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야간시위> 도토리묵
2017년10월11일
오늘은 어제보단 훨씬 날이 차갑다. 소성리가 어둑어둑해지자 엄니들은 드럼통 난로가에 모여앉으셨다. 윤성아찌가 밤과 고구미를 난로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뒤집으면서 구워주셨다. 야식으로 구운 밤과 고구미 하나씩 집어들고 먹으니 배가 두툼해진다. 한 1킬로그램 빼서 소성리 오면 2킬로그램 쪄서 간다는 윤성아찌의 배가 두둑해보인다.
이장님과 부녀회장님. 재영아저씨 그리고 철주선배는 서울로 ‘홍근수 평화통일상’ 수상하러 가셔서 아직 안 오셨다. 첫 시상이라서 꽤나 뜻깊은 상인 듯 하다. 거기다 상금도 꽤나 되는 모양이다. 상을 탄다니 일단은 축하하고 볼 일이다. 기분좋은 날에 축하메세지가 끊이지 않는다.
사과농사를 짓는 태환언니는 지금이 눈코뜰새 없이 바쁠 철이라고 하는데, 어제오늘 도토리꿀밤을 실컷 주워서는 상순언니와 도토리묵을 만든다고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경임엄니 집 마당에 커다란 대야랑 거름망이 있어서 그 집 마당에서 일을 도모하는 모양이다. 도토리가 한창 떨어질 철이라서 요 근래 할매들은 도토리 주워다 파는 모양이다. 금연엄니도 어제는 도토리 한말을 주워다가 참새방앗간에 내주었다고 한다. 도토리 한말을 주우려면 하루종일 걸렸을텐데, 돈 4만원 받고 냈다고 한다. 할매들 입장에서 공짜돈이라고 이야기한다. 내 땅에서 난 것이 아닐 뿐이지, 도토리 한말 줍기 위해 들어간 발품이 있는데 어찌 공짜란 말인지 시골사람들의 셈법이 수상하다.
조금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경임엄니 집 마당을 들러보았다. 태환언니와 상순언니가 빨간다라이 4개를 꺼내놓고, 열심히 치대고 있다. 도토리꿀밤을 방앗간에 맡겨서 가루를 만들었다. 도토리가루를 거름망에 넣어서 빨간다라이에 물을 붓고 치대면 그 안에 도토리가루 물이 나오는가보다. 열심히 치대서 물을 쭉쭉 뺀 다음 찌꺼기는 버린다. 도토리 치댄 물은 황토물처럼 살짝 걸쭉한 느낌이지만, 거름망으로 두 번에 걸쳐서 부어서 찌꺼기를 걸러낸다. 보드라운 도토리물만 걸러내서 ㅇ이틀 정도 가만히 두면 도토리묵같은 허물허물하고 끈적끈적한 물질만 가장 밑으로 가라앉는다고 한다. 그러면위의 물은 부어 버리고, 걸쭉한 물질만 팔팔 끓여서 묵이 된다고 한다. 원리는 이해되나 설명은 어렵다. 도토리 만드는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소희씨 내가 지금 바빠 죽을 지경인데 이러고 있다. 내가 왜 도토리묵 만드는 줄아나? 내가 노래자랑 3등했자나.. 상 탔으니까 한턱 내야 할거 아니가?” 태환언니가 큰소리로 웃으면서 도토리묵을 만드는 사연을 이야기해준다. “근데 있자나 사람들한테 소문내지 마래이, 잘 만들어지면 낼 거고, 못 만들면 못 낸다. 금요일날 노래연습할 때까지 한번 보고” 하니까 옆에 일을 거들고 있던 상순언니는 한술 더 떠서 “소희씨 금요일날 사람들 많이 오라고 해라. 도토리묵 먹으러 오라고 소문내” 하니까 태환언니는 팔짝 뛰면서 “모양 안 나오면 안 낼거다. 소문내면 안돼” 그 상 탄게 일을 벌이게 만들었다니, 남는 장사는 아닌 듯 해보였지만, “다 이렇게 이유대고 나눠먹고 그러면서 정내는 거 아니가? 이런 재미로 사는거지” 하면서 힘들고 궂은일을 마다않고 하신다.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들이 손 쉬운 게 없다. 라면? 컵라면? 뭐 그런 건 쉬울까?
도토리묵 한 접시 먹는 건 후딱인데, 도토리묵 한 판 만들려고 하면 보통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전통방식으로 곱고 부드럽게 잘 만들어 볼 거라고 몇 번을 걸러내는 작업을 해대는 걸 보니 도토리묵에 젓가락이 갈 수 있을까?
내일 도토리꿀밤 주우러 간다고 한다. 하필 약속이 있는데, 좀더 소성리엄니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겉도는 거 말고 뼛속깊이까지 들어가서 글을 쓸 수 있는 소재를 찾아내고, 써내고,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천이 되지 않는건 뭔가 내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자꾸만 쫓기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엄니도 도토리묵을 손수 만들어 주셨다. 밥상위에 올라온 도토리묵을 먹을 때마다 엄마는 늘 습관처럼 하시는 말씀이 “시장에서 사는 도토리묵은 옳은 거 아니다. 진짜 도토리는 얼마 안들어가고 순전히 밀가루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 가만히 생각해보니 엄마가 도토리묵을 만드는 걸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엄마가 김장을 하고, 된장을 담고, 집안에 크고작은 살림살이를 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껏 엄마가 하는 일을 거든 적이 없었나보다. 엄마는 사먹는 음식을 혐오에 가까울 만큼 싫어했다. 사먹는 걸 아주 죄악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많은 식구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하루 세끼를 다 집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억척같은 분이었으니 말이다.
돈으로 환산되지 않아 그 가치를 매기지 못할 뿐, 가사노동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그 댓가를 어떻게 지불할 수 있을까? 아마, 공장의 잔업특근 다 계산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량으로 계산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현대사회의 가사노동은 상당히 문명의 혜택을 많이 받기도 하지만,, 과학발전의 혜택은 반드시 만인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기에
그러나 여전히 과학의 발전과 무관하게 가사노동에는 인간의 잔손이 많이 필요하고 요구된다. 그 노동이 여성에게만 전가되고, 여성의 노동으로 평가절하되는 방식이 아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