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하기 딱 좋은 나이에 우리가 사드는 뽑아야제!!

소성리엄니열전

by 시야

<소성리엄니열전>

@장진영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이에 우리가 사드는 뽑아야제!!

글쓰기모임 <다정> 초희

그 날, 사드배치가 완료되던 날,

사드 4기 추가배치를 발표했던 뜨거운 한여름 더위에도 소성리 마을주민들은 살얼음을 걷는 심정으로 숨죽이며 보냈다.

정부는 발표 이후에도 한 달이상 시간을 끌었다. 언제 사드가 들어올지 몰라 애간장을 태우던 날들도 가을의 문턱으로 접어들었다.

9월6일 수요일은 여느 때처럼 오후 2시에 ‘사드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소성리 수요집회가 열렸다. 언론사 기자들이 하나 둘, 카메라와 노트북, 날밤을 샐 준비를 한 배낭을 메고 소성리로 모여들었다. 수요집회가 끝났지만,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소성리마을 도로로 나간 사람들은 도로길에 세워놓은 차량 사이사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사드가 들어가기 하루전날에 통보하겠다는 정부는 언론사기자들에게 사드추가배치가 있을거란 정보를 흘렸고, embargo(엠바고)를 걸었다. 오후 5시가 되어서야 통보를 해왔다. “설마설마”했던 상황이 터진거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할 뿐 백해무익한 사드는 필요없다고 주장해왔던 소성리주민들과 전국의 연대자들은 사드가 지나갈 소성리 길목 도로를 막아서기 시작했다. 멀리서 사람들은 달려오고 있었다.

이미 경찰병력은 8000명이 넘게 마을로 들어섰다. 소성리로 들어오는 모든 길을 다 차단시키기 시작했다.

9월6일 오후부터 사드가 배치 완료 된 9월7일 오전까지 스무시간 동안의 사드를 막기 위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결국 사드배치를 저지하려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자신의 국가경찰들에 의해 고착당하고, 감금당하면서 사드장비가 들어가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다. 불가항력이었다. 엄청난 국가공권력은 소성리 마을을 폐허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소성리전투가 끝났다. 싸움이 소강상태를 맞이할 때였다. 임순분 소성리부녀회장이 마을회관 앞을 나가는데, 경찰버스가 줄을 지어 올라오는 것이었다. 사드가 다 들어간 마당에 왠 경찰버스가 저렇게 줄을 지어 올라오는가 깜짝 놀란 임회장은 경찰버스 세대를 올려 보낸 후에야 두 팔을 쩍 벌려 경찰버스를 세웠다. 소성리엄니들은 한 숨도 자지 못한 채, 눈물샘이 터져 밤새 울었더니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다. 푸석한 몸짓으로 마을 앞 도로로 모두 뛰쳐나왔다.

소성리에서 초전방향으로 끝도 없이 줄을 서 있는 경찰버스를 내려다본 금연엄니, 수덕엄니, 그리고 경순엄니는 분이 풀리지 않아서 부서진 천막과 버려진 옷가지며, 신발을 바닥에 내리치면서 울분을 토하셨다. “사드장비 다 들어갔는데 와 경찰들은 자꾸 들어오고 난리고? 이제 너거들 꼴도 보기싫다. 다 떠나라. 소성리앞에 경찰들 얼씬도 하지마라. 너거들 경찰 소성리 땅 절대로 못 밟게 만들거다” 며 버스 앞을 막아섰다. 스물세대의 경찰버스는 되돌아가고 말았다.

“사드장비 들어갔다고 너거 마음대로 사드 운영할 수 있을지 아나? 이 길목으로 미군 놈 한 마리도 못 지나다닐기다. 경찰 너거 우리 이렇게 짓밟고 이 길로 지날 다닐 수 있을 줄 아나? 경찰놈들 소성리 도로에는 얼씬도 못하게 할기다” 경찰들의 군홧발에 짓밟혀 파괴된 천막들과 우리의 자존심을 도로 한가운데 쌓아두고, 도로에는 다시 미군통행과 경찰통행을 검문하는 테이블을 설치했다. “우리 이대로 절대로 못 물러난다.”


사드뽑고 평화심자.

