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O 한 이야기 (5)

by 시야

SO-SO 한 이야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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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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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화담선생님 댁을 찾았다. 소성리부녀회장님의 두부맛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늦은 밤길을 달려갔다. 시중선생님은 오늘도 보이차를 내주셨고, 방안에 화담선생님의 새로운 작품들이 걸려있었다. 갓 만든 두부 맛을 보기 위해 접시에 썰어내 온 두부 옆에 간장종지가 놓여있다. 화담선생님은 먹어본 중에 제일 맛있는 거 같다고 좋아하시고, 시중선생님은 전통적인 두부 맛을 알아보신다. 나는 원래 두부를 썩 좋아하지 않는데, 간장종지의 간장 맛에 빠져서 두부를 찍었다. 멸치액젓을 푹 끓여서 달여낸 젓장인 셈이다. 멸치액젓을 약한 불에 달여내려면 온 집안이 아니라 온 동네에 젓냄새가 진동을 했을텐데, 다 끓여서 달여내면 비린 맛이 싹 사라지고 어느 간장보다 맛나는 간장의 노릇을 한다고.

나는 그 맛에 홀딱 빠져버렸다.

소성리평화장터 문을 열 때 약초언니가 마련해준 약초물품이 있었지만, 약초언니와 절친한 화담선생님은 우리 사정을 알고, 화담선생님의 세심한 손길이 담긴 나무포크와 명함꽂이 같은 작고 아기자기한 악세사리를 내어주셨다. 나무를 작게 깎고 다듬고, 색칠에 색칠을 거듭한 수공예작품들은 작을수록 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인데, 아무리 좋은 뜻으로 주셨다지만, 너무 싼 가격에 가치를 절하시키는 것은 양심에 늘 가책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화담선생님은 뭐든지 소희씨가 해달라는 건 다 들어줄 의향이 있다고 내게 말씀해 주셨고, 나는 손글씨현수막을 판매하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다. 평화현수막이다. 예전 성주촛불에서는 재료를 준비해 드리면 글씨를 써주셨고, 그 귀한 손글씨 현수막을 사람들에게 나눔하여 집집마다, 가게마다, 골목길마다 부치기도 했었다. 이제 물자도 귀하고, 성주를 벗어나 다른 곳에서도 소성리 사드철회를 이야기 하는 평화현수막이 걸려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부탁을 드렸다. 너무나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현수막재료를 급히 구하고, 미남선생님께 부탁해서 미술재료를 공급받고, 그렇게 작업은 시작되었다. 그 날 화담선생님의 진가를 나는 옆에서 대단히 감탄하면서 지켜보았다.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화담선생님의 모습을 통해서 그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글씨는 힘이 넘쳤지만, 글의 내용은 잔잔하고 평온했다. 때로는 호랑이의 포효같은 기상이 느껴지는 화담선생님의 글씨에 쏟는 열정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 사람을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루종일 쉴 새 없이 잔글씨가 촘촘한 평화현수막 100장을 완성했다. 그리고 화담선생님은 나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메시지로 현수막을 전부 내게 맡겨주셨다. 소성리평화장터가 수익을 낼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가 바로 헌신적인 이들의 노동력이었다. 약초언니도, 화담선생님도, 나도, 모두가 자신의 것을 기꺼이 소성리에 꽂힌 사드를 뽑기 위해서 내놓을 수 있는 배짱이 있었다.

나는 평화장터가 잘 되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다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가 흩어지지 않고 오밀조밀 잘 붙어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약초포장작업에 기꺼이 시간과 에너지를 내어주는 평화모임사람들, 일거리 앞에 모여서 웃고 떠들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일하다가 끝내는 “아이고 허리야”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때 쯤에 공동작업은 마무리가 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정기적인 소성리행사에는 평화장터 점방문을 열었다. 장사는 그래야 한다고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던 것이 나도 모르게 성실해졌나보다. 그렇게 일주일에 딱 두 번만 에너지를 쏟자고 다짐했다. 최소한의 노동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했다. 그럴려면 참가자들에게 생떼를 쓰며 팔기도 해야 하고, 떠맡기기도 해야하고, 아주 뻔치가 좋은 장사꾼이 되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택배를 보내달라는 분도 있었지만, 배부른 것도 아닌데, 거절했었다. 택배는 안하고 싶었다. 평화장터가 내게 전업이 될 수 없었기도 했지만, 소성리를 찾아와 달라는 취지가 더 컸기 때문이었다.

