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O 한 이야기(2)

by 시야

SO-SO한 이야기(2)

일요일은 소성리엄니들이랑 김천촛불 가는 날이다. 매일 밤마다 사드배치철회를 외치는 김천촛불이 오늘로 540일째다. 일주일에 한번은 꼭 참석하는 김천촛불, 갈 때마다 회차수가 쑥쑥 올라가있는 걸 보면 가슴이 철렁철렁한다. 벌써 저만큼 되었나 싶어서.

우리는 언제적부터 매주 일요일 김천촛불을 참석했나, 기억을 더듬어보았더니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날 김천촛불을 갔던 날, 소성리노래자랑에서 대상을 받은 은방울자매님과 이웃의 엄니들을 모시고 갔다 돌아오는 길에, 엄니들께 부탁했었다. “엄니들 다음주에 김천촛불가서 노래한번 부르입시더. 김천촛불도 할매들이 많이 나오셨는데, 젊은사람들 춤과 노래도 좋지만 비슷한 연령대가 불러주는 노래가 아무래도 안좋겠습니까? ” 하면서 엄니들을 꼬시기 시작했는데 너무 쉽게 엄니들이 넘어온거다. 엄니들은 대답 대신 ‘유정천리’를 차안에서 부르기 시작했고, 백마강을 부르셨다. 가사가 맞나 안맞나 의논하시면서,, 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때 엄니들이 소성리에 도착 할 때까지 노래를 부르셨다.

♬ 못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서 너무나 선명하게 맴돈다.

김천촛불에 가게 된 계기는 상순언니 때문이었다. 매일 저녁식사를 하면 소성리아랫마을 사는 상순언니와 옥술엄니, 그리고 상돌엄니와 경임엄니가 소성리 난로가로 올라오신다. 그날은 난로가로 올라오니까 지킴이들은 아무도 없고, 할매들도 아무도 없어 휑하더란다. 알고봤더니 소성리평화지킴이들과 몇몇 엄니들이 김천촛불을 간다고 일찌감치 길을 나섰나보다.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들 기다려주지도 않고 먼저 가버린게 섭섭했었던지, 상순언니는 “우리도 김천촛불 한번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내길래, 나는 흔쾌히 모시고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아랫동네엄니들과 우리끼리만 가자고 했었던 날이었다. 내 차에 아랫동네 엄니들 네 분을 모시고 김천촛불 다녀오는 길, 엄니들이 봐도 매일 촛불들고 “사드가고 평화오라”고 외치는 모습이 측은했을테고, 우리도 성주촛불 매일 쫓아다녔던 기억에 마음이 많이 쓰였을거다. 그러니 김천촛불에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 동했을거다. 엄니들은 별로 거부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또 한번 김천촛불을 찾게 되었다. 그 날 불렀던 은방울자매 경임엄니와 옥술엄니의 노래는 그렇게 빛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생애 최고의 날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옥술엄니에게 꽃같은 날이었을거 같다. 엄니들의 젊은 시절에 언감생시 연애라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았을 시절에 옥술엄니는 윗동네 총각이랑 연애를 해서 결혼을 했다. 그 당시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거다. 연애한 것이 괘씸했는지 시어머니 구박이 아주 대단했었다고들 한다. 정말 너무너무 모진 시어머니 구박에 평생을 고생만 했다던 옥술엄니가 손주들이 다 커서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시어머니 동생들이 하나같이 “아이고 이제 우리 질부 숨 좀 쉬고 살겠네” 할 정도였다. 이제 시집살이에서 해방되어 자신안에 가득한 끼를 맘껏 발산할 기회를 누리게 되었으니, 그날의 무대에 서기까지, 사드가 들어오고부터 매일같이 촛불을 밝히러 성주로 내려오던 날부터 소성리에서 밤이면 밤마다 야간시위하던 날들이 옥술엄니에게는 꽃같은 시절이었을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때가 추석명절을 넘기는 가을중턱이었다.

그 이후로 매주 일요일이면 김천촛불가는 길에 ‘공화춘’에 들러 맛있는 손짜장과 탕수육을 먹기도 하고, 김천의 연화천에 위치한 맛나는 칼국수와 만두집에 들러 민들레합창단 회식을 하기도 하면서 김천촛불로 엄니들을 모시고 다녔다.

다행스럽게 부녀회장님이 김천촛불을 다녀오는 길에 “내 배부르니까 다른 사람 배고픈거 못 본다더니 우리가 딱 그짝이었던 거 같다. 맨날 성주촛불 쫓아다닐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촛불을 매일하지도 않는데, 김천에 한번 갈 생각도 못하고 있었네, 매일 촛불집회한다고 얼마나 힘들까? 일주일에 한번은 할매들이랑 김천촛불에 참석합시다” 하면서 적극성을 보여주신거다. 그리고 나서 김천촛불에 갈 때 부녀회장님은 소성리마을회관의 묵은쌀로 부녀회장님이 방앗간 수공비를 내서 떡을 촛불간식으로 내주셨다. 부녀회장님이 선두에서 모범을 보여주시니 그 다음엔 약초언니가 그 비싼 고급 약초카스테라로 간식을 내어주셨다. 그렇게 김천촛불님들의 고단함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깃들어있었던 거다.

그러나 약속은 했지만, 사람들이 많이 갈지는 미지수였다. 얼마나 갈지 사실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도 매주 일요일은 김천촛불가는 날이 정례화되어가자, 차량을 지원하기 위해 나서주는 사람이 생겼고, 김천촛불에 노래나 춤공연을 하러 가는 사람이 생겼다. 민들레합창단도 김천촛불 500일 행사 때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 몇 주동안을 준비했고, 노래패 “소야”와 함께 합동 공연을 하면서 찬사를 많이 들었다. 그것이 또 한번 큰 계기가 되었나보다. 그 이후로 소성리엄니들은 보다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신다.

오늘도 저녁밥 먹자마자 난로가로 모여드는 엄니들,

벌써 540일을 달려온 사드배치 결사반대 김천촛불님들.

어느 날, 김천의 젊은엄마가 부녀회장님께 그랬다. “매일 촛불밝히러 가는 게 쉽지 않은데 특히나 토요일과 일요일은 가족모임이나 개인적이 약속도 많이 잡혀서 참석이 어려운데다 힘들었어요. 그런데 일요일마다 소성리할매들이 오셔서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요. 요즈음은 일요일이 기다려집니다. ” 그 말을 들은 부녀회장님은 다른엄니들께 이 말을 전달했고, 자신들이 오는 일요일이 기다려진다는 젊은 새댁의 말에 소성리엄니들은 “김천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힘이 난다는데 우리가 빠질 수 있나 더 열심히 가야지, 그 소리 듣고 어째 안가노?” 하면서 나오신다.

이제 소성리 뿐 아니라, 사드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픔이 우리엄니들 눈길에 발길에 턱턱 밟히나 보다. 나도 그 고통이 어떤건지 잘 알기에, 그 아픔에 동참해왔기에, 그들과 같은 운명공동체를 가지고 있기에, 김천촛불이 꺼지지 않는 한, 잘 지켜내기 위해서 혼신을 다해야겠다.

2018년2월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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