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야간시위>
2017년 11월21일
한의사는 도금연엄니와 임순분부녀회장님을 한 눈에 알아보셨다. 소성리에서 고생이 많다면서 소성리 사정을 관심있게 잘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소성리를 많이 걱정하는 양심적인 지식인임을 자부했다. 금연엄니는 걱정 한가득 보따리를 풀어내면서 “내일 공사차량이 들어온다고 안 하요. 우리는 사람 하나가 아숩소. 내일 의사샘도 소성리로 오면 좋겠는데.” 하자 한의사는 조금 당황하셨을거다. “글치요. 저도 마음은 굴뚝 같습니다만, 한의원 문을 닫고 달려가야 하는데” 하며 말끝을 흐리자 금연엄니는 한술 더 떠서 “한의원 문 닫고 빙원식구들 다 델꼬 오소. 우리는 한사람이 아쉬워 죽겄소. 내일 그 공사차량 막아야 하는데” 한의사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금연엄니를 진맥하고, 입을 “아~~~”하고 벌려보라고 했다.
금연엄니의 맥을 짚고 입안을 살펴보더니 한의사는 감기가 아니라 오랫동안 피로가 누적되어서 푹 쉬질 못해서 입안과 기관지가 건조해져서 기침을 하게 되었다고 설명하며 “할매, 욕을 많이 하면 자꾸 입이 마릅니다. 욕하고, 소리지르는 걸 안하셔야 하는데, 키도 작고 몸도 작은 할매가 힘이 없으니까 욕이라도 해야지 상대가 겁을 먹지 안그러면 어찌 싸우겠습니까. 그래도 가급적이면 욕한다고 소리지르지 말고 말씀도 조금 안하시도록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안 그러면 자꾸 입안이 말라서 할매 기침이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임회장과 나는 배꼽이 빠질세라 배를 잡고 숨죽이면서 웃었다.
임회장은 왼쪽 팔이 점점 저려와 잠을 이룰 수 없을지경에 이르러 치료를 받았다. 침과 뜸을 하고 찜질하면서 꾸준히 치료하면 호전 될 거라고 했다. 가장 좋은 치료는 팔을 안 쓰거지만, 현실가능하지 않아서 생략하기로 했다.
소성리 올라가는 길에 참새방앗간에 들러서 고추를 빻았다. 장사장님은 품삯을 안 받을라고 한다. 오히려 힘들게 만든 감말랭이를 우리 세 사람에게 한봉다리씩 나눠주신다.
내일 공사차량은 어떻게 막아야 할지 걱정을 태산같이 하면서 참새방앗간 장사장님이 태워준 커피 한잔 얻어마셨다. 한참을 앉았다.
마을에 초상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엄니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새벽4시에 눈을 떴다. 방문을 열고 차가운 신발을 신었다. 허리를 펴고 일어나보니, 깜깜한 밤하늘의 별들이 초롱초롱 은하수를 이룰 듯이 빛났다. 해맑은 별빛에 감탄이 절로 났다. 소성리의 별들이 너무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눈안에 가득 담았다.
소성리마당에는 난로를 피웠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컨테이너마다 연대온 사람들이 잠들어있었다. 마을회관에는 엄니들이 모여서 주무셨나보다. 엄니들은 컵라면 하나씩 잡숩고, 금연엄니는 어제 탄 한약 한봉을 잡수신다.
사람들은 진밭으로 올라갔다.
진밭에는 밤사이 컨테이너가 사드부지로 올라가는 길목을 막고 서있다. 앞뒤로 난로불을 피워서 추위를 녹여주었다. 평화계곡 가는 방향은 차로 길목을 막았다. 경찰들이 평화계곡방향에서 걸어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길이 막히자 냇가를 건너고 수풀길을 헤쳐서 들어올 모양이다. 한참을 헤매더니 길을 찾은 듯 보였다. 임회장님이 밭으로 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아무생각 없이 멍했다.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아 나도 따라 올라갔다.
