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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한 뇨뇨 Oct 19. 2021

땀과 노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2005년 1월, 졸업도 하기 전에 병원 입사가 결정됐다. 봄꽃을 맞이하는 심정처럼 두근거림과 기대로 가득 찼다. 첫 출근, 유니폼을  깨끗이 차려 입고 거울을 보며 잘할 수 있다고 주문을 걸었다. 하지만 매일매일 강하게 마음먹어도 병원이란 곳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멋진 간호사가 되고 싶은 의욕이 앞섰지만 실력이 따라오질 못했다. 마음만 바쁘고 환자들이 요구한 일은 아무리 해도 줄지 않았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머리가 산발이 되도록 일은 도맡아 하면서도 실속은 없었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퇴근 시간은 기약 없는 날들이 지속됐다. 외과 환자의 드레싱을 마무리하고 세트를 정리하면 12시가 넘어 퇴근하곤 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졸다 종점까지 가는 날이 많아졌다. 온종일 화장실 한번 못 가고, 밥도 굶어가며 일했다. 하지만 인정은커녕 매일 쓴소리와 상처의 말만 들어 출근하는 게 끔찍해 가끔은

“ 가다가 사고라도 나면 출근하지 않아도 될 텐데.”

캄캄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출근하는 날엔 못된 마음마저 들기도 했다.

피곤과 무기력, 우울히 몰려왔다.

 매번 실수 투성이었던 나에게

“ 너 그 머리로 간호사는 어떻게 됐어?”

 비수를 꽂았던 선배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열심히 해도 실력이 늘지 않아 속상했고, 하루에도 수백 번 이상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호과를 졸업했지만 신규 간호사로 병원에 들어간다는 것은  온실의 화초가 야생에 던져진 느낌이랄까? 시댁 살이 보다 더 매섭다는 태움이 존재했다. 그리고 신규를 싫어하고 피하는 환자도 있었다.  

“ 초짜한테는 주사 못 맞겠어요.”

어떤 환자는 주사를 맞고 나서 수간호사 선생님께 나의 주사 실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른 환자는 직접 말하기가 미안했는지

“ 저는 샤워하고 늦게 주사 맞을게요.

하며 위기(?)의 순간을 피하기도 했었다.


하루는 정맥 주사를 놓는 나의 서툰 솜씨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한 환자가

“ 나는 너 한데 주사 못 맞겠어. 다른 간호사 불러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평소 술도 많이 먹고 드세기로 유명했던 그가 폭발하고 말았다. 가뜩이나 병원 다니기가 싫어 하루하루가 우울한 날이었는데 나의 실력도 답답하긴 했지만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가득했던 그 병실에서 무방비 상태로 치욕을 겪고 나니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미 퇴근 시간은 넘었고, 도와주는 사람 없이 고독하게 내 일을 쳐내고 있을 때였다.

지나가던 바로 위 선배가 퇴근길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는지 손을 거들어 주어 겨우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평소 친손녀처럼 챙겨 주시던 진대 할아버지가 안쓰러운 얼굴로 말없이 나를 보고 계셨다.

 그리고 다음날

“ 한 간호사야. 이제 내 주사는 한 간호사가 와서 계속 놔래이”

씩 웃으며 팔을 내미셨다. 땡볕에서 일하시면서 까맣게 탄 피부는 거북이 등처럼 투박하고, 혈관은 집에 두고 오셨는지 ‘대략 난감’이었다. 그래도 꼭 성공하겠다는 신념으로 매일 할아버지의 손을 꼼꼼하게 더듬어 혈관을 찾았다. 한번, 두 번, 세 번, 네 번……. 진대 할아버지는 한없이 인자하게 웃으시며 나의 마루타(?)가 되어주셨다.


주사에 노이로제가 걸리면 버스 손잡이를 잡고 있는 남자의 혈관이 괜히 탐날 때가 있다.

운전대를 잡은 남자 친구의 팔을 걷어 주사를 놓고 싶을 정도로 간절했던 첫 간호사 적응기는 그렇게  흘렀다. 석 달만 버티자 했던 나는 모진 풍파 속에서도 나를 응원해 주는 진대 할아버지 같은 환자들이 있었기에 13년을 버틸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외래 진료를 보러 오는 날에는 내가 잘 적응하고 있는지 자주 병동을 찾아와서 살피고 가셨다. 혹여나 병원장님을 만나면

“ 이 병원에서 한 간호사가 제일 일을 잘합니다 ”

눈을 찡긋하며 원장님을 불러 내 칭찬을 그리도 하셨다.

“ 한 간호사는 이 환자한테 뇌물이라도 줬나?”

하고 원장님이 묻기도 했다. 뇌물이 아닌 우리 둘 사이엔 끈끈한 전우애(?)처럼 찌질이에서 베테랑 간호사가 될 때까지 서로 응원하는 시간이 쌓였다.

전혀 혈관이라고 없는 진대 할아버지의 그 딱딱했던 손등의 감촉이

16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생각난다. 더듬더듬 24 게이지 바늘로 서툴게 혈관을 찾던 나에게 한 번도 화내지 않았던 할아버지는 지금도 건강하실까?


얼마 전 학원에서 조무사 실습을 나간 학생이 나에게 연락해 왔다.

“ 선생님 , 저 병원 실습 왔는데요. 너무 재미있어요.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 퇴근도 선생님들이랑 저녁 늦게 까지 있으면서 배우고 있어요."

“ 왜 그런 쓸데없는 일을?? 적당히 해요. 지치겠네.”

“ 여기 힘든 환자들도 있는데요, 그래도 좋은 환자들이 있고, 가끔 챙겨주는 선생님들도 있어서 일한만 해요. 그리고,, 저.. 간호사가 되고 싶어 졌어요!”

수업시간엔 조용히 졸고 있던 남자 학생이 실습 나가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고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었지만 간호과를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에 나는 내 신규 시절이 떠올랐다. 어리바리 매일 울기만 했던 신규 간호사 시절.

어떤 일이든 처음 새로운 일에 도전하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기도 하지만 막상 일을 하다 보면 수많은 난관에 부딪치기도 한다.아무리 노오력해도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절대 불변의 법칙 !

노력과 내가 흘린 눈물과 땀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면 언젠가는 내 진심을 이해해 준다는 것이다. 그 남학생이 부디 지치지 않고, 잘 버텨주기를.

심장이 뛰고 하고 싶었던 일을 처음 마음처럼 끝까지 할 수 있기를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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