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까?
겨울비와 함께 아직도 간간히 영하권을 맴돌던 한 주간의 회사 업무가 끝나고 마음의 여유가 있던 지난 금요일 오후 5시. 약속 시간에 늦을 새라, 회사 근처에 위치한 치과 사무실에 허겁지겁 들어서자, 처음 보는 동양 여자가 접수 데스크에 앉아 있어, 혹시 한국 사람인가 싶어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니, 잘 모르는 눈치라 바로 영어로 말을 바꾸기는 했지만, 아무튼 에둘러 그녀에게 어느 나라 출신이냐고 물으니, 몽골에서 대학원 진학을 위해 왔다고 하면서, 현재 그녀의 집 근처 Community College에서 ESL과정으로 영어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원래 몽골인과 한국인은 많이 닮기는 했지만, 그들은 얼굴선이 둥글고 몸집이 단단한 느낌이 있지만, 그녀에게 "언듯 보기로는 한국사람과 너무 흡사해 착각했다"라고 실례의 말을 전하자, 한류 드리마에 나오는 여배우를 보고 화장을 따라 했다고 수줍은 듯 말을 건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주 오래전에 Discovery 채널에서 본 "칭기즈칸의 후예"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을 떠올렸다. 내용인 즉,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사는 일반 집 가장들이 계를 만들어서 독일에 가서 중고 자동차를 구입해 자기 나라에서 되팔기 위해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여정을 동반 취재한 내용이다.
먼저, 몇 개 국가를 통과해야 하는 왕복 대략 16,000 km (지구 반 바퀴를 도는 거리)의 대장정이고 혼자서는 위험한 길이라, 자동차 면허증이 있는 친지와 지인들끼리 의기투합해서 상단을 꾸린다.
그런 후, 중국 무역상에게서 생활 용품들을 헐 값에 구입해서, 이것들을 열차에 싣고 울란바토르를 떠나, 러시아 국경을 건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한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중간역인 러시아 연방의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인 울란우데(Ulan Ude)에서 그 횡단 열차를 갈아 탄 후, 종착역인 모스크바까지 가는 중간중간에 정차하는 역마다 플랫폼에서 기다리는 러시아 상인들과 물건을 흥정하며 가지고 온 물건들을 팔아 목돈을 마련한다.
아무튼, 그 횡단 열차는 모스크바에 도착해 다시 거기서 국제 열차로 갈아 타 그들의 최종 목적지인 베를린 역에 도착한다. 그리고, 자동차 중고 시장을 찾아가 가격에 맞는 독일 고급 브랜드의 중고 자동차를 현지 브로커를 통해 구입한 후에 운송비를 아끼려 차를 직접 운전해서 다시 몽골까지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넓은 유라시아 대륙을 통과해야 하는데, 중간중간에서 러시아 경찰들이 교통 위반이라며 딴지를 걸고 돈을 요구하는 바람에 이리저리 가지고 온 돈까지 털리거나, 일행에서 이탈돼 길을 잃기도 하고, 숙박비를 아끼려 차 안에서 웅크려 자다 보면 거언 한 달간의 여정에 몰골이 이만저만은 아니지만, 처자식이 반겨주는 자기 집에 무사히 돌아와 서로 울면서 기뻐하는 그 상봉을 보여 주면서 그들의 기나긴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는 끝을 맺는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깊은 바이칼(Lake Baikal), 지구 상의 깨끗한 물의 20% 정도가 거기에 저장되어 있다고 하는 태고의 자태를 뽐내는 파란 호수도, 광활한 시베리아 평야에 달리면서 펼쳐지는 하얀 자작나무 숲이나 전나무 군락을 금색 실크 커튼 장식돼 차창 너머로 바라보며 각종 고급 와인과 고기를 먹으면서 즐기는 낭만적인 여로(旅路)의 사색에 잠긴다는 것은, 다음 역에서 팔 물건을 준비하느라 분주히 움직이는 그들에게는 사치일 수밖에 없고, 이들 칭기즈칸의 후예들의 여정에서는 천하를 호령하던 그 옛 모습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80여 개국에서 조공을 바칠 정도로 세계 최대 영토를 가져, 북으로는 광활한 우랄 알타이 산맥을 넘어 러시아의 턱밑까지, 그리고 남으로는 초원과 사막을 가로질러 남송과 베트남까지 누비던 칭기즈칸과 그의 유목민들이 13세기에 세운 몽골 제국이지만, 유구한 인류의 세계사에서 알렉산더 제국, 로마 제국, 대영 제국, 그리고 오스만 제국 등등의 많은 국가가 융기해서 쇠락의 길을 걷기는 했어도 몽골 제국처럼 흥망 성쇠를 극과 극으로 경험한 민족도 국가도 없을 게다. 사실, 흥미롭게도 몽골이 최대 영토를 이룬 나라이지만, 동시에 가장 빨리 망한 나라 중 하나라 한다.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이 남송을 물리치고 중국의 베이징으로 몽골제국의 수도로 옮기고 원나라 세조로 즉위하면서 많은 나라의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피지배 민족의 문화를 존중하는 정책을 유지했지만, 그가 죽은 후 얼마 못가 친족 간의 정쟁과 이민족의 핍박으로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해 쇠망의 길을 걸었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잊는 요충지인 터어키의 수도 이스탄불에는 몽골의 최고 전성기를 일구어 낸 쿠빌라이 칸이 80세의 일기로 그가 죽기 전에 남긴 귀한 유언이 몽골어로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나의 아들들아, 내 뒤를 이어 사람들을 모으고 나라를 지배하기를 원하고 있느냐? 그렇다면, 그들의 몸이 아니라 마음을 끌어 모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나,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도 변할 수도 없는 이 "만고의 지순한 법칙"을 아이러니하게도 칭기즈칸의 후예들은 귀담아듣지 않아 현대사에는 겨우 그 명맥만 유지하는 초원 국가로 전락되고 말았다.
88 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조국 대한에서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17일간의 열띤 경기를 끝으로 무사히 폐막식을 마쳤다고 한다. 개막식에서 각국 정상들과 선수들 뿐만 아니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북한의 올림픽 참여를 두고 국내적으로 사회적으로 갑을 박론도 있었고, 성공적인 개최냐 아니냐를 두고 설왕설래도 있었다. 어째튼 우리의 역량을 모아 세계인의 잔치를 벌인 이 올림픽을 통해 많은 외국의 방문객이나 세계 각 곳에서 경기를 시청한 이들의 칭찬과 쓴소리에도 겸허히 귀를 기울여 그들의 마음을 얻었는지 스스로 자문해 봤으면 한다.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얻었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