몸도 마음도 지쳤다. 수덕엄니는 ‘사드4기 추가배치’ 정부 발표가 있었던 7월말부터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쉬었다. 초점 없는 눈은 먼 산만 바라보며 “이제 살 낙이 없다. 사드 들어오면 다 끝나는거 아니가? 내가 무슨 낙으로 살겠노?” 낙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사드가 배치되는 그 순간까지 낙담한 수덕엄니는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밥상에 앉지 않으셨다. “밥은 먹어서 뭐하노, 이제 살 낙도 없는데”

수덕엄니의 마음이 다른 엄니들의 마음이기도 할 텐데 사드가 다 들어온 이후 엄니들의 낙담이 얼마나 클지? 미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스물! 꽃다운 나이에 소성리로 시집와서 길게는 육십년 짧게는 사십년을 이곳에서 나락농사 지으며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자식들 다 키워놓았다. 이제 남은 여생은 평생을 살았던 소성리에서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 소원일 법도 한데, 사드가 들어오다니!

사드가 들어온 다음날, 약초언니는 몸도 마음도 지쳤을 소성리주민들을 위해 보양식을 준비했다. 논에서 잘 자란 자연산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이고, 약초를 두둑히 넣어 끓인 물에 돼지고기를 삶았다. 큰 일 치루면 마음이 더 많이 허해지는 법이라면서.

사드를 반대하면 싸워왔던 사람들이 쓸쓸하고 외로워지지 않도록 소성리로 발길을 옮겼다.

소성리마을회관 앞 마당에 모여든 사람들은 삼삼오오 상을 펼쳐 차려놓은 음식을 나눴다. 좋은 음식에 빠질 수 없는 좋은 술 ‘배주’를 준비한 주민이 여기저기 술을 나눠 음복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소성리마을회관 앞에는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리만큼이나 사람냄새나는 소리가 마당을 가득 메웠다.

백해무익 사드를 막기 위해서 스무시간 동안 사투를 벌였던 “동지”들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소회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사드가 들어가지 못하게 할려고 도로에 할매들과 다같이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데, 경찰들이 여자건, 남자건, 한명 한명 끌어내는데,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무서워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어요. 몸이 아프거나, 늙은 할매들은 먼저 일어나시라고 주변에서 얘기해도 나는, 여기 사드 들어가면 안되니까 꼭 지키고 있어야지 했어요. 옆 사람이 제게 어머니 일나서 나가셔요 하고 자꾸 말리는거야. 나는 싫다고 고개를 흔들었어요. 왜? 나는 우리마을 지켜야 하니까. 끝까지 내가 먼저 일어나 나가는 일은 없어야지. 그때 내 앞에 사람이 막 끌려나가는거야. 내 차례가 점점 다가오는데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 여기저기서 여자들 비명소리가 들리고 내 앞에 원불교 교무님 옷이 다 찢겨지는데도 경찰들은 무지막지하게 사람을 끌어내고, 나도 저렇게 끌려나가겠구나 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더 속상한 건. 내가 무섭고 두렵지만, 그 자리 지키겠다고 하는데도 내 옆에 사람이 자꾸만 어머니 다쳐요. 일나서 나가세요. 하면서 자꾸 나를 유혹하는데 난 그게 정말 섭섭했어요. 내 의지를 약하게 만들어서 싫었어요. 나는 내 힘으로 사드를 막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걸 못 막아서 이렇게 다 보내 버렸으니 이일을 어짼데요”

태환엄니(60세)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펑펑 울어도 속이 풀릴거 같아보이지 않았다. 소성리엄니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소리 없는 울음이 여기저기서. 속에 쌓인 말을 쏟아내면 한 많은 분이 다 풀릴까? 사드가 들어갔다는 좌절과 절망이 너무 커, 그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우리마음 속에 실망만 가득하지 않았다.

사드를 막아내기 위해 벌였던 스무시간의 사투, 비록 사드를 막지 못했다는 결론을 뒤집을 수 없다고 해도, 소성리엄니들은 잘 알고 있었다. 아주 대단한 시간이었고, 싸움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모두가 지쳐 돌아간 후에도 소성리엄니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소성리를 통과하는 길목에는 경찰도, 미군도, 사드를 운영하기 위한 그 무엇도 지나갈 수 없다고 선포하셨던 것이리라. 이제 사드를 뽑아내기 위해 투쟁을 해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소성리할매들과 노래를

매일 밤마다 약속이나 한 듯이 모였다. 소성리도로 검문대 테이블이 놓여있는 자리에 목욕의자를 둘러놓고 앉았다. 된장공장에 다니는 광순엄니와 조자엄니는 밤8시면 나와서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소성리 아랫마을에 사는 옥술엄니와 경임엄니, 상돌엄니, 상순언니는 십분 이상은 걸어야 할 거리를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신다.

