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O 한 이야기(6)

by 시야

SO-SO 한 이야기(6)

무작정, 약초언니의 포부에 발맞춰 시작했지만, 끝은 언제쯤이 될지 막막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장사가 아닐뿐더러, 내가 가장 하기 싫은 일이 장사였으니, 위기의 소성리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할지라도 내 마음 한 켠은 곤욕스럽기도 했었다. 마냥 평화장터를 할 수는 없을거라 예감했다. 첫 출발은 화려하지만, 이 좁은 시장에서 평화장터가 유지해나가기 쉽지 않을거란 건 불을 보듯 뻔했을테니까, 아니나다를까 곧 매출은 뚝뚝 떨어지고, 점방문만 열고 닫아서는 매출을 올릴 방법도, 투쟁기금을 만들 방법도 없었다.

문을 닫기 보단 평화장터를 살릴 수 있는 묘안을 더 많이 고민하게 되는 시간들이 지속되었다. 평화모임을 하면서 묘안이랍시고, 모두가 영업사원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평화모임 사람들이 물건을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부담만 가중되어서는 안되었다. 필요한 사람을 찾아나서는 것이 현명했다. 그렇지만, 그건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도 잘 안다. 사람들은 내게 미안한 마음을 내비치기도 하고, 옆에서 뭐든 도울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주야님과 김샘이 허벌나게 영업을 하기 시작한거다. 조용한 성품에 어딜가도 표가 안 날 거 같은 사람이 평화장터의 물품을 들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설명을 하고 판매를 했는가보다. 다단계판매가 시작되었고, 매출은 확실히 상승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평화장터를 어떻게 할지 한참을 고민했던 나는 투쟁기금 1000만원만 만들고 기분좋게 정리하겠다고 마음 먹었고, 목표를 향해서 질주하기 시작했다.

관심없어 보였던 강장로님이 누님께 평화장터를 소개해 준 것이 아주 큰 인연이 되어, 누님은 자신이 소속된 단체에 평화장터를 소개하고, 그렇게 평화장터를 찾는 사람들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택배는 하지 않겠다던 나의 원칙은 수정되었다. 먼거리 단체주문은 택배로 보내게 되었다.

그러다 설날을 맞아 경옥고를 팔아보라는 원불교교무님의 권유에 가격이 너무 비싼 경옥고를 누가 찾을까 싶었지만, 명절특가판매한다는 홍보를 하자 멀리서 경옥고의 주문이 쇄도하게 되고,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는 택배를 보내는 수고로 나의 시간을 무진장 많이 쓰게 되었다. 그런데, 택배를 보내지 않고는 매출을 올릴 방법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원칙은 수정해, 매주 한번 5만원이상 구매시 택배를 보내겠다고 광고를 하자 여기저기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일은 두배로 늘었고, 신경쓸 일은 더 많아졌지만, 설명절 전에 바짝 평화장터홍보와 판매에 질주를 했더니 꽤 많은 수익금을 만들 수 있었다.

벌써 목표했던 투쟁기금의 80%를 달성했다. 곧 목표달성이 코앞에 놓여있는데, 나는 앞으로 평화장터에 쓸 스티커를 제작하기로 했다. 비닐봉투도 제작하기도 했다. 평화장터의 목표를 수정한 것은 아니지만, 목표달성하고도 바로 끝내지는 못할 거 같다.

어느 날부터 평화장터에 애정을 쏟는 사람들이 생겼다. 투쟁기금을 마련하는데 물건을 사주는 것 뿐 아니라 좋은 물건을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원불교 교무님이 어느날 생필품을 후원해주셨다. 매주, 그리고 열심히 돕겠다고 나를 다독여주셨다. 부녀회장님이 평화장터에 팔을 걷어부치고 된장과 간장을 내주시기로 했다. 부녀회장님의 된장과 간장이 인기가 많아서 앞으로 판매매출에 상당히 영향을 미칠 거라는 예감이 든다. 특히나 소성리에서 만든 물품이라 평화장터로선 매우 고급스런 상품이 될 것이다. 광역도시의 사람들이 시골의 손맛을 느낄 수 있어 평화장터의 장점이 부각될 수 있는 물품인 셈이다. 된장과 간장을 꼭 팔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꽉 채우기 시작했다. 어느새 주문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화담선생님이 사드브레이커 전시회에 작품을 내시면서 주신 “그래도 뚜벅뚜벅” 이란 글씨를 사드뽑고 평화심는 우리의 정신으로 삼아 로그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사드뽑고 평화심는 길에 발자국을 포개겠다는 평화장터가 소처럼 뚜벅뚜벅 걸어가 언젠가는 사드뽑는 날을 맞이하고 싶다. 많은 이들이 사드는 들어왔고, 빼기는 어렵다고, 다 끝난 싸움이라고 등을 돌려도, 이곳에 남은 이들은 ‘그래도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신념과 의지를 표현하고 싶어졌다.

평화장터의 스티커와 비닐봉투의 슬러건은 ‘그래도 뚜벅뚜벅’으로 할거다.

평화장터는 돈만 버는 장사가 아니라, 사드 뽑는 길에 작은 발자국이지만 포개서 보태고 싶은 장터이고, 그 날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뚜벅뚜벅’ 함께 걸어가, 소성리를 지키고싶다.

그래서 그 끝은 또 언제가 될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스티커를 다 쓸 때까지는 해보고, 비닐봉투를 다 쓸 때까지는 해봐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평화장터를 애정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이제 내 마음대로 문을 열고 닫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닌거 같다.

봄이 오면 참외가 생산될 거다. 성주참외를 찾는 사람들이 평화장터로 연락이 올거다. 소성리편의점이 롯데골프장 폐업이후 유지가 어려워지고 있다. 참외는 편의점사장님께 전량을 맡길 예정이다. 소성리농가의 생산물은 소득전액을 농가로 보내드릴거다. 그리고, 투쟁기금은 소성리뿐 아니라 사드반대하는 단위에는 골고루 나눔 할거다. 평화장터는 콩 한 쪽도 나눠먹고 함께 살자라는 정신으로 운영될 것이고,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정직으로 여길 것이다.

내일부터 설명절의 연휴기간이다. 설명절이 지나면 추위는 물러날거고, 봄은 불쑥 다가올거다. 소성리평화장터는 당분간은 활기가 있을거다. 미래의 전망은 무엇이 될지 아직 깊은 고민 못했지만, 투쟁기금 2000만원을 만들때까지는 뛰어보자. 그리고 나서 다시 고민하자.

내가 일주일에 이틀을 고생하고, 우리의 노동력의 가치를 투쟁기금으로 만들어가자.

수요일집회와 토요촛불 두 번의 점방을 열고, 매주 수요일 주문 받은 것들을 택배보내고, 올해 무엇보다 소성리부녀회장님표 우리콩 된장과 간장을 전국으로 다 보내보자. 그리고 여전히 수육약초를 포장하는 공동작업을 평화모임과 함께 해나갈거다. 더 좋은 아이템이 있다면 기꺼이 도전해 볼거고, 사회운동에 저극 연대하면서 지원할 거다. .

나는 원래 장사할 팔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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