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소성리”를 보고온 날
2017년10월29일
영화“소성리”의 첫 장면은 깜깜한 소성리의 밤하늘을 영롱하게 빛나는 별들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내가 늘 사진에 담고 싶었던 소야의 밤하늘, 소야의 달과 별들, 그러나 핸드폰 카메라는 번지고 깨져서 아름다운 소야의 밤하늘을 담을 수 없었다. 나의 소망을 영화 “소성리”에서 만났다. 영화“ 소성리”는 평화로운 풀벌레 소리와 바람과 햇볕이, 사람들의 노동과 땀방울이 적당히 잘 어우러져보였다. 카메라는 소소한 일상의 노동과 쉼, 더딘 시간을 내딛어온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다닌다.
그 모습마저도 내게 영화는 깊은 슬픔이었고, 깊은 절망에 눈물샘을 자극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한숨을 참을 수 없었다.
영화를 본 날. 꿈을 꾸지 않았다. 그냥 나도 모르게 새벽녘 눈이 뜨였다. 눈물이 샘솟았다. 물을 가득 머금은 계곡의 물줄기가 뿜어져 내려오듯이. 내 가슴은 심한 통증을 느껴 쓰리고 아팠다.
“성주촛불에서 사회자가 성산포대도 막았는데, 소성리로 들어오는 사드 못 막겠냐고 할 때마다 속에 분통이 터져요. 성산포대 막았을 때 왜 3부지 넘기는 건 못 막아서 우리 소성리주민들 애간장을 태워요. 그런 말 듣기 싫어요. 성주읍 사람들 섭섭해할까봐, 불만이 있어도 입밖에 내지도 못했어요. 사람들 눈치살피면서, 사람들이 떨어져 나갈까봐 노심초사하면서 성주촛불 왔어요. 그런데 이게 뭐예요. 결국은 사드가 들어오게 생겼으니.. 성주촛불에서는 노래부르고 웃고 떠들고 있는데, 소성리 주민들은 홀로 불도 못 켜고 숨죽이고 울고 있는데, 이럴 수는 없지요. 다 원망스러워요. " 롯데가 버텨내지 못하고 부지를 국방부로 공여하기로 이사회결정이 발표되던 날 밤에 임순분부녀회장님이 피를 토하듯이 내게 퍼부었던 말들.
성주의 성산포대로 들어온다던 사드가 제3부지로 넘겨졌던 날에 나는 왜 소성리로 달려가지 않았을까?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에서 우두커니 앉아서 넋 놓고 있었을 할매들. 제3부지가 왜 소성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할매들이 부녀회장이 오기만 목놓아 기다렸을테다.
롯데가 골프장을 사드부지로 국방부에 공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면서 한겨울의 한파에도 매일 촛불을 밝혔다. 낯선 도시 서울의 명동거리 롯데호텔에서 피켓팅을 해야했다. 롯데야!! 조금 더 버텨라!를 외치면서.
몇 번의 롯데이사회가 불발되었을 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롯데는 끝내 골프장을 국방부에 내어주고 말았다. 국방부는 롯데가 이사회를 열고 있는 그 시각에 부지공여가 결정되었다고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그 날도, 성주촛불은 ‘끝까지 웃으면서 함께 싸우자’고 노래를 불렀다. 춤을 추었다. 그 순간도 소성리엄니들은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이, 아무 표정도 없이 제일 앞자리에 말없이 묵묵히 앉아있었다. 시커멓게 다 타버린 속을 꺼내서 보여줄 수 없었을테다.
그녀들의 울분이 쌓여가는 날들. 그녀들의 통곡소리는 고요했다. 매일같이 살얼음을 밟는 심정. 정부로부터 고통당했지만, 동지라 믿었던 이들의 배신과 아픔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을 시간들. 소성리를 둘러싼 대기의 이상한 기후에도 그녀들은 그냥 그렇게 자리를 지켰다. 속이 문드러지는 거처럼 아파도, 사드가 언제 들어올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면서 말이다.
어느 날 불현 듯이 찾아온 영화‘소성리’는 크리스마스 날에 아무 기대할 것도 없지만 걸어두었던 양말속의 기적 같은 선물이었다.
아름다운 들판 소야가 담긴 영화다.
소야의 들판에서 단 한순간도 한가로운 적 없었을 엄니들의 흙묻은 발과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과 등허리를 여실없이 보여준 영상, 그것조차도 평화로운 일상은 아름답게 화면에 비춰졌다.
영화를 보기 위해 부산국제영화제로 떠나기 전날에 임순분부녀회장님은 빠마를 했다. 금연엄니는 연분홍 곱디고운 옷을 입고 나타나셨다. 배우다운 면모를 한껏 뽐내시듯 카메라만 비추면 손가락 하트를 그려주신다. 요양병원으로 떠났던 조실댁엄니는 다시 마을로 돌아오셨다.
지금은 추수철로 농사일이 바빠서 마을회관으로 모이지 않는 할매들은 길가에 보행기를 세워두고 앉았다. 지나가는 차를 구경하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길바닥에 깔려 볕에 말리는 나락을 지켜보고, 따뜻한 가을볕을 쬐면서,
마을회관엔 노옥 할매가 홀로 텔레비전을 켜놓고 누워계신다. 경순엄니가 밥솥에 밥이 한 가득 있는데도 쌀을 씻어 앉힌다. 들깨 털고 씻어 말린다고 마을회관을 들러보지 못하는 규란엄니 마음이 부디낀다. 추수철 때를 놓치면 헛일이 되고 말 농사일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두 팔을 걷어부치고 일하기 바쁘다.
그러나 제자리로 돌아온 것은 없다. 일상의 평화는 일년농사로 얻는 수확물, 그리고 우리는 사드뽑으러 간다.
영화‘소성리’ 는 내게 아픈 영화다. 나는 그 말을 하고 싶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