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야간시위
2017년11월15일
오늘은 소성리 수요집회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내일 기온이 뚝 떨어진단다. 오늘 태환언니네 과수원의 사과를 다 따야 해서 도와달란다. 밭일은 이것저것 해본 경험자이나, 과수나무는 한 번도 손댄 적이 없는 초보자라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급하다고 하니 일단 서둘러 과수원으로 달려갔다. 오전내내 사과따고 상자 옮기다가, 사과꼭다리 따다가,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수요집회에 평화장터 준비해야 한다고 핑계대고 토꼈다. 휴우.. 핑계거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규란엄니로부터 받은 검은들깨를 방앗간에 맡겨서 기름을 짰다. 들기름 한병에 11,000원 평화장터에 내기로 했다. 수익금의 전액은 농가 소득으로 드릴거다. 사람들은 나보고 장사를 못한다고 말들이 많다. 장사는 이문을 남겨먹는 것만이 아니다. 이문을 누구한테 돌려주느냐도 중요하다. 농가의 소득만 잘 챙겨주면, 데모하러 왔다가 물건까지 사야 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줄이면서 안전하고 좋은 먹거리까지 챙겨주게 되니 일석이조이지 않은가?
평화장터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든 것에 이문을 남겨 구매자들에게 비용을 전가시킨다고 하면 구매자들의 피로도도 높아져서 구매의욕이 떨어질 것이 뻔하지 않는가? 너무 궤변인가?
어차피 평화장터는 인건비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남으면 투쟁기금으로 사용할거고,, 아니면 말고,,.. 누이좋고 매부좋은 구조이면 되지. 이건 내생각. 난,,뭐.. 하다가 좋은 방법을 찾으면 되고
시간보다 삼십분 일찍 평화장터 점빵을 열었다. 소성리 마을회관 앞마당은 휑했다. 사람은 없고, 강생이 세 마리만 목줄이 묶여서 얌전하게 앉아있었다. 오늘따라 아롱이도 의욕없이 축쳐져서 들누워있고, 그 옆에 털이 복슬한 강생이 두 마리는 (처음보는) 기죽어서 눈치만 흘깃흘깃 살피고 있다. 얌전하게 마루위로 올라간 것을 봉정할배가 매로 야단치니까 마루 구석에 푹 쳐박힌다. 엄마가 사라져서 불안했던 모양이다.
바람이 불어 낙엽은 쓸어도 표가 나지 않는다. 시간은 다되어가는데 사람은 모일 생각을 하지 않아서 마음만 조급해진다. 두시가 가까워지자 어디에 숨었다 나왔는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재미동포청년활동가들이 달마산 등산을 하고 내려왔다. 김천의 율동맘, 율동천사들이 오셨다. 어느새 소성리마당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들기름, 수육약초, 약초차, 약초소금과 나무목걸이, 가장 하이라이트가 될 평화현수막이 나열되어있는 평화장터는 재미동포청년들의 눈길을 끌었다. 통역을 도맡은 청년이 설명을 듣더니 들기름을 무지 좋아한다고 내게 말한다. 다른 친구들에게 평화장터를 설명해주었다. 영어로 말하는 청년들은 평화현수막을 기념품처럼 가지고 싶어한다. 소성리에서 생산한 농산물에 관심을 가진다.
한 청년이 평화현수막 가격을 영어로 묻길래 어찌 알아듣고, 한 장에 2만원이라고 한국말로 손가락 앞세워 전했다. 내게 현수막 7장을 주문한다. 포장을 하는데, 그 청년은 천원짜리를 헤아리는거다. 헐.. 이를 어쩔, 뭔가 잘못 알아들은 듯 하다. 효나미 언니가 어찌어찌 하니 그제서야 “쏘리”하면서 급 오만원짜리가 나왔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평화장터는 공항의 면세점 같은 분위기였다. 청년들은 평화현수막을 많이 구입했다. 나는 청년들에게 수육약초 나 약초소금을 덤으로 끼워주기를 아끼지 않았다. 마구 퍼주었다. 아주 만족스러워한다. 부모님이 한국분이라서 수육을 잘 알거다. 들기름 향을 맡으면서 고향생각을 하게 될거다. 어린 청년들이 비록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한국의 문화를 많이 이해하고 있는 듯 보였다. 진정 소성리마을의 아픔을 공감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매우 진지하게 평화현수막을 공유한다.
