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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은 일상적이고 가까운 곳에서

Don't Hurry Be Artist, 김영언 작가와의 만남

by 하성민

<DONT HURRY BE ARTIST>

두 번째 아티스트, 김영언 @young_rorroro

<DON'T HURRY, BE ARTIST>는 아티스트 인터뷰를 통해서 그들의 작업세계와 작업물을 소개합니다. 때로는 무기력하고, 때로는 어렵기만 한 작업의 시간들을 응원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예술하세요.


두 번째로 소개하는 아티스트는 김영언 작가입니다. 그의 공간에 들어서니 커튼 사이로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고, 식탁에는 현재 진행하는 작업을 위한 김밥과 계란 프라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독특한 이미지들이 구석구석 놓인 그의 공간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자기소개 및 현재 하고 있는 작업 소개를 해주세요.

"저를 포함해 3명이 함께 창업한 브랜드에서 비주얼 가이드와 패키징 작업들을 해요. 제가 대학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3년이 되었는데, 공동 창업을 해서 그렇겠지만 디자인적 자유도가 높아요. 그래서 제 스타일과 작업방식(혹은 디자인 철학)을 많이 녹여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요즘 하고 있는 개인작업은요?

"‘도시락 책’이라는 작은 책을 만들고 있어요. 요즘에는 사람들이 도시락을 잘 안 먹잖아요. 예전에는 많이 싸 먹었는데, 제가 느끼기에 도시락은 좋은 취미인 것 같아요. 영양도 생각해야 해, 보기에도 예뻐야 해, 시간도 투자해야 하는 게, 요즘에는 잘 안 하지만 어쩌면 제일 중요한 것들이잖아요. 이런 도시락의 요소들과 들어가는 재료들, 사람들의 말들을 조합해서 책을 만들고 있어요."
"예를 들면, 지금은 ‘계란 챕터’ 작업을 하고 있어요. 계란 프라이를 할 때 계란이 깨지고 프라이팬에 닿기 전에는 그 형태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무의식 중에 계란 프라이의 기본 형태만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이런 느낌으로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도시락 음식에 빗대어서 담고 싶어요. 주변 지인들을 인터뷰해서 사람들 각자가 다른 계란 프라이임을 표현하면서도 ‘중요하지만 놓치고 사는 이야기’를 담으려고 해요."
"개인적으로 글을 쓰는 일도 하고 있어요. 최근엔 좋은 기회로 작사라는 분야도 시도해 보았는데 타입 디자이너이면서 타입디자인에 모든 것을 쏟는 사람도 있다면 저는 이것저것 하면서 중구난방인데 이런 형태의 작가도 있는 것 같아요. 이 자체가 제 모습이에요. 어쩔 수 없이 작품에서도 이런 모습의 제가 녹아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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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이 좋은 취미라고 했는데, 실제로 취미는 뭔가요?

"저는 취미를 말할 때 언제나 책 읽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책을 읽었어요. 뭐든지 읽는 것이 일상이 되고 여러 종류를 읽다 보니까 취향이 생기고, 소설이나 인문학, 철학 계열의 책을 좋아했어요. 그런 책들이 토대가 되어 제 성격이 형성되었겠죠. 작업할 때도 주제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내가 하는 모든 선택이나 행위에 이유가 있는 것을 좋아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형태는 디자인에 가까워도 점점 더 순수미술에 가까운 작업이 늘어나게 된 것 같아요. 물론 디자인과 순수미술의 경계선은 모호하다 생각하는 편이지만요."


좋아하는 책이 있나요?

"저는 <데미안>을 좋아하는데 이 책이 한번 읽어서는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책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요즘 독서모임을 만들어서 진행하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한 번 더 읽었는데 또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좋았어요."


휴식하는 시간은 어떻게 확보하세요?