소성리할매들의 야간시위는 매일 이어진다. 처음엔 군것질거리로 입맛을 다셨다. 마주보며 이바구를 나누었다. 경찰이나 미군이 들어가는 것도 감시한다. 사드운영을 위한 장비가 들어가는 것도 막는다. 무엇보다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함께 하는 시간동안 노래를 불렀다. 그러던 어느날 소성리엄니들은 민들레합창단이 되었다.

진석씨가 어깨에 맨 기타로 반주를 한다. 은학씨는 엄니들이 가사를 잘 볼 수 있도록 커다란 종이에 매직으로 큰글씨를 적어주었다. 효남씨는 건반을 쳐주었다. 합창단의 구색이 잘 갖춰졌다. 이제 소성리엄니들이 노랫말을 외우고, 노래만 잘 부르면 될 거 같았다.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이의 소성리 엄니들은 “내나이가 어때서”를 개사해서 불렀다.

“노래 가사 프린터 해주면 집에 가서 외워오면 돼, 글씨 아무리 크게 써도 눈이 침침해서 잘 안보여. 할마이들 뒤돌아서면 까묵는다.” 경임엄니가 컬컬한 목소리로 숙제를 내주신다.

엄니들은 노래가사를 종이에 적어서 꼬깃꼬깃 접어들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금연엄니는 “노래 잘하는 할마이들은 큰소리로 노래하고, 우리맨크롬 못하는 할마이들은 붕어맨크롬 뻐끔뻐끔 입모양만 내도 안되나?” 해서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다.

“내 손뼉은 열심히 쳐줄게”하는 엄니들도 있지만, 처음 모기소리보다 작았던 노랫소리는 점점 커져만 간다.


소성리할매들과 춤을

노래만 부르면 ‘싱숭생숭’ 재미없다며 “내나이가 어때서” 개사곡에 맞춘 율동을 배우기로 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평사단)>이 도움을 주기로 했다. 입으로는 노래를 부르고 몸은 흔들어대자고 말이다.

매주 화요일마다 몸으로 흔들어대는 소성리 야간시위를 한다.

소성리엄니들은 율동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처음 배우는 사람도 우물쭈물 가르치는 사람도 우물쭈물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인 사람들 모두 “야~야~ 내나이가 어때서~ 촛불에~ 나이가 있나~요. 마음은 하나~요. 느낌도 하나~요 평화만이 정말 내 소원인~데~ 눈물이 나네요. 미국사드 온다~니 농사짓기 딱 좋은 나인 ~데, 어느 날 우~연히 티비속에 비춰진 시발사드~ 바라보면서~ 사드야 비켜라~ 소성주민 나가신다. 투쟁하기 딱 좋은 나인데”

어슬픈 시범을 보이면서 한바탕 난리북새통이다.

상돌엄니는 “내사 팔다리가 성한 데가 없어서 일나서 춤 못춰여, 내는 고마 박수나 열심히 칠께”하시지만 옥술엄니와 경임엄니는 꼭 일어나셔서 흥을 돋우신다. 태환엄니도 동작하나 하나 꼼꼼하게 챙겨보면서 따라한다. 발바닥이 아파서 오래 못 서 있는 상순언니도 할매들 틈에 끼어서 춤을 배우느라 용쓴다.

매주 화요일 밤에는 소성리할매들과 춤을 추면서, 이제 노래만 나오면 두 팔을 벌려서 손뼉을 치고, 위아래로 흔들어대는 준비동작은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하나를 완성하기도 전에 “바위처럼”을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무대 위에 올라서 마음껏 뜀뛰기하며 추는 춤을 할매들과 추다니. 다행히 앉아서 동작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배우기 시작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노래에 맞춰 동작을 익혔다.

소성리엄니들이 과연 율동배우기를 좋아하실까? 궁금해지는 날도 있었다. 율동을 가르쳐주는 평사단이 자신없어하기도 했다. “절대로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하기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 할 사람들이지, 그 말을 못 해서 하기 싫은 거 억지로 하는 사람 아니에요. 그래도 밤마다 도롯가에 앉아서 이바구만 하다가 요즈음 노래도 배우고, 춤도 배우고 하니까 할매들도 활기가 넘쳐서 좋아라 해요. 몸이 늙어서 잘 못 따라해서 그렇지 하기 싫은 건 절대로 아니야. 저기 태환씨 같은 사람은 요 춤 배우는 게 재미있어서 사과농사로 바쁜데도 밤에는 일부러 나오는 사람도 있자나”

임회장님은 오히려 평사단이 더 열심히 가르쳐달라고 부탁한다. 일주일에 한번 하는 율동이라서 볼 때마다 기억이 가물거린다. 늘 처음처럼 시작한다. 그렇게 한곡 두곡 완벽하게 익히게 되면 무대에 올라 공연도 해보자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 그렇게 소성리의 할매들과 춤을 추는 야간시위는 계속된다.


