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철씨가 이종희위원장의 팔짱을 끼고 나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이 멀리서 보인다. 현철씨는 덩치가 아주 큰 남자였고, 이종희위원장님의 두배는 넘어보였다. 영문도 모른채 잡혀오던 이종희위원장을 중간에 황동환신부님이 가로채갔다. 그 때 현철씨의 표정은 생선을 잃은 고양이의 마음이었을까? 두 번째 시도가 이뤄졌다. 이종희위원장을 체포해서 내가 서 있는 평화장터 탁자까지 당도하자 이젠 원불교사람들이 이종희위원장을 가로챌 듯 했으나, 우리 평화장터도 손님을 뺏길 리가 없으니 만만치 않게 집중해서 장사를 했다.
덩치에 비해 순진무구하게 느릿느릿 말하는 현철씨 “나 다음주 월요일에 아사히비정규직지회에 밥통이 온다고 해서 이거 하나 선물로 갖다주고 싶어요. 위원장님 이거 하나 사줘” 하는 거다. 이종희위원장은 “나는 또 뭐라고, 진작에 말을 하지, 이거 얼마고?” 하신다. 체포당해 오시면서 뭔지는 몰라도 자신의 크기 두배나 되는 젊은 장정이 끌고 오니 끌려왔을테지만, 속으로는 이자슥이 와카노? 싶었을거 같다.
현철씨는 화담선생님의 필체로 쓴 평화현수막을 한 장 집어들었다. 이종희위원장님은 호주머니에서 5만원짜리 지폐를 끄집어냈다. 옆에 섰던 부녀회장님과 연주언니가 단번에 나무목걸이를 들이댔다. 딱 5만원어치다. “위원장부인 목에 하나 떡 걸어주면 부부금술 더없이 좋아질겁니다” 위원장님은 목걸이를 받아 주머니에 넣으시면서 “내가 집에들어갈때까지 안 자고 깨어있으면 받을기고 자고 있으면 물건너가는기다”
이종희위원장님 팔짱을 끼고 체포해오는 현철씨의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소성리토요촛불은 8시에서 삼십분은 당겼다. 오늘부터 밤 7시 30분 시작이다.
여섯시가 되니 해는 기울고 어둑어둑해져버렸다. 천주교천막농성장이 완전 쓰레기더미가 되어버린 후에 신부님이 컨테이너로 재정비하신다고 모금을 했다. 어느 날 대형컨테이너 하나가 들어왔다. 마을로 보면 아주 명당자리인데, 마침 컨테이너에 양 사방으로 창을 만들어놓았다. 넓은 컨테이너에 창으로 시야를 탁 트여놓았다. 나락이 익는 모습을 한눈으로 지켜볼 수 있도록. 마을에서 이렇게 좋은 자리를 내놓으셨으니 천주교는 복받으신 듯 하다.
오늘 5시30분에 <사드저지 천주교 종합상황실> 축복식 및 집들이를 했다.
평화장터에서 오늘 출시하는 화담선생님의 ‘평화’현수막 두 장을 마수도 하기전에 천주교 종합상황실 집들이선물로 드렸다. 좋은 일에 쓰일 현수막이라서 꼭 마수가 돈을 받고 판매해야 하는 것은 아닐거라고 마음을 안정시키면서.
오늘도 토요촛불의 사회는 송아저씨. 소성리평화모임에서 운영하는 평화장터가 그간 장사를 해서 남긴 수익금 100만원을 투쟁기금으로 전달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도, 평화장터 광고한다고만 생각하신 모양이다. 두 번째 투쟁기금을 전달했다. 8월말부터 시작한 평화장터에서 남긴 수익금이다. 첫 번째는 성주주민대책위 출범할 때, 그리고 오늘 두 번째다. 장수사진 인화와 액자 비용도 평화장터가 부담하기로 했다. 약초언니의 헌신적인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소성리에 올때마다 펼쳐놓은 평화장터 보면서 부담을 느꼈을 연대자들이 흔쾌히 물품을 구입해서 도움을 주셨다. 제발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말아주십사 부탁드립니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구입하셨으면 좋겠다. 이러면 장사말아먹을까?
우리가 투쟁기금을 모은다는 명목으로 불필요한 과소비를 충동질해서는 안될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물건은 정말 좋은 것들이다. 시중에 어디서 만나보기 어려운 귀한 물건인 것은 확실하다. 이번에 화담선생님까지 한 몫 해주셔서 평화장터에 기가 빵빵한 느낌이다.
그리고 내가 왜 이렇게 들떠 있냐면?
영화 “소성리”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와이드앵글부문 ‘비프메세나’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박배일감독의 수상소감의 첫마디가 “지금도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투쟁하고 있는 할머니들께 이 상을 바친다”고 했단다.
부녀회장님은 부산으로 영화보러 가기 전에 머리를 빠마하셨다. 오늘도 머리는 촉촉하게 꼽슬꼽슬 배우다움을 유지하시는 듯 보였다. 금연엄니는 또 다른 감독 동글씨에게 캐스팅 되어 유행어 “데모하러 가자”를 낳으셨다.
영화를 보고 온 다음날 난로가에 앉은 엄니들은 한참 재미나게 웃고 있었다. 택호가 연산댁인 백광순엄니가 갑자기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사람 뒷담화를 했다고 뿔난 듯 말씀하시니, 규란엄니는 조금 당황하신 듯 하셨고, 금연엄니는 잘 나오던 사람이 안 나온께 걱정이 돼서 그렇지라고 변명하셨다. 다행히 사람 이름만 나와서, 부녀회장님이 “관심이 있응께 이야기를 하지, 미운사람이면 취급도 안했다”면서 광순엄니가 얼마나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인지 다시한번 일깨워주시는 듯, 영화보다가 울다가 버럭거리다가 싸울 뻔 했다가 한바탕 크게 웃었다.
영화‘소성리’를 보고와서 한번씩 생각에 잠길때면 눈물이 난다. 영화가 너무 아름다운건지 소야가 너무 아름다운건지 구분이 안간다. 우리엄니들이 연기를 잘 하는 건지, 감독이 영화를 잘 찍은건지,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이렇게 아름다운 들판 소야에 사드가 왠 말인가?
그러나 분명한건 영화‘소성리’ 가 우리에게 아주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당분간 사드뽑고 평화심을 우리의 투쟁에 큰 활력소가 되어줄 거 같아서 기쁘다.
『나는 왜 너가 아니가 나인가』 중
아메리카 인디언은 무엇보다도 겸손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다. 특히 영적인 자만심은 인디언의 성격이나 가르침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인디언은 자신의 말솜씨가 뛰어나다고 해서 얼굴 흰 사람들처럼 상대방을 어리석은 야만인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위험한 재능으로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