"일도 디자인이고, 취미도 디자인이고, 쉬는 것도 디자인이에요. 앞서 말한 독서모임도 그런데, 저희가 특별한 점이 같이 진행하는 친구도 디자이너여서 책을 한 권 다 읽으신 분들한테 작은 굿즈를 만들어서 드려요. 같이 준비하는 동료들이 독서모임이라는 이름하에 모여서 일이 아닌 디자인을 하는 거죠. 즐겁게 즐기는 독서모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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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독서모임인가요?

"이름은 Ribble이에요, ‘Scribble’ ‘낙서하다’라는 의미에서 따왔어요. 요즘 독서가 자기 계발의 요소가 되고 할 일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저한테는 독서가 일상이거든요. 글을 읽는 행위일 뿐이지 지식을 방대하게 하려고 의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더 쉽고 편하게 독서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독서모임은 ‘이런 스타일의 독서는 어떠세요.’라고 제안하는 방법으로 하고 있어요. 멤버 분들이랑 일주일 동안 분량을 정해서 읽고 클럽하우스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눠요. 저는 리더로서 미리 책을 읽어서 책에서 흥미로운 배경이나 사실들, 예를 들면 ‘이 작가가 살았던 시대에 전쟁이 있어서 이런 표현을 하게 것일 수 있어요.’ 같은 것이 될 수 있겠죠. 사람들이 한번 읽어도 조금 더 깊이 있고 다양한 요소들을 가져갈 수 있도록 작가의 표현과 역사적, 인문학적 배경 등을 이야기하면서 진행이 돼요."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데 함께하는 사람들과 피드백이 많이 오갈 것 같아요. 의견 충돌이 있을 땐 어떻게 푸세요?

"의견 충돌이라는 표현은 안 하는 편이에요. 충돌한다는 건 평행선이 아니어야만 일어나잖아요. 그러면 서로 다른 곳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고 있는 거죠. 왜 이 사람이 이 각도였는지 물어보는 편인 것 같아요. 현실적인 문제에서 제가 디자이너로서 이야기를 하면, 프로덕트나 마케터의 입장에서 ‘그렇게 해버리면 단가가 높다’라는 식으로 각 역할에 따른 시각들을 분명히 하게 돼요. 결국 완벽하게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없는 거죠. 이런 현실적인 면에 부딪혔을 때 제가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 것 같아요. 한 가지는 지금은 타협하되 이대로 쭉 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바꾸자고 의견 제시를 하는 거고, 아니면 지금 당장 해소할 수 없는 것은 내 작업에서 풀어요. 오로지 내 머릿속에 있는, 제 시선 속에 있는 무언가를 만들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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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영감’은?

"브랜딩 작업을 위한 영감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생각할 때, 저는 관련된 정보나 자료는 안 보고 일부러 다른 것에서 찾으려고 해요. 뭔가 ‘동떨어진 건데 이렇게 이어지네.’하는 것들. 예를 들어 제가 일하고 있는 샴푸와 바디워시 브랜드의 경우, 제가 패키지를 만들었는데 일반 상자에 하는 것은 비싸서 고민이었어요. 충족해야 하는 조건이 첫 번째는 제품이 모두 한 곳에 있어야 하고, 두 번째는 사람들이 제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고 어디에 뭘 넣어야 하는 건지 캐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저는 식판과 건담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미국에서부터 지금까지 자취를 하다 보니까 집에서도 식판을 쓰고 있었고, 건담을 좋아해서 건담을 가지고 있었어요. 패키지 종류가 너무 많아서 뭐가 새롭겠냐고 하겠지만 그래도 새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영감은 일상적이고 가까운 곳에서 얻고 있어요."


2박 3일간 여행을 떠난다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고 싶어요?

"멀리 가기보다는 동네에서 안 가던 곳을 갈 것 같아요. 여기서 근 1년을 살았는데 근처는 잘 안 가게 되더라고요. 작은 가게들을 가보고 싶어요. 이 집에서 나갔다가 그냥 돌아와서 일상을 탈피하는 정도면 만족할 것 같아요."


앞으로 작업이 어떤 모습으로 발전하기를 바라요?