우리가 가는 길이 평화다.

“내 참, 그 놈에 사드 땜에 일년이 넘도록 촛불들러 다녔는데, 이놈의 인간들이 할매들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고 원망을 안 하나? 저 사드는 언제 나갈지도 알 수가 없고, 우리가 우리 좋자고 촛불 들었나? 저 사드가 우리마을에 들어올라하는데 그럼 촛불도 안 들고, 동네 앞에 저 커다란 미군들 차가 쌩쌩 달릴 판에 우리가 두 눈 뜨고 그걸 보고 앉았나? 우리 때문에 월명으로 차들이 많이 지나다닌다고 불편타고, 어여.. 우리 할마이들 탓하는거 있제?”

금연할매 속에 천불이 난다. 경찰차도 미군차량도 공사차량도 못 들어가게 검문하는 것이 마을주민들의 통행에 불편을 준다며 일부 사람들의 불평이 들려왔다. 소성리로 넘나들지 못하는 차량들이 평화계곡 방향인 김천 월명쪽으로 통행량이 늘어나면서 불평불만의 목소리도 들려오기 때문이다. 나이 많은 소성리의 할매들이 길을 막고 마을을 지키고 있을 때, 곁을 지켜주지 않았던 이들이다. 사드가 들어갔으니 이제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성리엄니들의 생각은 달랐다. “어여. 우리가 여기 딱 버티고 섰으니까 지들이 이리로 못 다니는거제, 우리 할마이들이 다 집에 들어앉아있으면 이 소성리마을 앞으로 코큰 미군놈이나, 미군부대 공사한다고 온갖 장비들 다 끌고 들어갈낀데, 쌩쌩 달리는 꼴을 가만 놔두나?”

금연엄니 마음에 사드가 저렇게 알박기 하는 것을 두 눈 뜨고 볼 수가 없다. 소성리엄니들의 마음이 그렇다. 사드가 들어오는 날 살 낙이 사라졌다던 수덕엄니가 기운을 차리고 매일 소성리마을회관으로 다시 나오시는 것도 사드를 두고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루는 소성리엄니들끼리 모여서 의논을 했다. “우짤랍니까? 포기할랍니까? 포기할라면 빨리 포기해뿌고, 사드 뽑을 때까지 싸울 거 같으면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힘을 합치고, 양단간에 결정을 내립시다. 아직은 사드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소성리를 지켜줄려는 평화지킴이들이 우리곁에 있자나요. 저 사람들 다 떠나불면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 될건데, 지금 못 하겠으면 못한다고 합시다” 하고 임회장님이 소성리 부녀회의를 부쳤다.

“지금까지 해온 고생은 우짜고, 여기서 포기를 하노? 우리가 있을 때 사드를 보내지, 우리가고 안 나오면 누가 사드를 보내노. 어여.. 이왕 한 거 힘을 더 내보자.” 규란엄니의 바람은 그랬다. 수덕엄니가 “그래, 좀 더 해보자. 내가 시간 날 때마다 마을회관에 와서 부엌일 거두꾸마.” 하며 낙담했던 마음을 조금 더 추스려보겠다고 한다. “10월 넘어가면 참외밭 장만해야 해서 시간내기 어려워요. 그 전까지 회관 부엌은 내가 맡아서 할께요. 내 바쁠 때 일 시킬라 하지마소” 제일 나이어린 부녀회원 상순엄니가 불쑥 자신의 결의를 밝혔다. 그 날 이후로 상순엄니는 매일 마을회관으로 나와 소성리의 평화지킴이들을 위해서 밥을 지었다. 그리고 상순엄니가 못 나올 때는 다른 엄니가, 또 다른 엄니가 밥을 지었다. 소성리엄니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마을 앞 도로를 지킨다. 미군이 소성리마을 앞을 지나갈까봐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공사차량이 들어오다 엄니들에게 딱 걸리면 되돌아 가야했다. 경찰들은 얼씬도 못하게 해야 했다. 소성리엄니들의 저항이 저들을 눈치보게 만들었나보다.

박힌 사드를 뽑아내고 평화를 심는 날이 언제쯤이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사드를 뽑는 긴 여정을 떠날 채비를 한 소성리엄니들이 평화를 찾아 떠나는 길목에 서 계신다.



사진출처: 장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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