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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c Apr 24. 2018

묵향(墨香) 가득한 기록하는 삶

세계기록유산. 
유엔 산하 유네스크가 온 인류가 공유할 만한 가치 있는 기록을 유산으로 공동으로 지정해 이 기록물들을 유지 및 보수에 힘을 기울이자는 차원에서 만들어졌는데, 여기에 등록된 기록물들을 나라별로 살펴보면, 독일이 17건, 오스트리아가 13건, 폴란드가 12건, 그리고 한국과 영국이 동등히 11건. 그 이외에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가 9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국이 8건 등등 이렇게 등제되어 있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가 등재한 기록유산을 시대순으로 살펴보면, 고려시대의 "직지심체요절"과 "팔만대장경판", 그리고 조선의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조선왕조의괘", "난중일기", "동의보감",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새마을운동 기록물"과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이렇게 총 11가지.

그러나, 그 등록 문건을 단위별로 보지 않고, 그 기록된 내용의 깊이나 분량 면에서 우리의 11건이 단연 세계 1위 수준이라 한다. 우리도 잘 깨닫지 못한 이런 기록들을 조상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 준 것을 감사하기 이전에, 어떻게 세계지도에 찾기 조차 힘든 작은 우리나라에서 인류의 장구한 역사를 담은 기록물 중에서 상좌에 앉을 수 있었을까? 과연 우리 조상들은 당대의 기록을 후대에 목숨 걸고 무엇을, 그리고 왜 전하려고 했던 것일까? 

나는 이 11개 중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팔만대장경", "일성록", 그리고 "난중일기"이라 본다.

먼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몽고의 침략전쟁이란 그 풍전등화 속에서도 목판 만드는데 필요한 나무의 선택에서부터 운반, 그리고 3년을 바닷물에 담갔다가 말리고, 깎고, 옻칠하고, 글자 새기고.... 100만여 명이 동원되고, 능숙한 기술자라고 하더라도 하루에 고작 40-50자의 글자밖에 목판에 새길 수 없었다고 하니, 16년이란 제작기간이 결코 길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 임금들의 직무를 반성하면서 왕이 하루하루 쓴 "일성록(日省錄)". 그 고고한 프랑스의 귀족들도, 그 도도한 영국의 왕족들도 기록하지 않은 것을 조선의 선왕들은 160여 년에 걸쳐 왕의 일기로 남겨왔다. 후대의 임금에게는 보여줄 수 없었던 조선왕조실록과는 달리, 이 일성록은 국정에 참조할 수 있어서 후대 왕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기에, 등재 시에 심사에 참가한 세계적인 도서 학자들도 이런 왕의 진솔한 기록에 혀를 내둘리면서 극찬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충무공이 임란 중 직접 쓴 "난중일기(亂中日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란 속에서, 그것도 일개 한가한 조선 수병이 아닌, 전쟁의 총책임자가 자신의 일신상의 일 뿐만 아니라,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전황을 빠짐없이 기록한 것은 수없이 많은 인류의 전쟁사에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그들은 역시 탐복을 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목판은 그렇다 치더라도, 요즘과 다른 당시의 상황으로 보면, 벼룩과 묵으로 먹물로 갈아야 했고, 당시 흔하지 않던 귀한 한지를 구해 적어야 했던 선인들의 기록 방법에 비하면, 오늘날을 사는 우리는 컴퓨터, 프린트, 문서 소프트웨어, 그래픽, 스마트 폰에서 조차 쓰는 것뿐만 아니라, 사진, 심지어 픽셀 좋은 동영상까지도 언제든지 기록이 가능하지만, 이를 자신만의 유일한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읽어야 할 글이 조금만이라고 길면 집중력이 떨어져, 1-2분 이내에 결론이 나지 않으면 금방 짜증내고, 학교에서 자신의 생각을 작문해 보라면, 몇 줄도 못 쓰는 요즘의 우리 아이들. 밥상에서 부모들과의 애기보다는 스마트 폰으로 톡만 하는 식구들. 한국이나 미국이나 전철 안에서 책장 넘기는 소리가 끝 긴지 오래된 요즘의 출퇴근길. 여기저기 인터넷상에서 유용하고 좋고 재미있어 퍼오기만 하는 글과 동영상들...

전문 직업꾼들이 만들어 주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TV나 인터넷을 통해 일방적으로 받아 보기만에 길들여져, 내가 스스로 고민해서 가져오기에 익숙지 않아 직접  만들어 내는 습관을 갖지 못한 것. 어느 밴드나 카톡을 둘러보더라도, 보잘것없을지라도 나만의 진솔한 생각을 담은 글을 찾아보기 힘들이지는 것을 보노라면,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편한 세상에 천편일률적이라 무미건조하게 살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솔직히 말하면, 옛날에 시집간 누나가 가계부를 적을 때, 뻔한 매형의 수입으로 무슨 지출 적어서 뭐 하냐며 핀잔을 줬는데, 우연찮게 대학 입시를 마친 해에 친구에게서 선물 받은 작은 수첩에 나도 하루하루의 지출을 쓰다 보니, 그렇게 안 했을 때에 비해, 돈을 한번 더 생각하며 쓰다 보니, 한 20% 정도 줄일 수 있는 경험을 20대 초반에 하고는 그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의 느낌으로는 그렇게 하면 마냥 생각 없이 살 때 보다 20%는 더 값있게 살지 않을까 싶어서였는데, 지금 와서 보면, 많은 인생의 실패를 했었지만, 이것 만큼은 진짜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글로 옮기고, 그래서 기록으로 남기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사실이나 의사 전달의 수단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한 고뇌,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애착, 그리고, 자신과 다른 사람의 인생 사이에 엮이는 번민들이 글로 옮기는 가운데 이뤄지며, 그런 자신에 대한 성찰의 시간 가운데서 스스로를 추슬러 나가며,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자문하고 각성해 나가게 하는 즉, "또 다른 나와의 절대 교감"이다.

남의 글을 읽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도 당연히 권해야 할 좋은 독서 습관이지만, 한 번쯤 남을 위해 살아온 삶이 아닌, 바로 나의 삶을 살아온 내가, 인생의 여정에서 나의 삶을 가끔씩 스스로 글로 옮겨 보는 것, 그것은 오늘처럼 봄비 내리는 금요일 저녁, 친한 지인들과 만나 차 마시며 수다 떠는 것보다, 벗과 어울려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보다, 카톡으로 채팅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귀한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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