하필 경찰들이 찾은 길이 임회장님 남편산소와 감나무밭으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임회장이 밭을 밟지말라고 항의하자, 여자 혼자라는 것을 안 경찰지휘관이 “밀어 밀어” 하면서 임회장을 밀어제쳤다. 방패로 이마를 밀어부딪히게 만들었다. 임회장이 넘어져 핫팩을 떨어뜨렸는데, 경찰들은 군화발로 핫팩을 밟으면서 지나가버렸다. 나는 뒤늦게 도착해서 그 장면을 직접 보지 못해 사진촬영이나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도로로 내려오는 데 항의하는 임회장과 내게도 경찰은 “밀어부치고 내려와”라고 지시하자, 경찰놈들은 임회장과 나를 비켜가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밀어버리면서 내려갔다.
산소와 감나무 밭에 야생동물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 쳐놓은 철조망은 다 찌그러져버렸고, 경찰들이 짓밟은 밭에는 군화발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사드운영 미군기지를 건설공사를 막기 위한 우리 대오는 진밭교에 있었다. 진밭교 위로 경찰이 에워쌌다. 마을에서 올라온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위아래로 새까만 경찰들에 둘러싸여 고립되었다. 난로의 불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때론 굳건했지만, 때론 공포가 짓눌렀다.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그리고 경찰들의 폭력에 저항하며 싸워야 했다. 우리는 제일 먼저 끌려나왔다.
금연엄니 손에 돌삐하나 쥐어져있었다. 사람들은 엄니를 안고 설득해 돌을 놓게 만들었지만, 금연엄니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진밭교 위로 차량과 차량 사이에 사람사슬도, 차량 밑에 드러누운 사람도, 컨테이너 위의 종교인들도, 먼저 나온 우리들은 어찌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마지막까지 결사항전하고 있을 그들에게 어떤 보탬이 될 수가 없이 수많은 경찰들에게 억류당해있었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공사차량이 줄을 서 있는 것을 본 임회장이 차밑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경찰들의 제지로 끌려나와 감금당해있었다. 금연엄니랑 몇몇의 여성들이었다. 나도 그들과 한참을 공사차량 앞에서 기다렸다. 상황이 종료될 시점이었을까 한참 후에 공사차량은 이동할 차비를 하였다. 우리를 에워싼 경찰병력이 점점 더 늘어났다. 공사차량이 이동할 때 빠져나가려 바둥거려 보았자 소용이 없었다. 우리 안에 짐승의 비명소리만 들릴 뿐 이었다.
공사차량은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간다. 임회장과 나는 미친 듯이 몸으로 부딪히면서 뚫고 나가려고 했다. 통곡을 통곡을 했다.
금연엄니는 “놔둬라. 용쓰지 마라. 저 땅이 어떤 땅인지 아나? 저 땅에서 골프장 짓다가 호수에 빠져죽고, 낭떠러지에 떨어져죽고, 병들어죽고, 저 땅에 공사자재 실어나른 놈들도 저 땅의 기운 받아서 어느 놈 하나는 뒈질거니까 걱정하지마라. 저거 들고 들어가면 한놈 한놈 다 뒈진다.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저 공사차량 운전기사놈들 다 뒈질거니까 용쓰지 말고 울지마라. ” 하면서 공사차량 한 대 올라갈 때마다 “한 놈 뒈진다. 또 한놈 뒤진다. 저 놈도 저 땅까지 올라갔다가 뒈진다.”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저 땅이 어떤 땅인데, 저 땅이 아주 용한 땅인데, 저 땅을 함부러 밟았다가 목숨 부지하기가 어렵다. ”
공사차량이 다 올라가서야 고착은 풀렸다. 우리가 진밭에 다시 올랐을 때, 우리사람들은 여전히 경찰들에 꽁꽁 에워싸여있었다.
언론에서 경찰이 3000명 들어왔다고 한다. 다른 언론사는 5000명이라고 한다. 우리 사드반대 세력은 100에서 150명이라고 한다.
경찰200명이 1명을 에워싸고 있었던 것이다. 미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서 자국의 경찰이 자국민을 200대 1로 폭행했다. 폭력,, 누가 폭력을 행사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