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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한 뇨뇨 Oct 27. 2021

매일의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

밤도 아닌 칠흑 같은 새벽 4시 30분

그 시간이면 밤근무로 지친 몸을 이불 하나 베개  삼아  스테이션 책상에 엎드려 눈을 붙였다. 


" 윽. 탁.  윽 탁. "

 오윤 할아버지는 어김없이 

한쪽이 마비된 몸이지만 아기가 내딛는 걸음처럼  정성스레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그는 고혈압, 만성신부전, 뇌졸중을 진단받고 수년 동안 병원 생활을 했다. 

내가 10년 차 간호사가 될 때까지 매일 같은 시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왼쪽 몸을 오른쪽에 의지한 채 부단히 도 운동을 이어갔다.

걷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같은 시간에 일어나 신발을 신고, 장갑을 끼고 복도로 나왔다. 

건강한 오른 팔로 축 쳐진 왼쪽 팔을 수차례 들고 내리 고를 반복했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말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나는 그 당시 그의 말이 어눌하여 잘 알아듣지 못했다. 

끙끙거리면서도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발소리.. 

" 응, 탁. 응 탁."


고요한 새벽 공기를 그의 발소리가 깨워주었다. 

교과서처럼 그의 일상은 규칙적으로 흘러갔다. 

아침 운동을 두 시간 공들여하고는 식사를 마친다. 한 시간 낮잠을 자고는 , 오후 계단 오르기 운동을 수차례 했다. 저녁엔 몸을 깨끗이 씻고 항상 같은 공간에서 여유롭게 TV를 시청하고 같은 시간에 잠자리를 들었다. 


다음날 새벽 4시 30분이면 어김없이 그의 운동은 시작됐다. 

대부분의 투석 환자들은 주 3회  , 한 번 투석을 시작하면 4시간은 투석기에 묶여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투석을 하는 날엔 지쳐 쓰러져 잠만 자는 환자들이 많았다. 온몸에 노폐물이 쌓이니 피곤함은 투석환자들의 흔한 증상이었다. 그렇지만 오윤 할아버지만은 달랐다. 

투석 후 몸이 힘들 법도 했지만 그의 루틴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지속되었다. 


밤 근무하던 시절,  일을 마무리하고 잠시 엎드려 쉬고 있을 때면 매번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젊었을 때 오윤 할아버지처럼 열심히 살면 내 노년이 뭔가 멋진 삶으로 이룰 수 있을까?"


그는 생기 있는 간호사와 의사들처럼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일어나 내 침대를 반듯하게 정리하고 아침 운동으로 하루하루 일상을 연결해나가는 것. 

그에겐 자신만의 일상을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중이었다. 

젊은 사람처럼 무엇인가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삶은 아니었지만 단조로운 일상을 그만의 방식으로 단단하게 엮어가는 중이었다. 


할아버지는 나의 세속적인 눈으로 봤을 때 그렇게 성공하고 멋진 삶은 아니었다. 

풍족한 삶은 아니었고, 한국 전쟁 참전으로 몸도 성하지 않았다. 

신부전으로 주 3회 힘든 투석을 받아야 했고, 뇌졸중 후유증으로  마비까지 왔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나의 주어진 시간 속에서 그만의 계획을 꾸준히 해 나갈 뿐이었다. 수년이 지나 동료에게 듣기로는 오랜 병원 생활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일상처럼 마지막도 그렇게 가셨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그때 느끼지 못하는 것들은 문득 깨닫게 될 때가 많다. 

새벽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하고 답한다. 

새벽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거창하진 않지만 내가 계획한 작은 루틴을 하나하나 완수해 나갈 때 스스로 자존감이 올라가고 기쁨을 맞이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늦가을 캄캄한 새벽 5시 

일어나 잠시 눈을 감고 오늘을 계획한다.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세수를 하고,  따뜻한 차 준비를 마치면 새벽 기상 문을 연다. 

위층 할아버지는 정확한 시간에 현관문을 열고 기침을 한번 하고는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운동을 가는 것일까? 아니면 이른 시간 일을 나가는 것일까?

그의 아내는 달그락 거리며 부산 스레 집안일을 시작한다. 


'탁탁탁..'

아직도 창문 밖은 캄캄하다. 

누군가 매일 같은 시간 지팡이를 탁탁 소리 내며 운동을 시작한다. 


같은 시간, 

다른 공간. 

바쁘게 지나친 일상을 잠시 멈춰 드려다 본다. 

의미 없이 지나가는 시간인 듯 하지만 누구나 각자의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중이다. 

칸트의 시계 일화처럼 시계를 보지 않아도  그들은 똑같이 한 땀 한 땀 자신의 삶을 조각하는 중일 것이다. 

그게 돈이 되는 일이든 그렇지 않든 나름의 루틴을 이어가다 보면 나의 커다란 인생이라는 작품도 완성도를 높여가는 작업이란 생각이 문득 든다. 


오늘 나는 , 주어진 시간을 내가 감동할 만한 하루로 살고 있는가?

그리고 일상을 정성스레 조각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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