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말로 끝나는 영주권 갱신을 할려고 장롱 속 해 묵은 지갑에 넣어 둔 카드를 꺼내려다 보니 퇴계의 초상화가 새겨진 천원짜리 지폐가 옛 한국 여권속에 끼여 있었다.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
퇴계 이황이 69년간의 삶이 끝나감을 스스로 예견하며 자신의 누울 자리를 꾸린 후, 도산서원 방 창가에 두고 길렀던 매화(梅花)를 보고 임종 직전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 조선의 많은 선비들 중에 이렇게도 매화에 대한 집착이 강한 선비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퇴계의 매화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남달랐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퇴계의 매화사랑을 단적으로 볼 수 있는데, 바로 천원짜리 지폐 앞면 왼쪽에 만개한 흰 매화(白梅)를 소복히 새겨 놓은 것도 그 연유라 본다.
조선 성리학의 대가이자 시문에 탁월한 재능을 가졌고, 당시 끊이지 않던 조정의 사화에 연루되지 않으려고 정계를 멀리하고 후학양성에 일생을 바친 대학자이며, 류성룡등 당대의 수많은 유명한 제자들에게서 추앙을 받았던 그가, 죽음을 목전에 앞둔 순간에서 조차도 왜 그 매화에 물을 주라고 하였을까?
사실은 즉 이렇다고 한다.
퇴계가 충청도 단양군수를 48세의 나이에 부임해 왔을 무렵은 벌써 본처와 재혼한 둘째 아내마져 잃고, 심신이 피곤하고 외로웠을 즈음인데, 단양의 관기로 기재되어 있던 두향(杜香)이란 총명있고 아릿다운 18살된 어린 기녀가 있어, 그녀는 새로 부임하는 퇴계의 인품에 대해 귀동량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두향은 가야금을 잘 타 관가의 행사에 관여된 것이 인연이 되어 퇴계를 흠모하게 되고, 시간이 날때 마다 이 둘은 시문으로 교제를 나누면서 사랑(?)을 쌓았지만, 이것도 잠시. 10개월 만에 퇴계의 형이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자, 직속상관인 형이 있으면 나랏일을 공평히 행하지 못한다 하여 관직을 내려 놓자, 그의 청백리를 일찍부터 알아챈 조정에서 다시 퇴계를 경상도 풍기군수로 발령을 내렸다.
헤어지기 전날 밤, 이 두 사람은 어두운 방 안에서 얼굴을 마주만 보고 아무말 없이 이별의 아픔을 시로 나눈 후에 퇴계가 풍기로 떠나자, 두향이 이별을 애달파 하며 퇴계의 짐 속에 작은 매화 한그루를 넣어둔 것이 바로 이 매화였던 것이다. 퇴계를 아픔으로 보낸 후, 그녀도 기적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줄 것을 관가에 간청하고선, 일반인으로 돌아가 남한 강변에 쓸쓸히 홀로 움막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그 후로 두 사람은 20여년간 한번도 만나지도 못했지만, 퇴계가 타계했다는 부음을 접한 두향은 소복차림으로 단양서 안동의 도산서원을 나흘을 걸려 찾아 갔고, 고인이 된 퇴계에게 행여 누가 될세라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곡하며 세번 절을 한 후에 단양으로 돌아와 3년 상를 치른 후에 스스로 남한강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당대의 대학자답게, 퇴계는 두향을 기녀출신의 나이 어린 여인이라 함부로 대하지도 범하지도 않았고, 그녀를 잔설을 이고 피어나는 고매한 매화(雪中梅)처럼, 그리고 맑고 은은하게 번지는 청아한 매화의 향기처럼 귀히 여겼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사연 어린 도산 매화(陶山梅)는 지금부터 30여년 전 고사했다고는 하지만, 400여년이란 인고의 긴 세월을 두고 도산서원 뜨락에 매년 초봄에 피워 온 그 오래된 매화(古梅)에 얽힌 사랑이야기가 진한 향기되어 은은히 퍼져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매화처럼 아름답고 고매한 두향과 그녀의 지조 높은 사랑이 진정 부러운 것은, 내도 그런 사랑을 받아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눈에 드러나는 상대의 화려한 겉모습이나 스펙을 보는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배어 나오는 깊은 인품을 보고 사랑에 빠질 정도로 30년이란 나이 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를 마음에 품었다는 두향의 님 향한 "사랑의 넓이"가, 그리고 20여년을 만나지 못했어나 변함없이 그녀의 마음 속에 늘 퇴계를 담고 있었다는 그 "사랑의 깊이"가 왠지 부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랑은 현실을 보는 이기적 눈을 가리게 하고, 앞뒤를 재야하는 합리적 이성마져 무디게 만들며 이치와 논리가 전혀 먹혀들어 가지 않는 마법과도 같다.
요즘의 젊은이들 같은면, 그런 미지근한건 사랑이 아니야 하고 외치며, 화끈하고 열정적인 애정을 추구하는 그 사랑과는 사뭇 그 차원과 지경이 다름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를 불 태우는데는 어려움이 없이 아무나 할수 있지만, 그 불탔던 사랑을 끄지지 않게 지켜 나가는건 아무나 할수 없다.
아직은 3월 중순이지만, 완연한 봄이 오면 내 고향 섬진강가 언덕 위에 흐느러지게 필 연분홍의 매화 꽃잎을 탐매(探梅)하면서 바람결에 실려오는 상긋한 매향(梅香)을 좇는 그 꿈에 그리니, 어느 듯 그 진한 매화향(暗香)에 취한 듯 이 밤도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한데....
문득,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일생동안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시문이 가슴을 깊숙히 파고 든다.
여기서는 상거래에서 거의 통용되지 않는 2불짜리가 행운을 불러준다 해서 항상 내 지갑 속에 넣어 다녔는데 이 봄만이라도 이 천원짜리를 같이 넣어 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