오늘 공항 면세점 같은 평화장터,, 대박조짐이 보인다. 소성리평화장터 드뎌 세계로 나아가는 것인가? 금연엄니 말씀마따나,, 사드만 보내면 돼.
평화현수막을 아낌없이 혼신을 기울여 글씨 써주신 화담선생님의 존재가 매우 크게 느껴진다. 화담선생님은 무한 신뢰를 내게 보내주셨다. 아니 소성리 사드철회에 헌신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무한신뢰인거다. 언제 어느 때든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달라고 하신다. 당신은 손글씨로 사드반대 투쟁을 하겠다고하신다. 글씨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사드반대의 강렬한 의지인 게지.
세계의 젊은 청년들이 반전평화운동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 keep는 훌륭하게 성장할거다. 씩씩한 기운을 모아서 우리는 오키나와에서 열리는 세계평화대회에서 다시 만나길 희망한다.
마이크를 잡고 소성리 이야기를 할 때면 자꾸 울먹거리게 된다. 나도 모르게 그날의 일들이 트라우마처럼 기억된다. 가슴아파서 말을 이을 수가 없다. 이것도 병이다. 그래서 될수록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잡고 발언하고 싶지 않다. 오늘 아사히비정규지회 투쟁문화제에서 발언을 했다.
내가 하고싶었던 말은 사드는 북핵을 견제할 수 없는 백해무익에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만천하가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지배자들간의 굳건한 연대로 사드는 결국 9월7일 배치완료 되었다. 경찰병력 8000명을 동원하여 4-500명이 스무시간동안을 꼬박 저항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실망과 낙담이 커서 삶의 낙을 잃을 뻔 했던 아찔한 날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소성리의 스무시간 전투는 연대의 위대한 힘을 보여줬던 시간들이기도 했다. 만약 마을주민들만 있었더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결박되어있었을 시간동안, 전국의 연대를 통해서 처절하게 저항할 수 있었다. 아주 소중한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싸움을 패배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선언할 수 있었다. 이 싸움은 사드를 뽑고 평화를 심을때까지 지속되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추스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집 앞에 더럽고 위험한 물건이 있다면 치우려고 하는 것이 님비현상이라고 비난 받을지언정, 당연한 것이다. 소성리주민들 입장에선 사드는 더럽고 위험한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 물건을 치우기 위해서 싸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소성리주민들은 늙었고, 소수이다. 이들이 아무리 다부지게 싸운다고 하더라도 저 거대한 제국의 병사를 이겨낼 재간은 없을 것이다. 승리할거라 장담할 수 없을거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저 거대한 제국의 병사들을 이길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본다. 사드문제를 접하면서, 노동자가 왜 계급으로 성장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노동자가 계급적인 관점을 견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사드를 뽑을 수 있는 세력이,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세력이 노동자계급일 수밖에 없겠구나. 계급적으로 단결하고, 투쟁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늘 상상한다.
군사무기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현장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생명의 위협에 저항하며, 전쟁으로 인해 삶이 파괴되는 것을 반대하고, 안전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투쟁할 때,
그럴 정도의 노동자 의식으로 성장해가야 할텐데, 아직 한국사회의 노동자계급은 즉자적인 형태로도 드러나지 않는 듯 하여 매우 절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길이 있다면 포기할 것도 아니다.
공장의 담벼락을 넘자고 했던 노동자들이 한반도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투쟁에 앞장서는 날을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