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야간시위>
2017년10월15일
“우리는 유성기 틀어놓고 노래 배웠어. 주디 툭 튀어나온 거 맨치롬, 나발 달려가지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있제? 그게 한 마을에 한 집정도 가지고 있었거든, 그 집 가서 노래 듣고 따라 부르면서 배웠지. 그때는 한창 젊을때니까 머리가 좋자나. 한 번 들으면 안 까묵을려고 입에서 오물오물 따라했지” 김천촛불 421일째 되는 날이다. 소성리한가위 노래자랑에서 대상받은 은방울자매 엄니들이 김천역으로 향한다. 오늘 김천촛불 무대공연을 하기 위해서다. 엄니들은 차에 타는 순간부터 1절만 부르자고 의논했다가, “유정천리”는 다 아니까, 2절까지 다 부르고 앵콜 나오면 “꿈꾸는 백마강”을 1절만 부르자고 의논한다. 두 사람이 함께 불러야 하는데 가사가 서로 안 맞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가사를 잘못 알고 있는 이유가 바로 젊은 시절에 유성기로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다 보니까, 잘못된 가사를 지금껏 기억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엄니 나름의 분석은 옳게 느껴진다. 특히나 유성기를 가지고 있는 집이면 조금 살만한 집일텐데, 엄니들이 마음편히, 마음껏, 듣고 따라 부르고 했을까? 그러다 문득 젊은시절 엄니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흥이 내면에 가득 찬 엄니들도 말괄량이 삐삐같은 사춘기소녀시절이 있었을테니까.
“우리 어릴 때 벽진에 큰 창고에 가설극장 만들어놓고는 사람들 오라고 광고를 막 하거든, 그러면 그거 보고 싶어서 몰래 영화관에 가면 ‘여가’ 남자들이 문 앞을 지키고 섰어. ‘여가’ 처자들이 오면 야단쳐서 델꼬 갈라고, 아무리 얼굴 가리고, 뒤집어쓰고 해도 다 알아보고 영화관 입구에서 붙잡혀서 집으로 끌려와. 그러면 집안 어른들한테 야단을 뭣같이 맞는다니까.. 그렇게 야단을 맞아도 영화만 튼다카면 그놈이 보고잡아서 못 살아.” 벽진 진기 출신인 여상돌엄니는 대가면까지 걸어서 영화보러 갔던 처자시절이 있었다. 여씨 집안의 오빠, 동생 눈을 피해, 영화를 보기 위해서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벽진 수촌에서 왔다고 택호를 수촌댁이라 불리는 경임엄니도 그랬다. “그때는 어른들이 어린처자들 마실 나가는 걸 무조건 못하라고 하거든, 해만 지면 대문을 걸어잠가. 영화는 한다고 떠들어대는데, 집에서는 일체 못 나가게 하지, 애가 닳아. 어떡하노. 조용할 때 담벼락이라도 넘어서 영화보러 갔지. 그때 ‘며느리 설움’을 보고 온 처자들이 눈물이 막 난다고 하니까, 궁금해서라도 보고와야지 우짜노. 그때는 차가있나, 뭐가 있노. 다 걸어서 다녔어. 우리 합천 해인사도 걸어갔다가 걸어왔었는데”
가설극장을 만들어 영화 틀어준다고 하면, 그걸 보고싶어서 먼길도 마다하지 않고, 영화보러 다녔다는 엄니들, 그 때 나이가 열일곱이나 여덞. 꽃다운 나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짢지도 않지. 그래도 그거 볼려고 용을 얼마나 썼는지 몰라”
“엄니 결혼하고는 영화보러 마음대로 갔어요?” 나는 문득 궁금했다. “결혼하고는 한번도 못봤지. 볼일이 없지.” 엄니들의 대답은 정말 단순명료했다. 처자때 월담은 시집가서도 월담으로 이어지지 못했나보다. 어느새 김천역에 도착했다.
김천촛불 사회자가 소성리엄니들 노래공연할거라고 엄청 띄워주셨다. 사람들의 박수소리는 우렁찼다. 소성리 은방울자매는 경임엄니와 옥술엄니 두분이다. 상돌엄니가 함께 하면 좋겠는데, 그럴 생각이 없나보다. 김천촛불들이 너무 과하게 환영해주시니, 엄니들 마음에도 부담이 팍 오나보다. “젊은사람들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하는데, 우리 때문에 분위기 깨는거 아니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시 노래순서를 정했다. 상돌엄니는 가만히 앉았어도 걱정이 되는지, 나더러 같이 나가라고 하신다. 금연엄니한테도 노래부를 때 뒤에서 춤춰주라고 했나보다. 정작 당신은 나설 생각이 없으신 듯 한데, 노래를 부르는 당사자보다 더 긴장하고 계신다. 상돌엄니는 이왕에 나가는거 잘해야 한다고 열을 내신다.
김천촛불 무대에 올라갈 시간이 되었다. 반주 없이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소성리 은방울자매로 소개된 경임엄니와 옥술엄니 두분은 마이크를 잡고 “하나 둘 셋” 액션신호에 맞춰서 노래를 시작했다. “엄니 노래 부르실 때 마이크를 입에 바짝 대고 불러야 해요. 안 그러면 엄니 노랫소리가 뒤에는 하나도 안 들려요. 마이크만 잘 잡고 해도 괜찮을거에요” 신신당부를 했더니, 정말 마이크를 입에 바짝 붙여서 노래를 부른다. 음향도 좋아서 김천역광장을 쩌렁쩌렁 울린다. 음색도 좋으시고, 실제로 노래도 잘 하신다. 그런데 무엇보다 팔순을 바라보는 할매들의 용기가 대단하다. 무대위에서 노래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텐데.
몸안에 흥과 가락이 흐르는 분들이라서 가능한가보다. “내, 내 꼭 볼일 아니면 성주촛불 다 다녔어. 소성리에 올라가는 것도 애지간해서는 안빠져” 하는 경임엄니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노래를 부를 때는 음정박자가 거의 정확하다고 지난번 노래교실할 때 칭찬도 들었다.
대단한 할매들, 무대공연은 성공리에 마쳤다. 김천촛불의 노래자랑 대상자분의 답가도 들을 수 있었다. 이치료중인 분이 마다하지도 않고 소성리엄니들을 위해서 답가를 불러주신다. 고맙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무대 위에서 활개치는 조무래기들, 동네 꼬마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천진난만한 얼굴들을 보니 사람사는 거 같다. 매일 연마한 실력을 맘껏 뽐내는 젊은새댁이들. 점점 세련된 율동들. 김천촛불이 충만하게 느껴진다.
오늘도 해냈다는 뿌듯한 마음을 듬뿍안고 김천촛불을 떠나왔다. 엄니들의 표정은 만족스러 보였다. 상돌엄니가 “오늘은 소성리 때보다 더 잘했다”면서 칭찬을 해주신다.
소성리로 돌아오는 길에 상순언니는 “제주 강정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한다. 참외밭장만 때문에 바빠질 건데, 농사 들어가기 전에 강정을 한번 다녀왔으면 하는 바램을 내비치는 상순언니가, 드뎌 연대의 진한 맛을 알기 시작한 모양이다. 정말 엄니들과 시간 맞춰서 ‘제주강정 해군기지 반대투쟁’의 역사를 새기고, 제주강정투쟁을 되돌려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