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

소뼈와 어머니

by Eric

대학 3학년 때니 1994년도 가을.
10월 중순 학교 대학 축제로 1주일간 수업이 없고, 내 생일도 겹쳐져 문득 "어머니는 아들 없이도 과연 생일을 챙길까?" 궁금하기도 하기도 하고, 그 해 여름 방학 때 다음 학기 학비를 모으느라 아르바이트만 하다 보니, 어머니를 일 년 가까이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생일날 아침에 비수기 비행기 값으로 한국에 몰래 가 보기로 하고 나리타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집 떠나 이국에서 살다 보면 총각인 남자들은 무엇보다 혼자 지내야 하는 생일날이 제일 서럽고, 어머니가 채려 준 생일밥이 그리워지는 법. 기대반 설레임 반으로 김해공항에 내려, 당시 단층 셋집 살았던 우리 집에 닿자 대문이 열려 있어 인기척도 없어 부엌에 몰래 들어가 보니, 가스레인지 옆 큰 냄비에 미역국이, 밥솥에는 찰진 찰밥이 소복이 담겨 있지 않는가!!!

그 순간 내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굳이 없는 아들 생일밥 챙기지 않는다고 누가 욕할 사람도 없는데, 그렇다고 아들이 와서 밥 먹는 것도 아닌데, 어머니는 그 해도 어김없이 생일밥을 따뜻하게 차려 놓으신 게다. 이내, 옥상에서 장독대를 손질하던 어머니를 뒤에서 소리 소문 없이 안고서는 "어머니 저 왔어요" 하고 놀래 주며, 소리친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올해로 외국생활 28년, 아들 없는 그 23번의 생일날마다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당신이 손수 지어 오신 아들의 생일 미역국. 그러나, 그 정성 담긴 당신의 미역국은 3년 전 11월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더 이상 어머니는 이 못난 아들의 생일밥을 차려 주지 못하신다.

한해 더 먹어서 서러운 생일이 아니라, 어머니 없는 생일이 한 해 두 해 지나 세월이 흐르면, 당신의 기억도 아스라니 잊힐까 봐 서러워지는 게다.

내 어린 자식새끼들에겐 지극 정성으로 매년 생일마다 사다 준 생일 케익과 생일 선물, 또 매번 불러 준 생일 축하곡 부르면서 요란법석을 떨었지만, 정작 홀어머니 생신에는, 음력이라 매년 틀려 챙기기 어렵다는 핑계로, 외국에서 바삐 살고 있다는 사정으로, 시차가 전혀 틀리다는 이유 등으로 부끄럽게도 제대로 차려 드리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당신 살아생전,
당신의 생일날에 그 흔한 생크림 케익 한번 못 사드렸고,
당신 앞에서 촛불 한번 시원하게 불어 드리지 못했고,
생일 축하곡 한번 제대로 불러 드리지 못했고,
비싸지 않은 선물 한번 정성 다해 못 해 드렸고,
남들에게는 수없이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진정, 당신에게는 "낳아 주셔서 고맙습니다"란 말 한마디 따뜻이 전하지 못했다.

당신 없이는 내 생일도 있을 수 없건만,
내가 잘나 맞이하는 생일인 양, 착각하면서 미련하게 그렇게 살아만 왔었다. 마누라 생일도 당연히 챙기고, 친한 친구 생일도 챙기곤 했지만, 정작 챙기고 챙겼어야 했고, 그래서 축하받아 마땅할 당신의, 당신의 그 생일날을 챙기는 건 옵션이라 생각만 했지, 제대로 챙겨드린 기억이, 그 기억이... 미안하게도 나에게는 없다......

늘 공기가 있어 숨 막힌 줄 몰랐던 것처럼,
항상 물이 있어 목마른 줄 몰랐던 것처럼,
언제나 46년을 당신과 같이 살아왔었기에,
당신은 평생 나와 함께 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살았었다.
미련 곰퉁이 바보같이...

음력 10월 1일인 오늘.
당신의 생일인 오늘, 아들인 내가 어머니 생일을 찾아 드려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나는 당신의 거친 손으로 미역 치대여 홍합 넣어 끓여 주셨던 따뜻한 내 생일날 미역국 한 그릇이 먹고 싶다....
다시는 못 먹을 그 미역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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