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O 한 이야기(4)

by 시야

SO-SO 한 이야기(4)

그 날 난 소야의 비트로 올라와 조용한 시간을 보냈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지. 마음을 비우는 연습이 필요했어. 그들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었어. 그들이 이성을 잃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송곳니를 보이며 침을 흘리는 모습은 충격적이었지. 내게 그/녀들은 여전히 소중한 이웃이었고, 고된 날들을 의지했던 동지들이었어. 잃고싶지 않았어. 마음을 달랬지. 나는 침묵하기로 했고, 나의 비트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냈던 거야.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날도 올거라 생각했어.

소야의 한여름은 더웠지만, 달마산이 내뿜는 공기는 시원했어. 어느새 어두컴컴해졌을 때 창문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땀에 젖은 내 등을 훑고 지나면서 시원하게 해주었어. 소성리의 엄니들이 야간시위를 할 시간이었어. 도로가에 놓여있는 플라스틱 목욕의자에 둘러앉았을 엄니들이 생각나서 그곳을 향해 갔어. 어두운 도로를 점령한 엄니들의 등이 보이고, 나는 조용히 제일 뒷자리에 앉았어. 그때 부녀회장님이 나를 바라보는 차가운시선을 느낀거야. 금연엄니는 “왔소” 하며 내게 평소와 같이 인사를 하셨지만, 아주 짧은 한마디에 애써 표정을 감추는 듯 보였고, 규란엄니는 내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눈을 마주치지 않으셨어. 내가 들어서자, 주민들은 말을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얼굴의 표정은 어색하고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어. 나는 엄니들의 등뒤 맨 뒷자리에 앉았지만, 엄니들의 표정을 엿볼 수 있었어.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었지. 그리고 누군가. 한 남자가 벌떡 일어서며 목욕의자를 발로 내동댕이 쳤어. 나 들으란 뜻이었을까? 욕을 퍼부었어. 정말 무슨일이 있었던거였어.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내 앞에 엄니께 무슨 일인지를 여쭈었어. 엄니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소성리후원통장을 지급정지시켰다는 말씀을 내게 해주셨어. 그 말이 떨어지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부녀회장님은 나보고 들으란 듯이 목청에 핏대를 세우면서 성주읍의 촛불을 원망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목소리에는 분노의 눈물이 이글거렸어. 소성리 사드침탈에 대비해서 투쟁하는 데 쓰라고 연대자들이 보내준 후원금 통장을 지급정지시킨 장본인 성주투쟁위 김충환씨의 소행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그 분들의 눈에 나는 성주투쟁위였고, 성주읍 사람이었고, 성주촛불이었으니. 소성리부녀회장님을 비롯해서 주민들과 연대자들은 내가 편할 리가 없었을테지. 내가 한통속이라 여겼을만도 하지. 내가 앉아있는게 얼마나 불편했을까?

그 차가운 시선들, 원망과 분노에 이글거리는 목소리들,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나도 충격을 받았어. 통장을 손대다니. 감히 통장을.

나도 그 순간 이성을 잃었어. 아침에 다짐했던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갔어. 내가 침묵해야 할 이유를 잃어버렸어. 잃고 싶지 않았던 내 이웃들과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 내 운명의 수레바퀴는 어디를 향해 가게 될지 나는 알지 못했지만, 통장을 손대는 건, 해선 안되는 행동만은 분명했어. 나는 그 날부터 고독해져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

부녀회장님은 내게 마음을 열지 않았어. 나도 다가가기 어려웠지. 그렇지만 소성리엄니들 곁에 있어야겠어. 차가운 시선은 따가웠지만, 소성리엄니들 곁에 그냥 가만히라도 있고 싶었어. 매일 밤, 나는 소성리로 올랐고, 내가 소성리로 오를 때, 소성리로 올라온 사람들이 생겼지. 매일 밤. 차가운 시선은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고, 나를 오해했던 마음은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어. 나도 분노하고 있음을 그분들은 느끼고 있었던거지.

그러다 며칠 후 부녀회장님은 내게 말씀하셨어.

“소희씨 도저히 그냥은 못 넘어가겠다. 전쟁터에 군사들 내보내놓고, 총알 다 뺏는격 아니냐? 우리보고 전쟁터 가서 죽으라고 버려둔 거 아니냐.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이 소성리 마을로 김충환이란 작자는 절대로 발도 못 붙이게 해야겠다. 여럿이 모여서 공유하는 핸폰에 그런거 있지. 거기다 내 말좀 올려주면 안되겠어요?” 마을회관에서 차를 마시다 내게 갑자기 물으셨고, 나는 부녀회장님 뜻에 따르겠다고 답했어. 나는 부녀회장님의 손가락이 되어드릴꺼라고 생각했어. 부녀회장님의 말씀을 그대로 옮겨 적어드리겠다고 말씀드렸지. 그리고 세상에 그 말씀을 알려드리겠다고 약속했지. 내가 좀 으쓱해지더라. 부녀회장님의 말씀을 나는 옮겨 적었어.