평화장터가 꾸준히 수익을 내고, 한달에 한번은 성주주민대책위로 투쟁기금을 전달할 수 있게 되니 사람들의 관심은 조금 더 높아지는 듯 했다. 원불교 김성혜교무님이 모과차를 만들었다고 내게 팔아보라고 권해주셨다. 누군가 김천원불교의 생강청이 좋다는 귀띔을 해주시기도 했다. 생강청은 건더기 없는 완전 진액으로 차를 마실 때 찌꺼기가 안 나와서도 좋았지만, 향이 깊고 맛이 강했다. 좋은 생강으로 만든 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좋은건 이용자들이 단번에 알아봤다. 원불교의 박형선교무님이 유자차를 후원해주셔서 평화장터에 차종류가 구색을 갖추기도 했고, 약초언니도 유기농유자로 청을 만들어 후원해주기도 했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차종류가 상당히 인기품목이 되었다. 평화장터의 물품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이용자들의 선택지도 커지고, 매출이 늘어나는 비결이 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소성리의 버섯농가 주민이 평화장터로 버섯을 후원해주셨다. 물건을 많이 사서 후원을 해주면 좋은데, 그럴 형편이 못되니, 돈대신에 돈만큼의 후원을 하고싶다는 의미였다. 단돈 만원짜리 물품이 생기니 편했고, 소성리 농가생산물이라는 자부심이 높아서 평화장터로서는 매우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만만한 만원짜리 물품은 이용자들의 부담도 줄여준다.

꽤 잘 나가는 건 아니지만, 아예 안되면 문을 닫으면 그만인데, 그럭저럭 평화장터 살림살이는 늘어났다. 사람들은 애정도 커지기 시작했다. 수익금은 벌써 8번을 내서 성주주민대책위뿐 아니라 김천과 원불교, 천주교와 기독교 사드반대하는 연대단위들까 두루두루 후원을 넓혀왔다. 모두가 우리에게는 소중한 동지들이기에 콩한 쪽도 나눠먹고 함께 살자는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 평화장터의 정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부녀회장님은 왼쪽 팔이 성치 않다. 사드반대투쟁하는 과정에 계속되는 물리적인 충돌에 온몸이 성치 않지만, 특히나 팔을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상이 심했다. 한참을 한의원 침을 맞고 뜸을 뜨면서 치료를 받아 이제 겨우 나아지고 있었지만, 결국 또 눈앞에 일을 그만 둘 수가 없어서 팔의 통증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메주를 만들고, 청국장을 띄우고, 바쁜 일이 어느정도 정리된 듯 하자, 나는 부녀회장님께 두부이야기를 꺼냈다. 두부는 그야말로, 장밋빛 미래를 그려보는 황홀한 상상이었는데, 부녀회장님께는 벅찬 일이었을거다. 부녀회장님은 한번은 두부를 해서 내놓겠다고 하셨다. 그 첫 두부 판매 하는 날, 사람들은 기대를 잔득 걸고 있었고, 부녀회장님 두부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두부 맛을 본 사람들은 정말 우리콩으로 만든 두부의 참맛을 보기도 했지만, 전통방식으로 만든 시중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맛있는 두부를 맛본거다.

평화장터에서 수익금을 만들어 김천시민대책위에 보내자고 의논하는 걸 보고는 부녀회장님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저렇게 애쓰는데, 내가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동해서 두부를 하기로 작정을 했다고. 자신에게는 콩값만 달라고 하셨다. 나머지는 다 평화장터의 수익금 만들어서 투쟁기금 내라는 뜻이었다. 물론 평화장터에서 그렇게 할 리는 없지만.

부녀회장님은 분명 예전과 다르게 평화장터에 애정을 쏟기 시작하셨다. 손수 담은 콩된장과 간장을 평화장터로 내주시기로 했다. 마음을 내주신거다. 평화장터가 아니라도 수십년동안 거래해온 고객들에게 물량을 대기도 벅찰텐데, 벌써부터 부녀회장님네 고객들한테 팔아야하는 된장과 간장의 주문이 쇄도해서 바닥이 날까 걱정이다.

마을회관에서 밥을 먹었던 수많은 연대자들에게 된장찌개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이제 부녀회장님의 된장과 간장으로 재현할 수 있게 되었으니, 평화장터를 이용하는 사람은 행운 중에 행운 아닌가?

모든 일이 순조롭지만은 않지만, 쪼그라들기보단 점점 커지고 있다는 느낌은 기분좋다.

토요일 촛불에서 두부를 낼 때, 화담선생님께 두부맛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이렇게 맛있는 두부를. 오늘 그 맛을 보여드렸다. 토요일 촛불에선 외지에서 온 분들 우선적으로 두부를 팔아서 마을사람들은 사질 못했다. 예전엔 할매들도 직접 두부만들고, 비지 띄우고 했었지만, 이제 나이들고 힘이 들어 두부를 만들 처지가 못된다. 부녀회장님의 두부만 목이 빠지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소성리마을사람들 두부만들었다. 나는 화담선생님과 미남선생님께 꼭 두부맛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우리 평화장터의 맛이 바로 이 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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