으로 빚어지 이 아들을 오늘도 감당할 수 있는 나에게 주었기에 좁쌀만 한 크기의 이성을 가진 나는 감사하며 이 동상과 캠퍼스의 꽃밭을 등지고 하루를 쉴 수 있는 아내와 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다.

앞으로 얼마만큼의 세월 동안 동상을 찾아올지 모르지만, 오직 한마음 이 아들은 세상에 나만 가지고 있다는 소유욕이 오늘도 아들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힘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나는 감사함이 가득 찬 눈으로 아들의 눈빛을 맞추고 있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몸에 날것이 나고 목소리도 바리톤 음성으로 변해가는 아들이지만 그래도 변해서는 안 될 이성과 지성보다 더 강한 부성(父性)이 나에게 남아 있음에 감사한다.

http://www.reuters.com/article/amers-reuters-ranking-innovative-univers-idUSL2N1C40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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