【김충환씨와 김충환씨를 추종하는 성주사람들은 소성리마을로 오지 마십시오.

소성리 부녀회장 임순분입니다.

지난 8월14일에 성주투쟁위 김충환씨가 소성리의 사드반대 투쟁을 위해 후원받은 통장을 지급금지 시켰습니다. 문정부가 사드 4기를 추가배치하겠다고 한 이후 소성리는 매일같이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초조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사드를 막기 위해 보내주신 투쟁기금입니다. 그 돈 있어서 살고 없어서 못 사는 거 아닙니다. 성주투쟁위의 형편이 어려워 달라고 하시면 보내드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투쟁하는 곳에 통장을 정지시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소성리주민들 숨통을 막는 일이고, 투쟁하지 말라고 핍박하는 짓입니다.

그리고 성주사람들이 소성리와 말로는 끝까지 한다고 하면서, 소성리 상황실 욕하고, 연대하러 온 단체들 뒷말하는 것 듣고싶지않습니다. 소성리할매들 위로하러 와서는 남 흉보고, 염탐하고, 성주읍으로 가서 소문만들고, 이런 일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싸울겁니다.

말로만 함께 하자, 사드반대 끝까지 하자는 이야기 듣고 싶지 않습니다. 소성리에서 매일 고생하면서 함께 하는 사람들 배척하고 욕하면서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사드반대 단체톡방에 글을 올리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내 맘속이 갈등하기 시작했어. 그들은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거라 여겼지. 그들은 소성리주민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보다 더 악랄하게 왜곡하고 비난할 게 뻔했어. 나는 욕먹는게 두렵지 않았어. 방법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러자 부녀회장님은 “대자보로 써서 마을회관 앞에 부쳐놓으면 되지” 하셨어. 다음날 정말 대자보가 떡하니 붙은거야. 성주촛불과 소성리는 분명하게 전선이 그어지게 생겼지. 소성리 투쟁기금을 지급정지시켰던 성주투쟁위의 위원장의 잘못된 행위를 단죄하지 않는 성주촛불에 대해서도 선을 그어야했어. 옳고그름을 가리지 않고, 범죄행위를 목도하는 성주촛불은 더 이상 동지도 무엇도 아니었아. 소성리는 충분히 힘들었어. 사드 4기가 추가배치된다고 점쳐진 미래에 대비하기도 부족한 시간이었어. 저들은 소성리를 교란시키고 와해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 믿기지 않을만큼 부정한 행위를 한 위원장을 감싸고 돌았으니까. 그들은 반성하지도 부끄럽게도 생각하지 않는 거 같았어.

나는 소성리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했어. 뜻과 마음 맞는 사람들을 모았지. 위기의 소성리를 위해 무엇을 할지 의논했어. 소성리평화모임이 시작된거야. 지혜로운 여성들이 나선거지. 당장 사드4기가 추가배치된다는 긴박한 상황에서 투쟁에 필요한 자금을 빼앗겼으니, 총알을 만들자고 약초언니가 말했어. 총알 만드는데 팔을 걷어부치자는 데 의기투합했어. 약초언니가 파격적인 조건으로 고급스런 약초물품을 내어주셨어. 그렇게 소성리평화장터의 문을 열게 된거야.

‘사드배치 결사반대하자’고 외쳐대는 데모현장에 장터를 연다는 건 참 쑥스러운 일이야. 얼굴에 철판을 여러겹 깔지 않고서는 힘들지. 그러나 다급한 상황을 모면할 방법을 달리 찾지 못했으니, 나는 집회가 있는 날이면 물건을 실고 소성리로 달려가, 탁자를 펴서 물건을 진열하지. 투쟁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장사에 나섰어.

성주촛불과 결별한 사람들은 초전투쟁위를 중심으로 모였고, 초전의어른들은 “소성리사드철회 성주주민대책위원회”로 초전투쟁위를 확대재편했어. 더 커진 건 아니지만, 성주투쟁위가 하지 못할 사드반대전선을 지켜나갈 투쟁체를 구성한거지.

평화장터의 첫 수익금 100만원은 성주주민대책위의 출범을 축하하는데 쓰였어. 성주주민대책위의 첫 출발자금이 된 평화장터의 수익금이 자랑스런 순간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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