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야간시위_너구리소동

by 시야

<소성리야간시위>

2017년10월24일

사람좋아 보이는 수 아재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마지막 발걸음은 꼭 소성리로 옮긴다. 단짝친구 찬 아재를 차에 태워서 꼭 델꼬말이다. 참외 밭장만이 한창일때라도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도 큰 사람들이다. 오늘은 수와 찬 아재의 소성리경계근무 당번조였지만, 큰 작업할 것이 있어서 당번을 대신 서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나는 살짜그니 대신 당번을 서주겠다고 약속했다. 그게 많이 고마웠는지, 수 아재는 술이 취해서 금요일엔 나대신 경계근무를 서겠다면 큰소리를 친다.

하루라도 소성리소식 안 올라오면 궁금해서 참새가 방앗간을 드나들 듯 들러봐야 할 곳, 소성리야간시위에 빠지지 않는 주자 중의 한 사람이 수 아재다.

아침일찍 부랴부랴 달려온 소성리마을 경계근무, 성주주민대책위는 소성리마을 입구를 담당하고 나머지 연대단위는 진밭재 길목을 담당해서 아침 출근시간 집중해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소성리마을입구에서는 공사차량을 비롯해서 경찰들까지 일체 못 지나다니게 한다.

지난 수개월동안 열심히 막아서인지 소성리로 지나다니는 차량은 현저하게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길인 월명리의 좁은 길로 차량통행량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월명리는 처음부터 주민들의 미온적인 태도로 길목차단이 쉽지 않았다. 지금은 몇몇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시지만, 그에 따른 행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시니 어쩔 도리가 없다. 소성리는 마을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미군통행뿐 아니라 공사차량이나 경찰들까지도 소성리앞으로 지나다니지 못하게 하겠다는 엄니들의 불호령이 떨어진 마당이니 어찌 감히 거역할 수 있으랴..

아직 소성리 싸움이 끝날 수 없는 이유다. 오늘도 진밭재로 자재실은 트럭이 들어가려는 되돌려보냈다. 군인들은 왜 자꾸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시누크헬기로 죄다 실어나르더만 오늘은 왜 갑자기 용다리를 가지고 와서는 실랑이를 벌이게 하는거냔 말이다. 우리가 지상으로는 아무것도 보내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

시골은 지금 수확철이라 한창 바쁘다. 일년농사의 결실을 다 맺을 때이니 말이다. 도로가는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지만, 마을 안쪽 밭두렁이면 논두렁에는 곡식을 수확하기 바쁘다.

경순엄니 논에 콤바인이 나락을 추수한다고 갓자리부터 나락을 잘라대기 시작한다. 운전자가 앞에서 콤바인을 움직이고 있을 때 뒤자리에 한 사람이 자루에 볕알을 담은 포대자루를 정리하고 있다.

봉정할배가 나를 보더니 작대기 하나 던져주신다. 콤바인의 시끄러운 엔진소리에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다. 콤바인이 작업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봉정할배의 말은 나락 사이에 너구리 한 마리가 들어앉았단다. 그 놈이 튀어나오면 잡아야 하니까 내게 작대기를 주면서 두들겨 패란 뜻이다. 콤바인이 저렇게 위협적으로 나락을 잘라대고 있는데 너구리가 어떻게 저 안에 있단 말인지 이해가 안되었다. 심겨있는 나락의 범위가 좁혀질수록 나락의 끝이 움찔움찔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들어앉아있구나 하는 느낌.

정말 시커멓고 엉덩이가 퉁실하게 생긴놈이 불쑥 튀어나왔다. 가까이있던 할배 한분이 작대기를 길게 내리치니까 너구리 엉덩이를 때렸다. 봉정할배가 쏜살같이 뛰어오셨지만 작대기가 짧았다. 너구리도 어안이 벙벙한 듯 보였다. 나락 사이에 숨어서 콤바인의 천둥소리에 얼마나 공포에 떨고 있었을까? 간신히 할배들을 따돌리고 논을 빠져나가 산길로 도망가버렸다. 할배들은 무척이나 아쉬워하신다. 너구리 잡아서 뭐하시려냐고 물으니, 잡아먹을라고 했다는 말에 나는 그만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다. 너구리가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는건 알지만, 식용으로 쓰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할배들이 튼실한 저 너구리에 입맛을 다신 것이었다.

한바탕 너구리 소동이 끝나고 나서도, 잡아먹힐 뻔한 운명의 늪에서 빠져나간 너구리를 축복하는 이야기는 한창 이어졌다. 그리고 소성리할배들은 여전히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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