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야간시위>
2017년10월23일
나락추수가 한창이다. 가을볕이 뜨거운 날이다. 거친 바람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볕 잘 드는 자리만 나면 추수한 벼를 말리겠다는 농부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시골길 한 켠에 늘어놓은 곡식들을 보니 내 마음이 풍요롭다.
어제는 분명 황금빛이 일렁이는 논이었거늘. 오늘은 벌거숭이가 되어버렸네.
약초언니는 저온창고에 보관해놓은 약초카스테라를 나눔한다는 것을 깜빡 잊어버렸다며 연락이 왔다. 나눠 먹어야 하는데 못 나눠 먹어서 아쉬운 마음이 큰 듯 하다.
소성리에 간식으로 갖다주라는 바구니를 받아들었다. 나눔의 기쁨이 크나 약초언니네 살림도 걱정스럽다.
나오는 길에 캔디네 들러서 나누고, 원불교 삼동연수원에 들러 나눴다. 몇 개씩이라도 골고루 나눠먹을 수 있으면 기쁨이리라. 먼 거리는 못가도 가는 길목에는 행운이 따르길
소성리 마을길에 접어드니 볕을 쬐고 있는 상할매들이 보인다. 마을회관까지 걸어갈려니 다리가 아파서 그만 집 앞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신다. 언능 내려서 상할매들께 약초카스테라를 나눠드렸다.
소성리 마을회관 앞으로 가니 남정네들은 월동준비 한다고 다들 힘 좀 쓴다. 전기톱으로 굵은 나무둥치를 잘라댄다. 오늘 하루종일 장작을 한가득 만들어놓았다. 기특하고 훌륭한 장작연대일세. 길목보초서는 연대자들도 보인다. 눈에 띄는 대로 빵을 나눴더니 금새 없어졌다.
마을회관에는 할매들이 안보인다. 들깨 털러 일이 바쁜 할매들이 잘 안 나오시나보다. 상할매가 있는 곳으로 나가보았다. 조실댁 김의선엄니, 남실댁엄니, 그리고 최고 왕할매 세분이 길가에 보행보조기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신다. 조실댁엄니는 마을회관까지 보행기를 밀고 살살 걸어가다가 사람이 없다는 말에 되돌아오셨다. 다리가 시원찮으니 조금 걷는 것도 힘이 든다. 그래도 운동은 해야 한다는 걸 아시니까 마당이라도 계속 빙글빙글 걷는다. 팔순여섯이나 되셨으니 적은 나이는 아니다. 얼마 전 아들네가 유럽여행가는 데, 엄니 혼자 두는 것이 마음 불편해서 요양병원에 모셨다가 나오셨다. 아들네는 홀로 거동 불편하시니 요양병원 계시면 좋겠다고 했단다. 엄니 입장에선 수술하는 것도 아닌데 병원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마을회관에 오고 싶고, 마을이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서 빨리 돌아오고 싶었을거다. 그 병원에서 사드 들어가는 거 보고 혼자서 엄청 울었다고 하신다. 내가 조금이라도 보태야 하는데 하는 마음에
가만히 생각해보면 빨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은데,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고, 죽을라고 하면 사는 것보다 더 용을 써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다고 하시는 조실댁엄니. 맘대로 말을 들어먹지 않는 육신을 보살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조금은 무료해 보이고, 고달파보이기도 하다. 그래도 사는 데까지는 사셔야지. 주무시듯 편안하게 가시면 얼마나 좋을까
소성리에 들어서면 엄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 소성리 엄니열전으로 쓰여지지 못해도 좋다. 긴 인생길에 사연이 왜 없을까? 아들 먼저 떠나보낸 어미의 속이 어찌 편하기만 했을까? 참 한 많고 사연 많은 인생인데 그걸 어찌 말로 다하겠냐고
예전에는 말도 잘하고, 농도 잘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는데 점점 말은 어눌해지고 말이 잘 안 나온다고, 자신이 답답해서 다른이들과 말하는게 싫어지신다고 하신다.
조실댁엄니는 두통이 심해서 약을 잡숩고 싶다고 한다. 나는 마을회관으로 가서 타이레놀을 찾아왔다. 약을 드시라 드렸더니 조실댁엄니는 나더러 달력 앞에 걸린 감을 가져가라 하신다. 물물교환이 이뤄진 것 같다. 조실댁엄니가 나같은 덩치가 큰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