"개인작업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이고, 나의 삶이나 생각들을 토해내는 방식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너무 좋아하는 것은 직업으로 삼기 싫다는 말 있잖아요. 창작에 대한 스트레스만 있으면 그래도 행복할 수 있겠지만, 직업이 되고, 인정받고 싶다고 생각하면 좋지 않을 것 같아요. 아주 나중에 개인적으로 한 작업들로 전시회를 연다 거나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대외적으로는 디자이너이고 싶어요. 타쿠 사토라는 디자이너분이 ‘디자이너가 자기 디자인에 만족했을 때 그의 디자인 생활은 끝이다.’라고 한 말을 좋아해요. 만족하지 못하고 ‘왜 이렇지’ 하는 그런 순간들이 좋은데 그래도 마지막에는 내 작업에 만족하고 죽었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만족할 수 있는 어떤 작업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아직까지 만족스럽다고 느낀 건 하나도 없었어요."



김영언 작가의 작업 소개 _ @young_rorroro


피부피부 브랜드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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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군 자체가 원하는 효능의 앰플을 골라 섞어 사용한다는 색다른 샴푸 바디워시인 만큼 브랜딩이나 패키징에서도 독특함과 새로움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기존에 플라스틱으로 사용하던 공정을 사탕수수 종이로 진행해서 신선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디자인한 패키지 에요. 패키지와 달리 생각보다 칼라풀한 색감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로 잡았어요.



계란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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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다채로운 계란 프라이의 모양들이 우리 한 명 한 명의 일상 같아서 그 자유분방한 모습을 아름답게 담고 싶었어요. 아직 진행 중인 작업이라 또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풀어갈지 저도 모른답니다! 하지만 그게 이 작업의 근본적인 주제이기도 해요 :)



데미안 키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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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는 독서모임에서는 책 한 권을 읽으면 작은 선물을 드리는데 첫 번째 책이었던 데미안을 위한 겹겹이 쌓인 ‘알’을 모티브로 한 키링을 간단히 만들어 봤어요. 책을 함께한 모든 분들이 그분들의 ‘알’을 깨는 과정이 조금 덜 힘들고 아프길 바라는 부적처럼요.



그레디언트 러브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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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처 진행하고 있는 그레디언트 러브 시리즈입니다. 아직 공개된 작업물은 적지만 올해 막바지엔 작게 오프라인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에요! 저는 어떤 감정이든 동시에 여러 색을 띤다고 생각하거든요. 주제마다 제가 가진 감정의 색들을 적어 내려가며 비주얼로 표현하는 시리즈 작업물입니다.


DOOON’UT 컨셉 브랜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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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된(웃음) 브랜딩 시안 중 하나입니다. 말 그대로 시안이라 컨셉이나 느낌을 보여주는 무드 비주얼 작업입니다. 이 도넛 브랜딩은 유니콘이 가져온 도넛이라는 브랜드 컨셉이 있었는데 세 가지 차원의 문(?)을 통해 왔다는 거창하고 귀여운 이야기가 있었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컨셉이었어서 개인작업으로 좀 더 보완해보고 싶은 작업입니다.


+

개인작업을 할 때엔 아무도 모를 디테일한 부분들까지 의미를 부여하는걸 매우 즐기는 편입니다. 마치 백과사전 크기의 판타지 소설의 세계관을 짜는 듯이 말이죠. 자기만족에 가까운 작업이지만 이런 디테일함을 알아주시거나 물어봐 주시는 분들 덕분에 바쁜 와중에도 개인작업은 쉴 수가 없어요. 창작의 즐거움은 사실 이런 가장 작은 부분에서 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비주얼적인 면에서 보면 개인작업에선 한을 풀듯이 색을 많이 쓰는 편인데 내가 쓰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할 거야!라는 욕망이 분출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웃음) 하지만 그런 과함 속에서 빛나는 화려한 아름다움 같은 게 분명 있을 테니까요. 제 일상처럼 정신없지만 따뜻한 작업을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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