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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c Apr 24. 2018

어느 에콰도르 화가가 남긴 말

가진 것에 감사함이 행복의 최고

발달 장애를 가진 아들 예준이가 집 근처 특수학교에서 받는 평상시 수업과는 별도로 일주일에 두 번씩 집에서 차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특수교육을 전공한 선생님 집에 떼라피를 받으러 가는데, 어제 일요일에는 그 집에 아들을 내려다 놓고 나바로 길 건너에서 Yard Sale을 하길래 차 안에 있던 딸과 같이  집 앞마당을 둘려봤다.

날씨가 좋은 봄가을의 주말이면 이곳의 가정집들은 더 이상 필요 없는 애들 헌 옷이나 장난감, 아니면 주방용품 등 가재도구를 집 마당에 펼쳐 놓고 공짜 같은 헐값에 파는 경우가 많다.

그 집 마당에 낙엽이 구석구석에 널려 있는 것을 보니, 집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보이고 건질만한 물건도 별로 없을 것 같아 대충 둘러보고 나오려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차고 구석에 있는 그림 한 점을 꺼내면서 자신의 조국 에콰도르에서 유명한 "구아사민"이란 화가의 그림의 모방품이라면서 그저 줄 테니 가져가란다. 속으로 당신이 한국의 이중섭과 같은 화가를 모르듯이 내가 그런 사람을  알 리가 있나 하고 속으로 피식 웃어 버렸다. 

얼듯 보기에 피카소 작품처럼 강렬한 색에 붓의 터치가 강한 추상적인 그림인 데다, 그렇게 보관이 잘 돼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우리 집 벽에 이런 해 묵은 프레임에 담긴 그 그림을 걸어 놓을 만한 장소도 없어 정중히 거절을 하고서는 딸이 5불 주고 사용해 본 적이 없다는 빵 굽는 데 사용하는 도구만 하나 사들고 나왔다.

나중에 저녁녘에 집으로 돌아와서 "에콰도르"는 남미 어디에 있을까? 중남미 국가들은 고만고만한 작은 나라들이 많은데 이 참에 찾아보고 싶은 궁금증이 생겨, 스마트 폰으로 Google지도로 찾아보니, Ecuador가 스페인어로 적도란 뜻이며 수도 Quito가 그 적도 위를 지난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내친김에 그 아주머니가 내심 자랑스럽게 말한 화가에 대해서도 "famous painter ecuador"란 키워드로 인터넷에 찾아보니,  "Guayasamin"이란 이름이 떠고,  스페인의 지배에 항거하면서 작품 활동을 한 그 나라에서는 전설적인 화가로 그의 그림들이 전시된 시내 박물관 한컷 벽면에는 그가 남긴 아래의 말이 전시되어 있다는 것도 우연히 발견했다.

' Yo llore porque no tenia zapatos hasta que vi un niño que no tenia pies' (나는 신발이 없어 울었다, 내가 발이 없는 아이를 보기 전까지...)

나이가 벌써 14살이라 또래 아이들 같으면 벌써 인수분해를 배울 나이인데, 더하기 빼기는커녕, 숫자도 겨우 1부터 10까지 알고 알파벳만 대문자만 아는 3-4살 정도의 인지 지능을 가진 아들로 인해 아내도 나도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 민감한 사춘기의 딸도 우리가 걱정할까 봐 내색은 안 했지만 그런 남동생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심 많이 속상해하며 울었을 게다. 한 번은 아들이 자기 누나방에 들어가 힘들게 해 놓은 숙제를 그냥 종이인 줄 알고 매직으로 색칠을 해 엉망으로 해 놓자, 친구에게 전화를 해 엄마 아빠보다 자기가 동생과 보내야 할 시간들이 더 많다며 울먹였다고 그 친구의 부모에게서 전해 들었을 때는 죄 없는 우리 딸에 대한 미안함에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혼자서는 잠을 잘 수 없는 아들이 가끔 잠자리에 들기 전 아빠인 나보고 "엄마! 밖에 가...."라는 말을 생각 없이 내뱉을 때면 한숨만 내 쉬었다. 엄마 아빠가 이 세상 떠나고 나면 양치질은 누가 해 주며, 손발톱은 누가 깎아 주겠냐는 평범한 아이들을 둔 보모들은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을 고민들을 하면서 평생 친구 한 명 없을 이 놈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울먹이며 기도하다 잠 못 이룬 적도 있었다.

 

요즘 들어 아들이 여드름이 나기 시작하면서 부쩍 덩치가 커지다 보니 유아기 때는 감히 상상도 못 했던 황당한 일들이 일상 속에서 벌어지면서 아내와 딸이 점점 더 힘들어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내 아들이 정상이 될 거라는 희망의 끈만큼은 절대 놓지 말고 참고 잘 돌보자며 내가 위로받은 이 화가의 고백의 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 그러면서 나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고백해 본다.


"나도 아들이 정상이 아니라 울었다. 자신의  잃어 망연자실하는 부모를 보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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